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틱 정치 읽기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

시놉티콘 2009. 2. 27. 12:49

< 오픈리포트 : ‘공간’ 특집 ① >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

 

 

P&C report에 마지막 글을 올린지도 벌써 9개월이나 되었다. 새로운 가치의 발견과 그 실천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모색하려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를 통해 정당정치를 복원시키고 ‘일상의 정치’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자는 취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으나,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다.

 

지난 두 개의 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정치세력의 자기 혁신이었으며, 그 혁신의 과제를 ‘일상’ 속에서 찾고, 만들어 가자는 것이었다. 이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리고 ‘보수의 시대’에 ‘공공적 가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고, 이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제안하려고 한다.

 

도시공간의 일상생활 : 고독한 경쟁과 연대없는 도시유목민

 

대한민국의 모든 공간은 점차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도시 공간, 지방 공간 모두 독점과 배제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공간은 점차 부유한 공간과 황폐한 공간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근대화는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거대공룡 도시를 창출했다. 도시는 새로운 희망을 찾는 삶의 욕망과 경쟁 속에 전개되는 생존의 아우성이 집약된 공간이다. ‘타워펠리스’라는 웅대한 욕망의 랜드 마크와 함께 용산의 ‘참사’가 뒤엉킨 모순의 공간이기도 하다.

 

돈의 철학이 지배하고 개발의 건축이 지배하는 도시에서는 새로운 공간 창출을 통한 부의 확대재생산이 벌어졌고, 그 확대재생산 과정에서 다수의 서민들이 배제되었다. 도시의 하층민들은 서서히 중심에서 멀어지고 도시의 외곽으로, 또는 다가구주택의 지하와 옥탑 방으로 이동했다. 이제 그 다가구주택마저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뉴타운과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다. 다시 한 번 ‘도시의 유목민’들이 대량으로 하늘을 가릴 새로운 공간을 찾아 이주하고 있다.

 

도시 공간의 주인인 권력과 자본은 더욱 위계화 된 건축권력을 통해 도시서민들의 삶을 옥죄이고 있다. 도처에 ‘예비 용산’이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고, 개발의 욕망은 지칠 줄 모르고 서민들의 일상 삶 깊숙이 침입해 들어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극단적 조류는 ‘양극화’라는 거대한 괴물을 잉태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모든 공간은 두 개의 극단으로 분리되었다. 이 양극화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은 고독한 경쟁이라는 일상의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개인의 무력한 생존 전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도시의 주거 공간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악령은 무차별적으로 서민들을 공습하고 있으며 실업의 악몽은 자신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희망 없는 일상은 도시시민들의 삶 그 자체가 되었으며, 경쟁에 내몰린 고독한 실존과 맞닿아 있고 공동체 연대는 희미해지고 있다.

 

농촌과 지방의 일상 공간 : 배제의 섬, 황폐한 땅

 

농촌과 지방공간은 대다수의 버려지고 배제된 공간과 극소수의 선택된 공간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새마을운동부터 시작된 농촌의 파괴와 도시로의 흡수라는 흐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997년 IMF의 여진은 농촌과 지방을 배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향후 한미FTA(2007)는 이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농촌은 젊음의 향기가 사라진 노인 분들의 힘겨운 생계일터로 변모하고 있으며, 지방은 생존을 영위할 수 없는 배제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균형발전의 구호도 극소수의 선택된 지역을 제외하고 헛구호에 불과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도시공간의 욕망에 이끌려 많은 이들은 도시로 도시로 계속 끌려들어가고 있으며, 농촌과 지방은 피폐한 공간으로 도태되고 있다. 사람과 생산이 줄어들면 농촌과 지방은 자립할 수 없는 방치된 공간으로 남아있게 된다. 지속적인 교류와 대화를 통한 소통은 사라지고 농촌과 지방의 일상은 보수화로 치닫게 되며, 중앙정치의 전략에 의해 개발과 지역주의의 포로로 사로잡히게 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일상생활의 식민화’를 통한 보수화가 정착되는 곳이 바로 농촌과 지방공간이다.

