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미 정부 돈 풀어 위기수습…신자유주의 이미 종착역” | |
[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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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당신은 이윤율 동향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장기동학을 설명해왔다. 최근 세계 경제위기 역시 이를 통해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제라르 뒤메닐=지금의 위기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이윤율 저하로 인한 위기가 아니다. 이윤율은 1970년대 들어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 초부터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두 개의 큰 요인이 이번 위기를 가져왔는데, 첫번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금융화와 결합된 상층계급(자본가와 경영자)의 고소득 추구 경향이다. 두번째 요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된 미국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인데,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요인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금융화·고소득 추구 경향으로 이뤄진 위기 요인의 조합이 취약한 금융구조를 낳고, 여기에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가세하면서 금융의 취약성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정=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런데 표면상 위기는 더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뒤메닐=현재 위기는 1930년대 위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고소득 추구나 금융화는 1920년대에도 있었다. 다른 점은 미국경제의 불균형이란 요인이 1930년대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대공황만큼 심각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인데, 개입의 강도를 보여주는 게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8%였던 미국 재정적자는 올해 11%로 늘었다. 1930년에는 겨우 4%였다.
정=위기가 큰 무리 없이 수습될 수 있다는 얘긴가.
뒤메닐=2001년 불황 당시엔 주택경기를 부양해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주택버블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지금의 위기 상황에선 이것이 불가능하다. 오바마 정부로선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국가재정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것이 경제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새로운 위기를 부른다는 점이다. 미국재정적자 11% ‘불균형’ 심화
정=많은 학자들이 최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 종말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뒤메닐=신자유주의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라틴아메리카는 확실히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추세다. 중국도 다른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경제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머잖아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유럽은 아직 뚜렷한 변화 조짐이 안 보인다. 프랑스·독일의 보수정권이 정책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리지만 완만하게 탈신자유주의의 길을 갈 것이다.
정=한국에도 번역된 <자본의 반격>에서 케인스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케인스주의가 여전히 실행가능한 대안이라고 보는가.
뒤메닐=케인스주의는 위기에 대한 거시경제적 처방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타협까지 포함한다. 일단 좁은 의미의 케인스주의, 다시 말해 케인스의 거시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핵심은 강력한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무역과 자본이동에 대한 일정한 규제 등인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와는 상충되는 방향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이번 위기는 결과적으로 케인스의 타당성을 재차 확증해준 셈이다.
정=사회민주주의적 타협도 마찬가지로 유효한 대안일까.
뒤메닐=회의적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의 계급타협은 대중계급과 손잡은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강력한 대당(對當)으로 자리잡고,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도 거대한 사회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사회운동도 위축된 지금 상황에선 과거 같은 타협이 쉽지 않다. 물론 새로운 유형의 타협이 나타날 수는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중계급과의 동맹 없이)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정=최근 자크 비데와 함께 쓴 <대안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다른 세계를 위한 다른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무엇이 갱신돼야 한다고 보는가.
뒤메닐=무엇보다 계급론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전통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했다. 이런 이분법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 계급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법인기업의 출현과 함께 소유·경영이 분리되면서 거대한 관리자 계급이 등장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분화도 가속화돼 전통적 생산노동자뿐 아니라 광범위한 비생산노동자와 실업자층이 양산됐다.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전통적 이분모델은 이제 ‘자본가-관리자-대중계급’이란 삼분모델로 대체돼야 한다.
남미·중국 신자유주의 일탈 조짐
정=당신이 주장하는 ‘대안마르크스주의’는 결국 ‘관리자 자본주의론’을 마르크스주의 안에 수용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뒤메닐=맞다. 그런데 계급론 외에 두 가지가 추가로 필요하다. 하나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다. 마르크스에게 착취의 국내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있었지만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새로운 국제적 착취기구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은 외관상 민주적이지만 이들을 통해 관철되는 것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다. 착취의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으로서 제국주의론이 요청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변혁론이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대중투쟁을 제시한다.
정=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혁명인가.
뒤메닐=여러 종류의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관리자 계급으로부터 한층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선 대중계급이 더 강하게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할 것은 관리자의 지배가 대중계급의 지배를 대체하는 ‘대리주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귀결은 대리주의였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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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9-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