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9-2) 장벽을 사이에 두고 걷기: 기억으로 들어가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9-2) 장벽을 사이에 두고 걷기: 기억으로 들어가 버린 베를린장벽
베를린장벽 경계선 위에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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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다.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이것이 관광의 대상이겠지만, 분단의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선이다. 이 발 저 발, 선을 넘었다 다시 넘었다를 반복했다. 이리도 쉽게 넘을 수 있는 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만 같으면 이 선 표시 위에 38선이라고 쓰고 싶다. 그러면 그 선은 이미 없어진 선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한 눈에 들어온 벽보판 모양의 사진…. 너무나 낯익은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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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 최고통치자가 함께 악수하고 걷는 모습이다. 선전판의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기역자 모양이다. 왜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땅으로 시선을 옮기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 선전판 아래로 베를린장벽의 경계선이 놓여 있다. 분단의 상징 선 위에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는 선전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정치라는 것이 무언가. 국민들 편안하게 해주는 것 아닌가.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와야 볼 수 있는 베를린 이 외곽지역에서도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선전판들이 붙어 있는 판에,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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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전판 옆에 또 다른 선전판이 보인다. 철길을 이어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이다. ‘한 행렬 한 행렬씩’이란 단어 위로 열차가 휴전선을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리로 그리고 저리로’라는 단어 사이로 남북의 차량들이 오고 가고 있다.
독일은 자신의 역사를 거울삼아, 한반도가 한 행렬 한 행렬 조금 씩 조금 씩 통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철마는 달려야 한다고 그렇게 외쳤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그리고 철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멈춰 서 있다. 달리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서로 이리로 넘어가고 저리로 넘어가는 한반도의 모습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사람이 넘어가지 못하고 차량이 넘어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사람이 만나지 못하고 물자가 넘나들지 못하는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소비되었는지 안다면, 이건 아니다.
한 쪽에서는 로켓을 발사하고, 한 쪽에서는 PSI 전면참여를 외치고 있다. 함께 어깨 걸고 걷는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응시하고 어깨를 걸어가던 어색한 동행길이, 이제는 치킨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
누가 더 기다리는지 결기어린 눈빛으로 상대방 차를 바라보며 낭떠러지로 차를 몰고 가는 모습이다.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여하간 차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기다리는 전략도, 벼량끝 전술도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마냥 기다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마냥 보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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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장벽을 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장벽을 허물지는 못할망정 말이다. 분단의 아픔을 기념하는 전시관의 상단 벽면에 커다랗게 새겨진 사진을 보라. 군인은 감시하고 시민들은 장벽을 쌓는다. 넘어갈지 모를 시민이 넘어가지 못하게 총을 들이대고 감시하고 있다. 그 와중에 파이프를 물고 장벽을 쌓는 어느 노동자의 무덤덤한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 길로 돌아가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길은 우리가 이미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는 것을 확인한 길이다. 장벽을 하나 둘 허물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길을 여정 속에서 모색해야 한다. 처음은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같이 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변모될 것이다. 그게 일상의 힘이다.
공간을 가로막는 장벽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역사의 장벽임과 동시에 기억의 장벽이다. 반공으로 점철되고 반제국주의로 점철된 역사의 강요가 아니라, 그리고 그렇게 강요된 역사에 의해 각인된 기억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한 공존의 시간으로 변해가야 한다.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일상 속에서 축적되고 삶에서 서서히 구현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먼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선전판을 보면서, 우리를 응원하는 독일 사람들의 메시지로 생각하고 새삼 마음을 다시 다지게 된다.
무너져 내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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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1985년 폭파되었던 당시의 장면이다. 이 교회는 ‘화해교회’로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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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위의 사진 모습을 하고 있다. 화해교회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베를린장벽이 만들어지면서 마을이 갈라져버렸다. 이곳에 신자들은 교회에 갈 수 있는 사람과 갈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우연이 TV에서 나오는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만남의 광장’이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영화전문가가 아니라 장르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동네 친인척이 분단과 함께 둘로 나뉘게 되었고, 그 고통의 극복하기 위해 땅굴을 파서 서로 오가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의 만남의 광장이란 국군도 인민군도 모르는 땅굴 중간지대의 넓은 공간이다. 이 공간은 분단된 동네의 친인척이 만나는 공간이며, 자신의 역할을 변경하며(주인공 박진희는 남쪽의 처녀이기도 했고 북쪽의 선전원 처녀이기도 했다)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핏줄이 이념과 체제를 뚫고 소통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끝내 다시 닫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 마을에 우연이 굴러들어온 주인공 임창정은 어느 순간 산골오지에 선생을 자처한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박진희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런저런 사건으로 북쪽에 남겨지게 되고 몇 년 후 돛단배에 가족을 싣고 남하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실제 선생으로 왔어야 할 류승범은 중간에 지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지뢰는 터지지 않는 불량품이었다.
이런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분단을 코미디로 버무린 영화가 이상하게도 화해교회와 오버랩되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면이지만, 어딘가 그 영화가 슬프게만 다가왔다. 그 이유는 모두 남하를 결정한 친인척들이 남한사회와 공존하지 못하고 정부에 의해 외딴 섬에 집단이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분단은 이렇게 섞여 사는 것을 거부하는 모양이다.
* 화해교회가 폭파되는 연속사진이다. 이 사진은 화해교회 내부에 들어가면 엽서를 판매하는데(엽서는 무인판매), 그 엽서를 스캔한 것이다. 이렇게 분단은 더욱 깊어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화해교회는 동독인들이 교회 위로 올라가 서독민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마저도 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폭파한 것이다. 보는 것마저도 죄악시되던 시절…. 그 교회 안에는 헤어짐의 슬픔과 만나지 못함의 고통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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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교회 내부 모습
종교의 공간도 이념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함께 예배를 보던 공간은 사라져버렸다. 단지 서로를 보고 말을 나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과거 1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억겁의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곳에 예수님도 없다. 그저 철저한 이념과 체제의 그림자만 가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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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종은 아마도 통일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널리 울려 퍼져 통일을 전파하는 아름다운 소리로 말이다. 과거 애절한 이별의 소리가 이젠 만남의 소리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 흔적을 남겨둔 것은 이 종소리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독일인들의 바람 그 자체일 것이다. 서로 부둥켜 안은 몸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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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화해동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로 꼭 부둥켜안고 있다. 절대로 놓지 않을 모습을 하고 말이다. 절대로 놓지 않을 수 있는 부적과 같은 힘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조만간 그 동상이 우리 땅에도 만들어지고 그래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부적이 되기를 바란다. 무너져 내려버린 화해교회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면, 조만간 다가올 우리의 미래는 화해동상이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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