 

농촌과 지방의 일상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배제되고 황폐한 땅으로 전락했다. 새로운 활력을 찾을 길이 없으며 공동체연대의 심성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으로 남을 수는 있을지언정 살아갈 땅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농촌과 지방의 현실이다.

 

사이버공간: 해방과 통제의 격렬한 전투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에 의해 자유로운 가상의 소통은 일상이 되었다. ‘아고라’로 상징되는 자유로운 의사 개진과 토론문화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델로 자주 거론되곤 했다. 위계적이며 통제된 현실공간의 질식을 해소할 수 있는 사이버공간은 상상력과 대안이 분출되는 자유로운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여론의 힘이다. 여론은 다수의 사람들의 간주체적 소통을 통해 집약되고 만들어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의해 여론을 반영하는 신문과 방송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신문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방송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으로 인해 방송도 치열한 접전의 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인터넷공간도 자유로운 공론적 소통을 통해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려는 네티즌들과 이를 통제하려는 권력과의 심각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해방과 통제의 논리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 갈 길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사이버공간은 그만큼 더욱 황폐해지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공간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공간은 방치되고 유배된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유로운 소통, 삶의 희망 찾기, 욕망의 분출이 막혀버린 공간에서의 생활은 무미건조함 그 자체이다. 이 억압적이고 힘겨운 삶의 고통을 분출할 곳은 더욱 축소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생활의 무미건조함과 미래 없음 앞에서 향락의 문화에 빠져든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문화가 창궐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 없는 일상을 탈출하려는 욕구는 로또 판매 증가, 경마․경륜의 확대 등으로 연결된다.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대한 탐닉, 일확천금을 향한 질주, 트라우마와 같은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울증과 자살의 사회로 조금씩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탈정치화의 상황은 일상생활 공간의 보수화와 직결된다. 우리네 일상은 보수화와 함께 자본과 권력에 의한 일상생활의 식민화가 확대된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방치하고 정치세력들이 국민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제 공간과 일상에 주목하자

 

“왜 공간과 일상인가? 너무 진부한 얘기 아니야? 우리가 언제 그것을 고민 안했나.” 많은 자리에서 듣는 질문이다. 바로 그 진부하고 항상 고민해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은 반복적이며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전개하는 세계이다. 그 작은 실천적 활동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요동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작년 촛불시위를 통해 삶의 문제가 정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일상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거대한 촛불의 흐름을 만들어 내었듯이, 일상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그 지점, 일상은 반복적이며 무미건조해서 보수적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파편화되고 경쟁에 내몰린 일상은 더욱 보수화되어 가고 있으며 탈 정치화되어 가고 있다. 이 일상의 변화를 통해 일상생활의 개혁성을 부활시켜야 한다.

 

새로운 부활과 희망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일상에 깊숙이 천착해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은 국가로부터 완전히 방치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은 권력과 자본을 위한 재충전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아니면 회피를 위한 향락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건강한 공동체 문화는 사라지고 무한경쟁과 피폐한 삶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주체들은 새로운 가치를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생활 세계를 변화시키는 구체적 대안과 실천적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정치적 캠페인 (예를 들어 ‘반MB전선 집결’)은 서민과 중산층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구호다. 일상에서 정치주체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너무나 정치적인 너무나 비현실적인 낡은정치세력”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구체성과 실천력을 담보하지 못하는 캠페인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일상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다. 시간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개혁진영의 경우 그간 ‘민주화의 역사’라는 거대 도그마에 너무 의존했다.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역사가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거추장스러운 집단으로 인식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난 시기 386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의 현실에서 386이란 단어가 무능력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간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한국의 산업화․근대화의 산물이다. ‘부동산 불패신화’에서부터 ‘뉴타운 열풍’까지 부를 재생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간이었다. 공간은 서민들의 일상의 분노와 슬픔, 애환과 고통, 투쟁과 고발이 뒤섞인 고통의 장이기도 했으며, 기쁨과 희망, 공동체와 연대, 용기와 감동이 뒤섞인 즐거움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점차적으로 공간은 권력과 자본의 수중으로 완전히 장악되고 있다. 모든 공간은 권력과 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필자와 몇몇이 ‘공간’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조금씩 실천하기 위해 블로그 (http://blog.daum.net/humanpark)를 개설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작은 연대의 희망을 만들고 싶다.

