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6-1) 동독 일상과의 만남: DDR Museum(ⅰ)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6-1) 동독 일상과의 만남: DDR Museum(ⅰ)
다 못 먹은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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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대학생들의 많이 찾는다는 유명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호명은 MARUKUS이다. 기차가 위로 다니기 때문에 항상 정기적으로 소음에 시달리며 음식 삼매경에 빠져들어야만 하는 곳이다. 우리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웨이터에게 하나 더 시키는 것이 좋을지 물었지만 대답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웨이터의 말을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피자 크기가 짐작이 될지 모르겠다. 사진으로 보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지하게 크다. 5명이 이 피자를 다 못 먹고 거의 절반을 포장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포식 아닌 포식을 했다. 오후의 일정을 어떻게 진행할지 난감했다. 배 속에 짐을 하나 더 넣어두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이런 피자집을 열면 수지가 맞을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까? 지금 같은 경기침체 상황만 아니라면 한번 도전해볼만한 소재인 것 같다. 피자가게 주인, 그것도 새로운 세상과의 접촉이고 삶의 원기를 불어 넣어 줄 에피소드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또 누가 아는가 대박이 나서 TV에도 나오는 맛집으로 자리잡을지도. 이 정도의 상상으로 피자의 기억은 줄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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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풍스러운 건축모양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베를린대성당’인 것 같기도 하고…그래서 눈요기로 사진을 올려본다.
동독인들의 일상세계
구동독박물관((Deutsche Democratic Republik Museum)에 들어섰다. 아주 작은 박물관이다. 초미니박물관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곳을 둘러보려면 공식 홈페이지 http://www.ddr-museum.de로 가면 된다. 이곳은 슈프레 강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내부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물 구조 사이의 좁은 길을 걸으며 동독의 일상을 구경하는 것은 약간 피곤하지만 신기한 걷기였다. 그리고 이곳의 구성은 ‘너무 작은 모습을 가진 구동독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잃어버릴 뻔한 기억들이었지만, 그것은 보존하고 기억하려는 독일인들의 심성이 내장되어 있는 것 같다.
나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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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좀 적나라하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문화로서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동독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반영하고 있는 문화로 말이다.
자극적인 사진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나체문화, 사회주의국가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검열이 벌어졌던 일상공간에서도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저항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감시와 통제 속에서 즐기는 나체의 여가시간은 해방의 시간, 해방의 공간, 자유의 시간, 자유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적 도덕을 제 아무리 강조해도 일상에서 대중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고, 저항함으로써 지배의 의도를 감쪽같이 물거품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의 문화는 처절한 일상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빛(지배)과 어둠(저항)이 교차하는 일상생활세계에서 어둠의 공간을 새롭게 포치하는 그들만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빛은 모든 것을 비추려고 하지만, 어둠은 그늘과 장벽을 만들어 침투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그 빛과 어둠의 질긴 쟁투가 벌어지는 일상생활세계는 평온한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살은 변화무쌍하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동떨어진 외양들…나체와 사회주의 인민이라는 결합은 도대체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해변에서의 휴가, 연인끼리 짝을 지어 즐기는 배구 등의 사진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규정되었던 사회주의의 일상이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우리가 언제 그들의 일상에 직접 다가가서 두텁게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우리와 다른 인류라고 아예 사전적으로 규정해버렸던 것은 아니었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실제로 작동하는 실체의 간극은 얼마나 클까? 많은 고민들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스포츠, 그 이중적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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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스포츠의 활성화인 것 같다. 전두환정권 시절은 3S(sport, sex, screen)의 전성시대였다. 또 뭐 ‘순자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단말마적인 자극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온통 3S로 해결하려는 그 기막힌 발상 말이다. 일상은 3D(Dangerous, Difficult, Dirty)인데, 머리와 자극만 3S에 가둬두려고 하는 발상…
동독사회도 스포츠를 통한 탈정치화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조로운 노동일상 속에서 새로운 향락과 욕망을 분출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울증사회가 되거나 아니면 저항의 사회가 될 것이다. 독재는 저항의 출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다양한 방식들을 도입했다. 그것이 지배의 힘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스포츠가 모두 독재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만 하더라도 IMF의 우울한 일상에서 박세리의 맨발 투혼과 박찬호의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은 단비와 같은 기쁨을 주었다. 최근 금융위기 속에서 WBC 준우승과 김연아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국민들에게 단비와 같은 기쁨을 주었다. 그렇다고 일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고된 일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희망은 꿀물과 같은 것이다. 이런 희망과 단비를 우리 정치는 왜 만들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희망을 주는 정치와 용기․도전을 보여주는 스포츠가 동시에 꽃피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희망과 상상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지곤 한다.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독은 스포츠 강국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국력을 과시한 것이었을까? 여하간 동독국민들도 스포츠에 열광했던 것 같다. 위의 나체문화와 같이 부족의 경제와 감시․통제사회에서 스포츠는 일탈과 욕망의 분출구 역할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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