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노동경제학 권위자 리처드 프리먼-이정우 교수
“OECD도 노동시간 줄여 일자리 나누기” | |
‘노동경제학 권위자’ 프리먼-이정우 교수 특별대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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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학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을 각각 대표하는 이정우(59) 경북대 교수와 리처드 프리먼(66)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지난 29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한국의 노동 현안을 놓고 대담을 했다. 프리먼 교수는 공무원 노조 전임자와 복수노조 허용같은 쟁점을 두고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유연성과 관련해선 “한국은 노동 유연성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대신 고용 안정성은 높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프리먼 교수는 지난 29~30일 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네덜란드선 사용자가 노조간부에 임금
법 아닌 단체교섭의 문제이기 때문
유럽선 노조들이 위원회 만들어 교섭도
노동경제학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을 각각 대표하는 이정우(59) 경북대 교수와 리처드 프리먼(66)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지난 29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한국의 노동 현안을 놓고 대담을 했다. 프리먼 교수는 공무원 노조 전임자와 복수노조 허용같은 쟁점을 두고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유연성과 관련해선 “한국은 노동 유연성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대신 고용 안정성은 높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프리먼 교수는 지난 29~30일 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정우 교수(이하 이)=최근 한국에서는 몇 가지 노동문제가 연달아 터져 나와서 의견대립이 첨예한 상황입니다. 때마침 노동문제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프리먼 교수가 한국에 오셔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첫째 문제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1996년 노동법 개정으로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해서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했지만 그 시행을 미룬 지 13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갑자기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노동부에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를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리먼 교수(이하 프)=노조 전임자들에게 회사가 임금을 줘야 한다, 혹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이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단체교섭의 문제입니다. 회사가 임금지급을 원치 않는다면 다음 교섭에서 그 문제를 다루면 됩니다. 노조 간부들이 가져가는 월급은 회사로부터 나오고, 그 돈은 다시 노동자들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사용자들이 노조 전임자들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저도 매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산업별노조를 통해 교섭하는데, 모든 노동자들이 노조원은 아니지만 노조가 단체교섭으로 정한 임금은 비노조원에게도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고용주들은 노조가 일종의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즉, 노조 간부들은 단체교섭을 함으로써 고용주들을 위해 임금을 정해주는 서비스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는 법으로 정할 일이 아니라 단체교섭에 맡길 문제입니다.
한국은 나름대로 상황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건 단체교섭을 통해서 정해져야지, 정부가 개입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개입은 노조를 약화시킵니다. 한국 노조는 상근자에게 지불할 별도의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작년 조사로 기억하는데, 대부분의 노조와 경영진은 많은 회사들이 지금까지와 달리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노조 간부들에게 돈을 주는 경우에 부패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노사 문제에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해서 안 된다고 봅니다. 정부는 노사를 믿어야 합니다. 물론 작은 노조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노조가 너무 작으면 교섭이 비효율적일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산별 교섭으로 묶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한 회사가 반을 지불하고 다른 회사가 나머지 반을 지불하는 식으로 해서 노조 간부 한명이 두 회사의 노동자를 대변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다고 봅니다.
이=정부는 노조 상근자들이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을 부도덕한 행위인 것처럼 비난하면서, 내년부터는 정부 안대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기세인데,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게 밀어붙일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1996년 노동법 개정 때 이 문제와 짝을 이루면서 같이 통과된 내용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내년부터 시행에 옮기려는 것이 정부 방침입니다. 즉, 복수노조 허용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프=복수 노조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미국에서는 단체교섭에 참석하는 노조는 노동자 다수를 대변하는 하나의 노조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노조는 만고불변은 아니고, 지금은 A라는 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지만 몇 년 뒤에는 B라는 새 노조가 나타나 기존의 노조에 도전하고, 다수 노동자가 B노조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B노조가 교섭 대표로 참석합니다. 그러나 한번 대표 노조가 정해지면 3년 동안은 그 노조가 노동자들을 대변합니다. 3년 뒤에는 대표 노조가 바뀔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새로운 배우자를 얻듯이, 노조가 협상을 잘못하면 노동자들은 새 노조를 앉히거나 어떨 때는 노조 없이 가거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유럽 방식이 있습니다. 이 방식에 의하면 한 사업장에 복수 노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단체교섭은 산별 차원에서 진행됩니다. 여기서 노조의 교섭대표를 정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노조를 노동자의 30%가 지지하고, 또 다른 노조를 역시 30%가 지지하고, 제3의 노조를 역시 30%의 노동자들이 지지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경영자들은 이들 노조와 일일이 교섭할 수가 없습니다. 경영자로서는 하나의 교섭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때 노동조합의 대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는 노조가 스스로 의논해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절대로 정부가 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곳에서는 다수를 차지하는 노조가 협상을 담당하기도 하고, 아니면 노조들로 구성된 일종의 위원회를 만들어 교섭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노조가 결정합니다. 노조는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되었으므로 따라서 단체교섭에 어떤 대표가 참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노조가 결정합니다.