 

공간의 공공성 강화와 개인의 자유 확대

 

P&C 정책개발원의 4분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통적 방식의 진보-보수의 기준으로 구분할 수 없음이 나타났다. 위조사에서 유의미한 특징은 개인의 자유 확대에 대한 요구와 함께 국가의 공공적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불일치할 것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의 특징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과 함께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을 통한 공공성의 강화라는 지점으로 수렴된다.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만들려는 세력들은 이러한 국민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그 새로운 가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과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법,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인터넷 관련 법률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즉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개인들의 다양성이 조화롭게 구성되는 자율적 공동체 연대의 사회상을 구현해나가야 한다.

 

이 방향은 과거 의식적인 집단 의지로 표상되는 위계적인 조직의 관료화된 정치와 운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시대로 인해 고통 받는 서민과 중산층들의 삶 그 자체의 진정한 모습인 집단지성을 담아낼 수 있는 가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공간의 공공적 활용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간문제는 201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정치주체들이 집중적으로 제안할 핵심 아젠다가 되어야 한다. 공간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함께 현 공적 공간을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일수록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개발에 의해 도시 밖으로 내몰려서는 안 된다. 작은 실천들을 통해 공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지방자치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지하철 또는 지하상가가 돈 있는 사람들의 상권 장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지하철 공간은 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지하철 역사는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곳이며,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그 공간에 서민들의 쉼터, 청년들의 구인구직을 위한 공간, 서민들의 생계 재활을 위한 공간, 동네 주민들의 공동체 장터, 민원 및 행정서비스 제공 등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지하상가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생계를 위한 국가 공공재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버스정류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일상적 편익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뿐이겠는가. 도처에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킬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2010년 지방자치선거를 새로운 아젠다로 접근하자

 

정치주체들은 새로운 가치와 정책으로 2010년 지방자치선거를 대비해야 한다. 그 핵심 테마는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이다.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서민들의 구체적인 일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책대안을 갖고 서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보수화되어 가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그들의 개혁성을 부활시켜야 한다. 또한 새로운 가치와 정책으로 무장한 새로운 대안세력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민의 삶과 떨어져 있는 세력이 아니라 서민과 함께 공간과 일상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앞으로 1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다. 정치주체들은 새로운 아젠다를 통한 선거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개발지상주의와 시장지상주의에 의해 짓눌린 서민들의 일상을 변화시켜내는 것을 중심으로 유권자 지지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공간과 일상의 재구성은 다양한 선거공약으로 외화 될 수 있으며, 정당 차원에서 각종 입법과 구체적인 중심공약으로 재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흐름은 지역차원의 일상적 담론을 활성화시킬 것이며 생활정치 활성화에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개혁진영 또는 새로운 세력이 지하철의 공간적 재구성 공약을 중심으로 여당과 경쟁한다면, 공공성 강화와 자본의 대립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서민들이 접하는 일상의 문제이다. 자기의 문제를 중심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과 지역자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제화 하는 세력에게 광범위한 유권자연대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보수의 시대에 우리의 일상도 점차적으로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일상생활이 보수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가 단지 부시의 잘못된 정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정치주체들이 새로운 가치와 담론을 통해 영구 혁신의 세력으로 거듭날 때 한국판 오바마가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발상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생태와 환경이라는 미래의 중대한 가치로 직결될 것이다.

