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3-1) 슈타지 박물관 : 슬픈 기억과 해방의 외침

시놉티콘 2009. 10. 15. 16:35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3-1) 슈타지(Stasi) 박물관 : 슬픈 기억과 해방의 외침

 

슈타지박물관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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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국가공안국(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약자 MfS)은 슈타지(Stasi, 국가공안을 뜻하는 Staatssicherheit에서 유래)로 흔히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국가공안국(STASI)을 국가공안보위(Staatssicherheitsdienst)의 약자로 칭하기도 하였다. 국가공안국은 동독의 보안 비밀경찰과 첩보조직이었다. 국가공안국 본부는 동베를린에 있었으며, 리히텐부르크의 확장 조직을 비롯한 여러 소규모 조직들이 도시 전체에 깔려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첩보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공안국의 모토는 당의 방패와 검(Schild und Schwert der Partei)이었는데, 이는 이 기관이 소련의 공산당에 해당하는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과 연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90917

 

 

슈타지 건물은 그 외형만으로는 도대체 성격을 알 수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건물이 그 악명 높은 슈타지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아마도 슈타지 마크를 보지 않고는 감을 잡기 어렵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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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슈타지 박물관으로 변해있다. 악명 높은 기구가 이제는 그 악명을 다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박물관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구동독 시절, 그 악명 높았던 슈타지의 행적이 담겨있는 공간에서,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대중 위에 군림하고 감시하고 감금하고 탄압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곳은 구동독의 감시체제와 치열한 시민간의 쟁투가 공간과 기억으로, 역사로 남아있다. 이런 기억과 역사를 공간과 함께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은 독일역사의 슬픈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를린에는 나치 탄압의 비인간성을 막아내기 위한 다양한 아카이브와 건축시설이, 구동독 지역에는 구동독시절 철저한 감시의 독재를 재생시키지 않기 위한 다양한 아카이브와 건축물이 있다. 20세기 전체를 슬픈 역사로 휘감은 곳이 독일이다. 그만큼 치열한 반성의 흔적과 재생방지를 위한 노력들로 가득 찬 곳이 독일이기도 하다.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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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정문 바로 옆 상단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현대 감시의 첨단장비인 CC-TV가 동독시절 감시와 도청의 상징인 슈타지 건물에 부착되어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과거 첨단장비가 동독주민들을 감시하는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슈타지의 악명 높은 역사를 반성하는 박물관을 지키는 첨단장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러니라고 할까? 첨단장비를 누가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장비의 윤리성이 결정되는 것일까?

 

나는 무엇으로 판단하건 간에 누군가에게 나의 행적이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파악된다는 것이 싫다. 어쩔 수 없는 현대사회의 문제로 인해 CC-TV가 필수적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최선의 것이라고 말하기 싫다. 그런 범죄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사회이고 그것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제 아무리 엄청난 무력을 사용하여 이라크를 공격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도 그 공격의 폭력성이 다시금 테러분자들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구조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세계가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제적 문화와 호혜평등의 지구를 만드는 것이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지책이 아닐까?

 

왠지 슈타지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CC-TV가 처량하게 보인다.

 

1989년 시간의 문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계단에서 우리는 1989년의 상황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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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동독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이다. 라이프찌히 시민들에 의한 민주화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알리는 전조임과 동시에 사회주의의 변종적 체제인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행위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곧이어 독일통일로 나타났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선언되었을 때 그 많은 독일인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든 장비를 동원해서 그 오랜 시간 독일을 둘로 갈라놓았던 장벽을 허무는 과정에서의 환희, 아마도 만나지 못했던 슬픔에 대한 항변이었으며 철저히 통제․감시당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동독의 마지막 시간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도대체 붕괴될 것 같지 않던 동독이 한 순간의 급격한 물결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 힘은 무엇일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고민의 핵심지점이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읽어내는 분석력과 과학성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와 같이 분단된 국가의 국민으로서 동독의 붕괴와 통일독일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 길이 올바른 길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독일시민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 그 과정에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냄으로써 문제점을 사전에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이 우리의 상황과 같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연구자들의 몫일 것이다. 이미 20년이 지난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구를 축적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없애지 못함으로써 서로 각자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 색안경의 자세 때문에 북한을 붕괴의 대상으로만 적의와 대결의 대상으로만 보아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아닌지? 자문 또 자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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