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11-1) 유대인 박물관: 생존의 선,죽음의 선,영속의 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1-1) 유대인 박물관: 생존의 선, 죽음의 선, 영속의 선
박물관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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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베를린장벽 공부를 마치고 오후 유대인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유럽에서 이런 날씨를 그것도 북부지역에서 이런 날씨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하던데, 행운이 있었나 보다. 그저 관광여행이었으면 이 날씨를 만끽하면 될텐데, 공부여행이고 특히 아픈 역사에 대한 여행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너무 좋은 것도 마음에 걸린다. 지하철로 이동하고 도보로 걸어가다 보니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잘려 나간 듯이 보이기도 하고 뭔가 단절되어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칼날처럼 건물의 부분 부분을 도려낸 것 같기도 한 현대식 건물이다.
건물을 건축할 때 건물의 성격과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한 작업이었으리란 생각은 했지만, 첫 눈에 보이는 모습은 미술관, 그것도 추상적 현대 이미지 미술전시관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독특한 건물은 독특한 영감을 주는 것이니, 들어가서 만나보면 새로운 영감이 다가올 것이다.
이곳도 예외 없이 테러와 전쟁 중이다. 모든 물품은 별도로 보관함에 넣어야 하고, 몸수색은 기본이다. 하도 목이 말라서 물병을 들고 입장하려고 했더니 액체 폭탄일 수도 있으니 버리고 들어가야 한단다. 목은 마르고 물은 버려야 하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유대인박물관에 왔으니 이곳 규정을 따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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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미니어처(miniature)다. 갈지자 모습의 건물은 당대 유대인들의 힘겨운 역경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선의 길은 존재하지 않았고 굽이굽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궤적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왜 이런 건물의 모양을 설계했는지 설계자의 얘기와 이 건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전개된 토론내용을 알아보고 싶다. 그것은 다음의 과제물로 남겨두자(실제 아직까지도 이 과제물에 손도 대지 못했다. 역시 지나고 나면 손대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닥치면 닥친 일을 빨리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데 우리들은 그 진리를 쉽게 간과한다).
생존의 선, 죽음의 선, 영속의 선
입구에 들어서면 길은 세 갈래 갈라진다. 생존과 죽음, 영속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입장하는 것이다. 세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은 어쩐지 어색하고 공포스럽고 슬프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 당시에 두 가지의 길에 서 있었을 것이다. 생존과 죽음이라는 완전히 엇갈린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유대인들은 영속의 길을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과 같은 박물관으로 등장한 것 일게다. 이 건물은 세 가지의 길에 대한 건축적 표현이다. 어떤 길은 유대인들을 죽음의 길로, 어떤 길은 생존의 길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총합으로서 영속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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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림길에서 영속을 뜻하는 한 줄기 빛이 보인다. 건물 천장의 한 공간으로 새여 들어오는 빛…. 그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고 영속에 대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 빛을 보며 생존의 꿈을 놓지 않았을 사람도 있고,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강렬하게 내려오는 빛, 그것은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빛이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탈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절망의 빛이기도 했다.
보이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빛….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의 흔적이지만 그저 눈으로 밖에는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현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빛은 아름답지만 잔혹한 빛이며, 희망이지만 절망의 빛이다. 그러나 지금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 빛은 아마도 영속적 삶을 갈구하는 유대인들의 희망을 표현하는 것 일게다.
감옥 사이로 들어오는 빛, 그것은 감옥의 차가움을 대신하는 따스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시는 ‘화중조’(畵中鳥)처럼 종일 날아도 그 자리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일 나의 몽상은 바깥세상을 나래 치며 돌아다니지만 나의 육신은 항상 차가운 감방을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이라고 할까…. 어쩌면 지나간 것들이어서 이렇게 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당상의 현실이고 실존이라면 이런 생각은 값비싼 사치일 것이다.
49개의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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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았던 홀로코스트를 추념하는 기념물과 유사한 기념물이 보인다. 49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기념물이다. 창을 통해 보이는 그 기둥들에는 늦겨울 앙상하게 말라있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모든 잎을 털어내고 겨울을 견디기 위한 초라한 가지들만 드러내놓고…. 아마도 봄이나 여름에 이곳에 왔다면 이 기둥은 새로운 생명의 기둥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가을에 왔다면 잎들을 털어내는 몸부림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기둥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 겨울이 가장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이렇게 지금은 앙상하게 남아 있지만 곧바로 새잎을 만들어서 푸르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두 번의 만남이다. 거대한 추도 기념물과 49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작은 추도 기념물…. 모두 힘들고 어려운 당대의 삶을 표현한 것이며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작은 공간은 쓸쓸해 보였다. 쇠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어쩌면 이 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쇠철문은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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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폭력적 역사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사방은 거대한 기둥으로 하늘을 쳐다보기 힘들고 갑갑한 마음에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래서 그 기둥 끝으로 보이는 빛의 공간은 허겁지겁 달려가 만지고 싶은 공간이 된다. 빛이 주는 힘, 그 거대한 기둥 건물 속으로도 빛은 스며든다. 하늘을 온통 가리고 있는 기둥 위의 나무 숲 사이로 희미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빛은 전달된다. 어쩌면 그것이 영속의 길일지도 모른다. 통로처럼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사이사이를 스며들어 전체를 밝게 따뜻하게 만드는 것, 아마도 그것이 영속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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