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3-3) 기억이 공간으로 스며들다: Materials on the M

시놉티콘 2009. 3. 18. 11:37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3-3) 기억이 공간으로 스며들다 :

     Materials on the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추모전시관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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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는 작았고, 지하에 위치한 공간이었다. 이 전시관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논쟁말이다. 그래서 타협책으로 작은 전시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참 논쟁이 많은 사회인 것 같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심의민주주의, 참여와 행동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는다면 그 과정은 피곤하지만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과정은 아마도 풍성한 사회적 합의의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의 시대여서인가, 입구에서 몸수색을 한다. 유태인과 관련된 전시관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이 정도 절차쯤은 충분히 감당할만하다. 미국 공항을 통과할 때 그 수치스러움과 모멸감을 생각하면 말이다.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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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희생자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밝은 얼굴 뒤에 감추어진 죽음의 그림자들…

 

어떠한 이유도 모르고 단지 타고난 운명 때문에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아픈 기억들, 그리고 뒤늦게 벽에 걸려,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들…

 

우리에게 이런 역사는 낯선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 회색으로 내몰린 평범한 양민들의 학살과 홀로코스트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하루는 국군이, 하루는 인민군이 양민들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그 앞에서 양민들은 그저 무기력한 몸체였다. 전쟁과 살육의 현장에서 비참하게 학살된 양민들의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로, 피부로, 혈통으로 규정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시간…그리고 무참히 내몰려 버려진 학살의 공간…그리고 남겨진 기억들…

 

우리의 아픈 역사와 홀로코스트가 오버랩 된다.

 

가족의 죽음, 개인의 생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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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되었다. 끈끈한 가족애와 단란한 가정, 그리고 가족공동체가 함께 하는 정겨운 시간들은 나치즘의 총검에 의해 사라졌다. 가족의 죽음, 헤어짐은 그 어떤 슬픔보다 더 깊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도 헤어짐의 고통 즉 이산의 고통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반백년을 보내왔는가. 지금 그 만남의 기차가 1년 이상 브레이크가 걸려 멈춰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한계 지워진 생명, 누가 그 헤어짐을 막을 수 있을까. 국가권력이 그다지도 광폭한 반인권적 행위를 할 권한을 부여받았는가? 남과 북의 정부 모두 심각한 냉전적 광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죽고 나면 그 애절한 송사는 누가 부를 것인가? 단지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기만을 바라야 하는 것인가?

 

이 전시관은 개인과 가족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이 개인들의 생애사의 다양한 종합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홀로코스트를 추억하고 전시하는 것의 핵심은 그들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시관의 컨셉은 아주 잘 정리한 것 같다.

 

눈으로 보기도 끔찍한 학살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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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학살의 현장 사진이다. 죽은 자들은 이미 생명이 아니었다. 기계로 밀어내는 쓰레기로 전락했다. 엄청난 학살의 규모는 이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하다. 생명에 대한 경시,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순간들…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도 배가 부르면 다른 짐승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그 본능마저도 사라져버린 광기의 역사다. 학살을 명령한 자와 학살을 집행한 자, 학살을 방관한 자와 학살을 주장한 자들, 그리고 이 엄청난 광기의 역사를 방조하고 외면한 자, 그리고 학살을 당한 사람들의 역사가 홀로코스트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실천은 무엇인가? 만약 내가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면 나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 것일까? 이 도처를 떠도는 공포의 공간 속에 나는 진실을 외칠 수 있었을까? 너무나 잔인한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아마 온통 겁으로 철갑을 두르고 있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제발 꿈이기를…

 

유럽은 도망갈 수 없는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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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유태인들이 도망갈 땅은 없었다. 유럽 모든 지역에서 학살이 자행되었고, 수용소가 들어섰다. 촘촘히 박혀 있는 노란색은 학살을 의미한다. 빨간 색은 대규모 수용소를 의미한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표시된 지역만 벗어나면 생존할 수 있었을까? 저 촘촘히 박혀 있는 지점들은 죽음의 지점이며 비이성의 지점이며 비인간성의 지점이다.

 

유럽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감옥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무기력한 개인에게 도처에 장벽은 넘을 수 없음의 상징이다. 그들의 이름은 유태인들이다. 모든 곳이 판옵티콘(panopticon)이다. 감시의 시선과 육체와 정신의 훈육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제 감시의 시선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정신에 있다. 내 스스로가 나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규율하고 훈육하는 권력…. 누가 나를 감시하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감시하는 공간…

 

그 고통 속에서 살육은 지속되었고, 죽음의 공포는 현실로 나타났다. 벌거벗은 육체, 내동댕이쳐진 육신, 그리고 광기의 총탄 그것이 그 시대였다. 그들은 체념과 무기력으로 스스로를 감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존재했을 것이다. 해방을 향한 본능, 권력을 우회하는 기가 막힌 책략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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