[북한정권 수립 60년: 북한의 관료] 약탈하는 관료, 기생하는 관료
약탈하는 관료, 기생하는 관료
김종욱(동국대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 연구교수, 『통일한국』2008년 9월호)
과거 북한은 국유화를 통해 계획경제와 전일적인 관료체제를 구축했으며, ‘수령’의 상징체계와 관료체제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였다. 관료와 주민들은 수령에게 충성을 시현함으로써 배급과 복지를 보장받았고, 국가의 생산․분배․정보는 관료체제를 통해 전일적으로 관리․통제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 전역에 도래한 ‘고난의 행군’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고난의 행군’은 사회주의정권 수립 이후 가장 절망적인 시간이었으며, 북한의 관료와 인민들에게는 ‘낯선 세계’와의 대면이었다. 특히 그 낯선 세계가 출구 없는 미래라면 현실을 연명해야 하는 자들에게는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굶주림의 연속과 생존을 위한 전쟁 같은 삶이 그들의 일상이라면, 이제 일상은 비(非)일상이 되고 비일상은 일상이 되어버리는 전도된 세상으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북한의 관료와 주민들은 이 절망적이고 낯선 세계에서 생존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굶주림과 죽음의 문턱을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국가의 ‘돌봄’(사회주의 복지체계) 포기는 관료와 주민의 국가 ‘의존’ 탈피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북한의 관료와 주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국가 통제력의 급격한 약화와 시장에 의존하는 새로운 관계구조를 만들어낸 전환적 기간이었다.
과거 계획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모와 담합, 흥정과 조작은 계획경제 밖의 시장을 통한 부패로 진화되어 갔다. 관료들은 관료적 권한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이익을 획득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즉 1990년대 중반 이후 ‘생계 유지형 부패’와 ‘시장 친화형 부패’의 공존구조에서 점차 ‘시장 친화형 부패’가 확산․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 되었다.
‘생계 유지형’ 부패에서 ‘이익 추구형’ 부패로의 진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배급제는 붕괴되었고, 그 자리를 시장이 점차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관료적 권한의 축소와 시장을 통한 생존 및 이익 창출 구조의 확산을 의미했다. 이 변화된 상황의 원인은 ① 국가증여시스템 붕괴, ② 경제난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추진, ③ 주민과 관료의 생존을 위한 ‘일상의 정치(politics of everyday)’에 기인했다.
국가증여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고, 관료들은 관료적 권한을 통해 새로운 생존과 이익창출에 착수했다. 시장은 교환의 공간이다. 교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물품이 필요하다. 이 물품 중 공산품의 70~80%는 생산기관 및 유통과정에서 관료들의 유출에 의해 충당되었다. 즉 관료들이 공산품을 국정가격으로 구입한 후 암시장에 유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관료 부패를 확산시켰고, 관료들의 인식세계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과거 북한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회주의적 도덕과 규범은 균열되었고 새로운 시장 메커니즘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관료들은 관료적 권한을 통해 생계유지의 수준을 넘어서서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북한의 관료 부패는 주로 관료적 권한을 통한 이익 추구 방식(정치자본의 경제자본화)이다. 관료적 권한을 통한 부패 방식을 유형화하면 ①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뇌물을 수수하는 방식, ② 국가물품을 중간에서 착복하여 암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점취하는 방식, ③ 기관 명의 및 사업권을 대여하고 그 사용료를 수취하는 방식, ④ 관료적 권한과 연줄구조를 통해 대리인을 세워 직․간접적으로 사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 등이다.
모든 관료적 권한은 부패의 원천이었으며, 부패를 통해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직장 결근을 눈감아 주는 대가,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통행증 발급에 대한 대가, 직장배치․대학진학․입당 등에 편의를 봐주는 것에 따른 대가, 시장 활동을 눈감아주는 대가 등등 헤아릴 수 없다. 따라서 관료적 권한은 관료가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보고(寶庫)’와 같은 것이다.
