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OI 정세읽기_081015]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읽는 키워드(이 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읽는 키워드 : 공급주의와 관료주의
좋은 학교를 더 많이 공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 이러한 언급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 대입 과열문제가 진작 해결되었어야 맞다. 전국의 대학정원이 이미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 수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입 과열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다. 왜? 경쟁에 뛰어든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열화 된 대학들 가운데 한 칸이라도 더 높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공급’ 확대로는 서열화 해결 안돼
이명박 정부는 ‘공급’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서열화’논리를 애써 부인한다. 서울시내에 외고가 6개 있는데, 이게 이미 서열화되어 있다. 특목고를 늘리고 자사고를 신설하여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학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학교가 이 같은 서열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물론 그 서열의 지표는 각 학교에서 배출하는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자 숫자이다. 요컨대 예전에는 반에서 5등쯤 하는 학생까지 외고 입시경쟁에 뛰어들었다면, 앞으로는 반에서 15~20등 하는 학생까지 외고-자사고 입시경쟁에 뛰어들어 외고-자사고 통합서열에서 한 칸이라도 높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 몰입교육’ 논란으로 얼룩진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을 발표하여 학부모들을 영어 학원으로 달려가게 만들었고, 뒤이어 일제고사를 부활시켰으며, ‘학교 자율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0교시, 우열반 등의 편성 여부를 ‘교육 관료의 자율’에 맡겨놓음으로써 ‘미친 교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졸속 논란 속에서도 묵묵히(!) 추진되고 있는 국제중과 연말께 법제화를 앞두고 있는 자사고(자율형사립고) 등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교육 정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전반적으로 학생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사교육비를 늘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명박 교육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경쟁’과 ‘사교육’이라는 점은 교육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명확히 인지되는 사실로서, 워낙 많이 거론되어 특별히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이 글에서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특징으로 ‘경쟁’과 ‘사교육’ 이외에 어떤 키워드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공급주의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자사고 100개’ 공약을 들먹일 때부터 이명박 정부는 교육에 ‘공급논리’를 들이댔다. 좋은 학교가 모자라서 학생들이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하니, 이명박 정부는 ‘공급’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서열화’논리를 애써 부인한다. 서울시내에 외고가 6 개 있는데, 이게 이미 서열화되어 있다
교육을 단순한 ‘요소의 공급’으로 해결하려는 논리는 다른 곳에서도 엿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왜 ‘영어 공교육 강화안’을 발표했는데 영어학원이 대박을 맞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영어 공교육을 강화한다고 했고, 영어 수업시간과 영어 교사 수를 늘린다고 했는데, 왜 학생들은 학원으로 달려갔는가? ‘영어 몰입교육’으로 인한 공포감도 한 몫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학부모들은 학교가 영어수업을 몇 시간 늘리는 방식으로는 영어에 대한 책임 있는 교육이 이뤄지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영어수업시간과 영어교사가 공급되면 우리 아이가 ‘p’ 발음과 ‘f’ 발음을 헷갈릴 때 이를 바로잡아 교정해줄 것인가? 우리 아이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지 못하고 버벅거릴 때 이를 연습시켜 줄 것인가? 여태까지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임을 학부모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발표를 보고 ‘영어 사교육’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교육 만족도 제고는 ‘프로그램’과 ‘문화’로 접근해야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학생을 책임지고 가르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문화’가 정착될 때 가능하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영어 노출시간을 늘릴 수 있는 각종 인터넷 교육프로그램과 과제수행시스템을 보급하고 시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재정도 절약된다. 아울러 진정 학생들을 차근차근 돌보는 교사들이 대우받는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는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한 마인드가 없고, 바람직한 교사상이 왜 정착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고려도 보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요소 투입’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이 건설사 사장 출신이니 이런 마인드를 가진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 주변의 참모들은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머릿속에 뭐가 든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관료주의
이명박 정부는 4월에 ‘학교 자율화조치’를 통해 영리법인의 ‘방과후학교’ 진출을 허가하고, 0교시나 우열반 편성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자율’이라는 말을 욕되게 사용한 사례로서,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입에서 ‘미친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 사건이다.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은 줄고, 교육관료의 자율성은 늘어
교육계에서 자율권이 부족한 사람은 교육현장에서 대면하는 학생과 교사들이다. 현재 교사는 어떤 방법과 어떤 교재로 어떻게 가르칠 지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어있고, 학생들은 학교생활에서 자율적 선택권을 거의 전면적으로 박탈당한 상태이다. 교육 관료에게 0교시나 우열반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교육 관료의 자율성은 커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0교시 등교를 할 지 여부를 선택할 수도 없고, 우열반 가운데 어떤 반에서 공부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결국 이러한 ‘자율화’ 조치의 결과 학생들의 자율성은 더욱 침해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교원평가에 매달리면서 교장 임용제도의 교육 관료에게 0 교시나 우열반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교육 관료의 자율성은 커지는 일일 것이지만 학생들의 자율권은 더욱 침해되는 것이다. 개혁은 나 몰라라 하는 것도, 교육 관료와 유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교원평가제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던 ‘학생에 의한 평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나도 교원평가는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교사의 승진 점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교장임을 고려한다면 교장임용제를 내버려두고 교원평가제만을 들고 나오는 것은 논리적으로 본말이 전도된 처사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극히 후진적인 관료적 승진제도 하에서 ‘위’만 보고 살아야 한다. ‘아래’를 보며 학생들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눈을 맞추고 호흡을 같이 하는 사람이 교장이 될 가능성은 현재 거의 전무하다. 이미 교장공모제 등의 개혁 모델이 뚜렷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범
교육평론가 / 곰TV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