 

세 갈래 모색 :

 

한국판 DLC (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한국판 CAP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한국판 move on

 

이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가치와 담론은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구성적인 것이지 선험적으로 규정된 가치를 추종하는 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구성의 정치’라는 접근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정치가 우리의 현실에 무조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단 그 과정의 정수를 벤치마킹하여 우리 현실에 맞게 변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가치를 실천하려는 세력은 세 갈래의 경험을 우리 현실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한국판 DLC이다. 패배의 연속에서 미국 민주당 내부의 일단의 그룹들은 ‘제3의 길’로 명명되는 새로운 정치철학을 수립하고 실천했다. 그 결과 클린턴시대를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은 변화하는 미국의 상황에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정책과 정치를 통해 기존 지지층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어냄으로써 집권에 성공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개혁진영 내의 정당들은 이러한 경험을 벤치마킹해서 정당의 혁신을 위한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보고서에서도 강조했듯이 제3의 길 또는 중도의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현재 국민들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지속적인 정당의 혁신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그 혁신의 구조와 혁신할 사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당을 건축으로 따지면 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창은 안팎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내부세계와 바깥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물이고, 또한 외부의 풍경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는 정기용 건축가의 규정처럼, 정당은 정치와 일상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매개물이며 대중의 일상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 정당이, 창이 더럽혀진 채로 남겨져 있다면 정치의 시야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창을 닦아가는 과정이 바로 정당정치에서의 혁신이다. 이는 한나라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둘째, 한국판 미국진보센터(CAP)다.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인 CAP는 진보적 싱크탱크로 불린다. 한국의 상황에서 CAP, 브리킹스연구소, 헤리티지연구소 등은 부러운 대상임과 동시에 실현되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고 현실만 한탄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CAP은 진보적 담론생산의 허브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정당연구소의 본래적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당의 관료주의에 휘둘리는 정당연구소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와 정책을 개발하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네트워크 허브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사회적 공공성과 공간․일상의 재구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구단체와의 네트워크로 점차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한국판 무브온(move on)이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들이 표출되고 젊은 세대들이 중심이 되는 온-오프를 연결하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move on은 소액다수, 십시일반을 통해 선거에 다양한 방식으로 집결했으며, 다양한 계층과 이념을 묶어내는 커다란 그릇이었다. 즉 현장에 뿌리를 두고 대중들과 호흡하고 토론하면서 정치운동과 일상생활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와 같이 인터넷 문화가 발전한 곳에서 web 2.0의 원리에 의한 쌍방향 소통공간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단지 이것이 가상공간의 토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공론영역에서 실천적 운동으로 결합될 필요가 있다. 정치는 고리타분하고 나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난장의 문화는 무정형처럼 보이지만 다양성들이 어우러지는 가장 서민적 문화다. 우리 사회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새롭게 진화되어야 한다.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고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 통해 희망을 만들어 가자

 

이상과 같이 세 갈래의 실험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영구적 정당혁신, 연구와 아젠다 개발의 혁신, 새로운 온-오프의 대중운동이 결합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적 아젠다는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과 공간을 공공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을 통해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의 정치가 새로운 정치와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리 하르투니언 (H. Harootunion)은 “일상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속속들이 관철되는 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에 균열을 내는 무수한 차이들의 장”이라고 했다. 일상은 자본과 권력의 지배가 관철되는 식민화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공간은 역으로 지배에 균열을 내는 무수한 일상적 실천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그곳에 새로운 정치의 희망은 있으며, 그 일상이 영위되는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희망을 현실로 전환시켜야 한다. 미세하고 쫀쫀한 것으로 보이는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들을 만들어내고, 그 실천들이 거대한 흐름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정치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필자의 문제제기가 활발하게 토론되기를 기대한다. 다양한 의견그룹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논쟁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연대, 사회적 공공성이 조화롭게 구성되는 새로운 사회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광폭한 태풍은 바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그 태풍을 통해 바다는 신성한 생명력을 보장받는다. 바다의 뒤섞임은 태풍을 통해 가능하다. ‘일상생활의 식민화’라는 보수의 바다에 잠식되어 있는 국민들의 일상을 새로운 태풍으로 생명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새롭게 변모된 일상이 공공성의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치주체들의 혁신적 노력이 즉각적으로 착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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