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3-1) 기억이 공간으로 스며든다: Holocaust Mahnmal

시놉티콘 2009. 3. 12. 14:06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Holocaust Mahnmal에 대한 모든 설명은 계속 강조하지만 전적으로 이동기박사에게 의존한 것이다. 이동기 박사께서 조만간 다른 매체를 통해 이 공간에 대한 탁절한 설명을 제공하기를 고대한다.

 

3-1. 기억이 공간으로 스며들다 : Holocaust Mahnmal의 추모공간

 

고통스러운 조우(遭遇)

 

* 추모 공간의 전경이다. 생경한 첫 대면은 그 속살을 듣기 시작하면서 고통스러운 대면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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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과의 만남은 충격이었고 슬픔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성찰하게 된 계기였다. 홀로코스트, 유대인대학살…역사가 우리에게 짓눌렸던 슬픈 역사, 그리고 반복되는 반성…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역사의 무자비성은 언제쯤 근절될 수 있을까?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그 재생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 지속되는 오늘에도, 학살의 꼬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치시대 거대한 유대인 수용소가 지금도 엄연히 다른 방법과 모습으로 살아남아있다. 인권의 가치를 천부적인 것으로, 분할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국제 레짐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억의 끊임없는 망각효과일까? 기억을 재생하려는 노력이 그저 무의미한 행위일 뿐인가?

 

비극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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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인 Holocaust Mahnmal은 그 조형물이 관의 형태를 띠고 있다. 1989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근 15년 이상의 토론 끝에 2005년 5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로 95cm, 세로 238cm의 규격으로 총 2,711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는 추모공간이다. 이곳은 브란덴브르크 문의 가까운 옆에 위치해있다.

 

이 장소를 선택한 것도 많은 토론을 통해 결정되었다고 한다. 빌헬름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거리는 나치 시기 악명 높은 정부기관이 있던 곳이었으며, 뒤쪽 공원에는 가해자들이 살던 주거지였으며,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지나가는 길이었고, 서베를린 문화의 중요 장소였다.

   

  * 추모 공간의 건축이 진행되었던 막바지 광경이다. 이 자료는 이 곳에 위치한 전시관에서 판매하는 홍보책자에 수록된 내용은 스캔한 것이다.

 

가장 비극적 역사를 평화와 화해의 상징적 공간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600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들, 그 중 300만 명은 이름도 알지 못한다. 하물며 또 다른 희생자들인 집시 34만 여명은 어쩌면 잊혀져 가는 역사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역사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일까? 아니 기억하지 않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야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도 현장에서 재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기억의 공간화를 통한 재생 방지의 노력이 작동하고 있는가? 전승기념탑과 희생추모공간이 병존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모순투성이며 조화할 수 없는 공간의 충돌이다.

 

어쩌면 희생을 겪은 자들에게 추모의 공간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권력자들의 정치노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한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남지 않을 것이고, 무엇도 남지 않으면 기억 속에 박혀버려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아포리아이고, 모순적 시간이라고 밖에는….

 

획일과 규격화를 반대하는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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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조형물 한 개 한 개는 모두 높이가 다르다. 나치시대 출생과 삶의 조건이라는 획일적 구획에 의해 죽음과 생존의 경계선에 서야만 했던 역사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그들의 개성과 구체성, 그리고 다양성을 부여함으로써, 나치시대의 획일과 규격화를 배제하려는 논의의 결과라고 한다. 또한 숲과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의 일상과 추모를 연결시키려는 공간 배치라고 한다.

 

먼 곳에 있다면 굳이 도시민들이 찾아 볼 리 만무할 것이다. 그것은 그저 외딴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고 의례적 제사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도시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기억을 재생해내고 역사를 교정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추모 공간 건립에 유대인들이 반대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또 한번 어떻게 역사와 공간을 보아야 할 것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기억이 공간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에 대한 ‘바라보기’의 차이였을 것이다. 그것은 관점,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여간 정치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너무나 쫀쫀하고 미세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어서 헤어 나오기 힘들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치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과정인가. 다시금 고민하지만 일상의 작은 변화들의 축적만이 정치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단단하게 옥죄어 있는 일상의 보수성을 풀어내지 않고서 진보의 활력과 다양성은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닫힌 공간 안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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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공간 사이로 들어가자 중압감이 느껴졌다. 내 키보다 큰 추모 모형들 속에 갇혀 있는 느낌…어쩌면 이런 느낌이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의 느낌일까? 어린 시절 깜깜한 곳에 갇혀 나올 수 없다는 공포와 볼 수 없다는 공포, 혼자라는 외로움에 바르르 떨던 기억이 생각난다. 삶의 경계에 외줄타기와 같은 수용소의 공포,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그 공포만큼 너무나 강력하게 타오르는 삶에 대한 욕망들…

 

이 추모 공간 중간에서 더 멀리 빛과 건물과 출구가 보이듯이, 왜 그 시절에도 그 빛을 만들지 못했을까? 역사는 과거를 가정할 수 없다. 그 가능성은 그저 지나쳐온 기억, 또는 살아보지 못한 역사에 대한 재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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