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학습하라, 토론하라, 연대하라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 숱한 여성과 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한 푯대다. 세계 진보운동의 ‘강령’이던 저 열정적 호소가 새삼 사무치는 까닭은 이 땅의 현실이 절망스러워서다. 이명박 정권이 숨진 철거민들을 끝내 모르쇠 해서만은 아니다. 쌍용자동차에서 불거진 ‘전쟁’ 때문만도 아니다. 경제 살리기를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데도 한나라당을 두남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다.
미디어악법 날치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기업 이익을 관철하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엄호하는 꼴은 전혀 낯설지 않다. 영남의 극소수 상류층이나 서울 강남에서 나오는 박수도 당연하다. 그러나 영남의 대다수 민중이 저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풍경은 우리에게 학습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일깨워준다.
미리 눈 흘기지 말기 바란다. 진보세력이 민중을 가르치자는 게 전혀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뺄셈만 고집하는 진보세력 또한 학습이 절실하다. 아니, 나 자신부터 학습에 게으르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의 대안을 마련하겠노라고 연구원을 만들었으면서도 아직 민중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면서 한-미 자유무역은 옳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공부하며 신자유주의 아닌 대안 경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진실을 공유해 갈 때다. 재벌 대변기구인 전경련은 물론, 언제나 저들과 한 패거리인 부자신문들이 넘치는 돈줄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기에 학습은 더 절실하다. 저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여전히 시장만능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우기거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 곧장 시장을 부정할 셈이냐는 흑백논리로 언구럭 부린다. 시장만능주의와 다른 경제 대안들을 공부하지 않을 때, 누구나 윤똑똑이들의 호도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 학습과정은 민주적이어야 옳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일방적 선전이 아니라 쌍방향의 토론이다. 민중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1970년대에 지금은 사라진 동독의 ‘이데올로그’들과 나눈 대화를 토로한 바 있다. 그들은 민중참여 교육론을 적극 평가한 뒤 언죽번죽 말했단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라면 참여에 관해 토론하는 게 옳다. 그리고 당신은 참여를 부추겨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니다. 우리는 민중이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다.” 그랬다. 민중이 알아야 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동독 엘리트의 자부심, 권위주의의 전형이다.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동독이 속절없이 무너진 까닭은. 혹 이 땅의 진보세력이 민중에게 살가운 호응을 받지 못하는 까닭도 저 부자신문의 왜곡 못지않게 그곳에서 찾아야 옳지 않을까. 사실에 근거한 학습, 겸손하게 마음을 연 토론이 절실하다.
실사구시에 밑절미 둔 학습과 토론은 그 자체가 조직의 과정이다.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싱그럽게 학습했듯이 새로운 조직의 고갱이는 연대다. 연대는 모두가 주체로서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힘을 모으는 덧셈의 슬기와 이어져 있다.
그래서다. 세계 진보운동의 저 푯대를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의 변화한 시대 흐름에 맞게 재구성해야 옳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온새미로 실현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절망스런 땅의 골골샅샅에서 ‘작은 희망’을 지며리 일궈온 ‘당신’에게, 주체로 나서길 감히 제안하는 까닭이다.
“학습하라, 토론하라, 연대하라!”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기사등록 : 2009-08-10 오후 08:1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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