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2-3) 니콜라리성당과 박물관 구경, 그리고 맥주타임

시놉티콘 2009. 10. 9. 17:13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2-3) 니콜라리 성당과 박물관 구경, 그리고 맥주 타임

 

옛 모습이 물씬 풍기는 니콜라리성당은 덤으로 구경하는 기분도 좋다. 옛 것의 멋스러움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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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풍광

 

현대식 건물모양과 모던한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많은 그림과 조각들에 감탄하게 된다. 장장 2시간이 넘게 구경을 했으니 눈은 호사했지만 몸은 천근만근이다. 워낙 예술작품을 보거나 해석하는 능력이 없는지라 그저 눈으로 감상하는 수준이었지만, 그 작품을 만들었던 작가들의 능력에 감탄이 연발했다.

 

특히 이번 여정이 아카이브 구축과 사회주의 일상에 대한 연구에 있었기 때문에 두 편의 그림은 나를 사로잡았다. Johann Peter Hasenclever의 1846년 작품인 “Hieronymus Jobs als Schulmeister"와 Carl Hertel의 1874년 작품인 ”Schulstube während des Geographieunterrichts"다.

 

엽서를 가지고 왔으나 저작권 문제로 그림을 올리지 못해 안타깝다.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한다.

 

두 그림 모두 어린이들과 교사가 함께 있는 교실을 담은 것들이다.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 뒤에 혀를 내밀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 대부분 열심히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하는 학생들 사이 사이에 소위 말하는 ‘말썽꾸러기’ 학생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우는 아이, 딴 곳을 보는 아이, 서로 엉켜 싸우는 아이들, 책꽂이의 책을 꺼내다가 책 뭉텅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 무엇을 먹는 학생, 더러운 교실 바닥…(이상, “Hieronymus Jobs als Schulmeister")

 

사려깊어 보이는 선생님, 그러나 뒷자석의 학생들은 잡담에 여념이 없다. 뭔가 그 전날 즐거운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뒤돌아서 얘기를 듣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이상, ”Schulstube während des Geographieunterrichts").

 

우리들의 일상의 모습이다. 제 아무리 엄한 선생님, 제 아무리 인기있는 선생님, 제 아무리 자상한 선생님이 있어도 학생들은 제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다수의 학생들은 경청하지만 그 외의 소수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렇게 교실의 일상은 만들어진다.

 

그 전날 겪은 에피소드보다 교실의 수업이 즐거울리 없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살피는 것에 여념이 없다. 꼴통 말썽꾸러기는 교실은 뒤범벅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이 일상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무수한 사람들의 미세한 진동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일상이다. 그것은 변화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교실의 정적을 깨는 책 쏟아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루한 수업에서 진행되는 선생님 몰래 선생님 놀리기는 한판 웃음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선생님 몰래 행하는 행동이 들키지 않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은 가진 자들, 권력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며 추억이며 기억이다. 이 기억은 개인에게 내장되지만 당대의 집단기억으로 존속된다. 1970년대 통기타와 장발머리가 저항의 집단기억이었듯이, 1980년대 최루탄과 거리시위가 집단기억이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런 표상 외에도 다양한 기억들의 구성해내는 일상이 존재한다. 일상은 한 겹이 아니라 다 겹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흥미진진하면서 동시에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이다.

 

그것에서 세밀하고 두텁게 읽어내는 작업은 더디고 힘들지만 해야 할 방법이다. 그 디테일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 언제쯤 조금은 잘 읽을 수 있을까? 가끔 그 불가능성에 암담하기도 하다.

 

라이프찌히의 밤거리

 

박물관을 뒤로 하고 나오니 이미 라이프찌히는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호사스러운 구경을 했더니 어둠이 낮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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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모습과는 다른 독일의 거리모습은 낯설지만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각박한 서울도시의 야경에 비하면 넉넉하고 한산하고 높지 않다. 그 길을 걸으면서 라이프찌히의 밤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밤은 두렵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두렵지만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중성이 살아있는 시공간이다.

 

그래도 일탈과 음주와 가무가 밤에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목도 축이고 배도 채울겸 맥주집으로 이동을 했다.

 

Auerbachs Keller Leipzig

 

맥주집 앞에 어울리지 않는 조각상이 있다. “Szene in Auerbacks-Keller Aus Geothes 'Faust'." 라이프찌히 대학 법학과 출신이 괴테여서 이런 동상들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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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거리와 어우러진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조각상. 어쩌면 우리처럼 예술작품을 가까이서 접하는 못하는 것에 비하면 언발란스하지만 정겹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그 위치선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잘 모르겠지만 이 자리가 괴테와 무슨 인연이 있을거란 짐작만 갈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옆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 곳에 맥주집(Auerbachs Keller Leipzig)이 있기 때문에…. 대규모 술집이다. 이 맥주집의 역사도 짧아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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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맥주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열띤 일상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조금씩 오르는 취기 때문에 약간은 격앙되기도 하고 약간은 우수에 빠지기도 하고 약간은 낭만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여유롭게 진행되는 술자리, 밥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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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시면 어쩔 수없이 자주 갈 수밖에 없는 화장실…. 그런데 화장실 가는 통로도 벽면이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입도 호사하고 눈도 호사하고 본능적 문제도 해결하는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라이프찌히의 밤은 깊어 갔다. 한잔 한잔의 술과 안주와 대화와 논쟁….

 

이제 내일부터 우리는 아픈 동독의 흔적들과 조우한다. 어쩌면 오늘 저녁의 여유가 라이프찌히의 마지막일 것이란 예감과 함께 우리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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