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방향 전환: ‘치킨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
* weekly opinion 15호(2008.11.19)
‘치킨게임’(Chicken game) 에서 ‘윈-윈 게임’(win-win game)으로
김종욱(동국대학교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 연구교수)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해제했으니 이에 상응해서 북한이 인권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6자회담의 ‘행동 대 행동’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또한 한미공조가 과거와 달리 튼튼하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달리 들으면 북미 직접접촉은 한국을 필히 경유해야 한다는 대미 메시지로 들린다. 이에 덧붙여 “북한문제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궁극 목표”라고 주장했다.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의 유연성마저도 봉쇄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의 메시지
한편 언론에 ‘통미봉남’(通美封南)이란 옛 단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김영삼 전대통령과 오버랩되며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통행의 엄격한 제한 차단’과 ‘남북적십자 직통전화 단절’이라는 방식으로 남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과는 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미국과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집중하면서 ‘북한적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북한의 핵심목표이며, 남한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북한의『통일신보』(11.15)는 북미 관계개선 문제는 남한 정부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미 북한은 대남정책에 대한 일정한 로드맵을 확정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대북핵문제 기조: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
오바마 당선자 진영은 이미 북핵문제에 있어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칙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제거를 목표로,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sustained, direct and aggressive diplomacy) 방향을 제시했다. 즉 북핵 문제에 있어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지만, 대화의 원칙을 장기적으로 견지하며, 다자대화의 틀을 유지하면서 직접적인 대화를 중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집중적인 외교를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하드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오바마 당선자의 북핵 문제 접근 방식은 미국 외교 정책 전반의 전환과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다. 오바마 당선자 진영이 외교방향에서 전면적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는 없는 이유는 현재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이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국제 환경 속에서 미국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상황 판단에 입각하면 군사력에 바탕을 둔 일방주의 외교정책으로 상징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한 다자안보를 중시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로의 정책전환이 필연적 결론이 된다.
미국진보센터(CAP)와 새로운 민주주의프로젝트(NDP)가 공동으로 발간한『미국의 변화: 제44대 대통령을 위한 진보적 청사진』(Change for America: A progressive blueprint for the 44th president)에 나오는 이라크 철군,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고문근절, 이란․시리아 등과 외교를 통한 이라크 문제 해결 등은 '소프트파워로의 정책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한편 흥미로운 부분은 이 보고서 내용 중 Samuel Berger와 Tom Donilon가 부시 행정부 안보 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들이 곧바로 이명박 정부가 경청해야 할 대목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부시행정부 안보정책의 문제점으로 ① 장기기획의 부재, ② 정책결정 실행에 있어 부적합한 구조, ③ 책임의 부족을 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위 문제점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첫째, 대북정책은 이념적 잣대로 좌지우지되는 단기정책이 아니라 중장기적 일관성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는 장기기획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ABR’(anything but Roh)이라는 함정에 빠져 ‘유지될 정책’과 ‘전환할 정책’을 이념으로 예단하는 자기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즉 ‘비핵․개방․3000(상생․공영정책)을 위해서는 역대정부의 6․15합의와 10․4합의도 폐기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전환할 수 없는 ‘자기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상생․공영정책 내용 속에 두 합의를 충분히 녹여낼 여지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장기기획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확고한 장기적 목표와 기획이 존재한다면 개별 사안들의 이데올로기나 정파적 함축에 불안해 할 필요 없이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둘째, 원칙을 견지하되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잘 짜여진 안보정책결정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외교부의 독주와 통일부의 역할상실이라는 현실은 현 정부가 유연하고 능동적 대응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 당국은 권한 없는 통일부와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는 대북정책 결정에 있어 외교부의 과도한 발언권과 비공식(국정원) 채널(남북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비공식 채널은 필요하지만)의 역할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정책혼선이 상시화 되면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부시행정부 대북정책의 혼선과정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 혼선의 결과는 결국 클린턴 행정부식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으로의 재복귀였다.
셋째, 정책의 유연․능동적 대처 불가능과 안보정책결정의 부적합한 구조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아니 책임질 필요가 없는 상황을 낳는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의 일정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핵심부에서 승계․발전시켜야 할 정책을 ‘경멸’의 정책으로 규정할 경우, 누구도 과거정책의 유효성을 제기할 수 없다. 그 결과 정권핵심부에게 잘 보이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관료적 경쟁’만 판을 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6․15와 10․4합의를 둘러싼 논쟁이다. 북한이 두 합의를 남북대화 재개의 지표로 삼겠다는 이유 때문에 남북 정상간 합의사항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북한이 우리 정부와 협상을 진행할 필요를 느낄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정부에 드리는 몇가지 제언
지금 한반도는 전환적 시점에 놓여 있다. 남북관계의 단절 지속 속에 부시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추진할 오바마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바마정부가 대북정책의 방향을 확정하고 실행에 착수하기까지 짧게는 2개월에서 5~6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또한 북한 당국의 최근 대남 강경정책은 관계 단절부터 개선까지 다양한 노림수를 전제하고 진행되고 있다. 이 시점이 우리 정부가 유연하고 능동적인 대북정책 수립과 한미관계 증진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적기다. 어쩌면 오바마 진영의 ‘지속적이고,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이야말로 현재 우리 대북정책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정책적 판단과 실천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안보정책 및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 및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북․미 직접대화(정상회담 포함)와 6자회담이라는 two track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모색할 것이며, 특히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전격적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로드맵의 재구축이 절실하다. 이는 정책방향의 전환뿐만 아니라 이에 맞는 시스템의 재정립도 포함한다. 특히 이 로드맵 구축과정에서 경제정책과의 유기적 연계도 절실하다. 예를 들어 한미 FTA 문제가 쟁점화 될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것이 대북정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도래한 ‘금융위기’뿐 아니라 도래할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북한문제를 매개로 한 한․중, 한․러 외교의 중요성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의 핵심 좌표인 6․15와 10․4선언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요구된다. 남북회담과 6자회담은 연계되어있다. 6자회담의 9․19합의사항 중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관련국간 대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6자회담은 남북정상간의 합의와 연동되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특히 그간의 사례를 보더라도 6자회담의 경우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주로 양자회담의 연쇄접촉을 통해 이견을 조율하면서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북대화의 단절은 6자회담 진행에 있어 우리 정부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축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6․15와 10․4선언이행 원칙을 최고통수권자가 우선 천명하되, 구체적인 이행경로는 현실적 가능성을 타산하면서 순차적으로 협의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필요성이 있다. 즉, 합의는 존중․이행하되 점진적 방식과 현실가능성을 중심으로 이행실천의 속도와 내용을 조절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고려 없이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 모두 인도적 지원에 있어 ‘사실상의 상호주의’를 버린 적이 없다. 남북관계의 단절 상황에서 관계개선을 위한 매개로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는 인도적 지원’만큼 현실성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꽁꽁 얼어붙은 남북 민간협력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통해 새로운 환경조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 늦었다고 판단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일단 대화와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지면 다양한 창의적 방법과 실천을 통해 더 넓은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치킨게임에서 윈-윈게임으로
7․7선언(1988)과 남북기본합의서(1991), 6․15(2000) 및 10․4(2007) 남북정상선언으로 이어져왔던 남북대화가 이제 20여년이 되었다. 단절과 개선의 악순환 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또다시 남북한이 ‘치킨게임’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다. 이제 ‘윈-윈게임’의 시대로 돌입하기 위한 발상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이념, 인종 등으로 가르는 차별의 정치를 넘어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통합의 정치가 세계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혜로운 대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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