군림하는 ‘소(小)수령’에서 갈 길 잃은 ‘배회자’로
전국적 차원, 관료기구 전반에서 발생하는 부패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 방법은 대체로 학습과 강연, 검열과 통제의 강화 등이다. 학습과 강연의 주 내용은 현재의 어려움이 국가의 무능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국가정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외부에 동조하는 ‘불순분자’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검열과 통제의 극단적 강화조치가 벌어지고 있다. 각종 ‘검열그루빠’를 통한 적발과 이에 따른 처벌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으며, 보안원․단속원들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적발되면 공개재판을 통해 노동교화형 등 각종 처벌이 진행된다. 특히 2004년 형법개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행정처벌법’ 채택은 재판절차 없이 각 기관별로 심의를 통해 처벌이 가능토록 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또 다른 악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즉 통제와 검열권한을 통한 부패행위의 확산이다. 강화된 검열과 처벌기능은 담당 관료들의 자의적 판단과 월권의 남용을 확산시켰다. 이 관료적 권한을 이용해 관료들은 검열․단속과정에서 적발된 것에 대해 눈감아주거나, 또는 다른 관료․주민과 공모․담합하여 더 많은 이익을 획득했다. 검열과 부패의 ‘새로운 결탁’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국가에서 공급한 디젤유의 유출을 눈감아주고 디젤유 장사꾼에게 뇌물을 받거나, 단속원이 유출된 비료를 회수하여 국가에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장사에 빼돌리거나, 공장의 보안원이 노동자와 짜고 설비를 훔쳐서 시장에 내다팔거나 하는 행위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과거 북한사회 관료들은 수령의 대리인으로서 ‘소수령’과 같이 북한 주민들에게 군림하는 존재였다. 그것이 생존과 승진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의 관료들은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장사 능력도 없고 사회주의적 도덕규범에 충실한 관료들은 생계를 영위하기도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장사나 부정행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특수한 관료적 권한을 가진 자들은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즉 과거 ‘소수령’에서 일부는 몰락하여 갈 길 잃고 헤매는 ‘배회자’로 전락했고, 일부는 관료적 권한을 이용하여 주민과 시장에 걸터앉아 약탈을 본업으로 삼으며 부를 축적하는 새로운 ‘신흥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 얼굴, 시장․국가에 약탈․기생하는 관료와 체제 유지의 첨병으로서 관료
북한사회 관료들은 관료적 권한을 통해 국가와 시장 모두를 약탈하는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국가의 공적물품은 자신의 사익 추구의 도구가 되고 있으며, 시장의 상행위에 관여하며 주민들을 약탈하고 있다. 즉 국가와 시장에 때로는 기생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약탈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수령’으로 상징되는 국가는 이제 점차 사라지고 시장으로 상징되는 화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관료들은 국가의 돌봄에 의존하던 삶에서 국가의 의존을 탈피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사회의 관료 부패는 더욱 진화되고 확산될 것이다.
물신화 된 수령에서 물신화된 화폐(시장)로, 계획경제에서 시장 활동으로, 국가 증여시스템에 의한 생계유지에서 시장흥정과 관료연줄의 이익창출로, 관료적 위계구조에서 수평적 시장교환활동으로 점차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 전환은 관료와 주민 모두가 겪고 있는 북한의 현실이다.
부패는 이익창출의 수단임과 동시에 체제를 균열시키는 요인이다. 따라서 부패를 통한 이익창출의 확대는 체제의 균열로 확산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관료들은 체제를 유지하는 ‘첨병’ 구실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료의 입장에서 급격한 체제전환은 자신의 위치에 급격한 변동을 의미하며, 예측 불가능의 국면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관료적 권한을 통해 국가와 시장 모두로부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더욱 안정적이라고 판단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시장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나타날 것이며, 시장교환의 확대로 사회의 양극화는 증폭될 것이다. 반면 정치적 통제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관료들은 이제 서서히 딜레마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 확대를 통한 이익의 점증과 정치적 통제력의 축소에 의한 관료적 권한의 약화라는 충돌지점을 의미한다. 이 모순적 상황의 집적이 향후 북한사회 변화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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