유럽의 방식을 보면, 노동자들이 지역 노동자평의회(works councils)에 참가할 대표를 선출합니다. 한국도 법으로 회사내에 노사협의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는 그 선거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지만, 실은 자신이 선호하는 노동자를 설득해서 선거에 나가도록 권유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이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선발된 일부의 분파가 전체 노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복수 노조가 지역 노동자평의회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표의 60%는 그 지방의 최대 노조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30%는 비노조원인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의 의사를 대변합니다. 경영자들은 이런 방식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을 통해 모든 유형의 노동자들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복수노조는 지역 노동자평의회 대표를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기업 내부에 노사협의회를 갖고 있으므로 복수노조 문제를 접근하고 싶다면, 유럽의 지역 노동자평의회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노조끼리 서로 대표를 합의하지 못하면 그때는 노동자평의회에 다수 노동자를 가진 노조가 대표권을 갖게 됩니다. 유럽 방식은 누가 노동자들을 대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복수 노조가 마치 시장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경쟁하는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가장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문제에 결코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며, 최대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지금 한국의 경영자들은 복수 노조 등장을 걱정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혼란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노조가 여럿 있으면 그 중에 누구와 교섭해야 하나 하는 문제가 생기고, 혹시나 여러 노조와 교섭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복수 노조와의 교섭은 시간 낭비도 크지만 새로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하는 거지요. 그런 걱정은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들이 복수 노조와 일일이 교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군요.
프=물론이지요.그렇게 된다면 매우 혼란스러운 방식입니다. 그렇지만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고, 유럽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합의된 원칙이 있으면 됩니다. 명확한 원칙이 있으면 됩니다. 그게 위원회의 형식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노조와 노동자들이 명확한 원칙을 정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유럽은 이 방식을 통해 온건파든 급진파든 선거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노동자들로 하여금 누가 교섭에 임할지 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노조를 보면,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과거에는 주로 급진파가 노조를 이끌고 있었는데, 최근에 상대적으로 온건한 분파가 당선됐습니다. 앞으로 또 반대로 당선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것도 일종의 ‘준(semi) 복수노조’ 방식이라고 봅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여러 분파가 있고, 각 분파가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최근 한국에서 3개 공무원 노조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12만명의 거대한 노조가 탄생했는데, 민노총에 가입키로 결정했습니다. 최근 회원 탈퇴로 고민하던 민노총으로서는 큰 우군을 얻은 셈이지요. 그런데 공무원 노조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공무원이 먼저냐, 노조원이 먼저냐 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현재 정부가 공무원 노조를 못마땅하게 여겨 전방위로 압박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노조 간부가 해고됐습니다. 핵심 쟁점은 정치활동을 허용하느냐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공무원 노조가 민중의례나 검은 리본을 단다든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이 허용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정부는 이를 불허하고, 공무원 노조를 불법화할 태세입니다. 교수님은 공무원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오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프=손목에 띠를 두른다든가 리본을 다는 것은 정상적인 활동으로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국세청 직원이 근무중에 노래를 부른다면 그건 곤란하지요. 공무원 노조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나 다만 그 수단이 파괴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연좌농성을 하는 것을 보는데, 보통 법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정부가 공무원이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그것이 공무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한국 여당의 마크가 무슨 색깔이지요? (파랑색이라고 하자) 한국의 공무원 노조가 여당의 색깔인 파랑색 리본을 달면 어떨까요? 저는 이 방식이 좋은 투쟁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웃음).
미국에서도 관청에 대통령의 사진이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사진이 바뀝니다. 공무원은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공복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또 하나는 공무원들도 시민으로서 당연히 정치적인 권리를 가집니다. 물론 두 역할 사이에 선은 미묘합니다.
이=4년 전에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됐을 때 뜨거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노동 3권 가운데 단결권, 단체교섭권은 보장됐지만,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프=제가 모든 나라를 망라하는 목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공무원의 직무에 따라 매우 다릅니다. 경찰, 소방 등 필수공익서비스(critical service)에 종사하면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중재가 대안이 됩니다.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중립적인 제3자가 중재에 나섭니다. 물론 중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파업도 능사가 아닙니다. 파업은 우선 노동자에게 고통이므로 노동자들도 사실 파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부나 시민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일종의 중재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소방관, 경찰, 간호사에 대해 어떤 원칙이 있습니다. 비상시가 아니면 그렇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무원인 주립대 교수들이 정부와 단체교섭을 하기도 합니다.
이=교수도 단체행동권이 있습니까?
프=주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단체행동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소방관이 사고 현장에 안 나타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지만, 교수가 수업을 안 하면 다음 주에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유형의 노동자에게는 직종에 따라 법의 규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업권이 없다면 중재를 통해 단체교섭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합니다. 따라서 내가 한 가지를 제안한다면, 핵심은 중재조항을 잘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미국 노조들은 대결 국면으로 가기 전에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견이 있으면 제3의 인물, 예를 들어 노동법 교수나 혹은 목사가 중재에 나서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종교인은 좀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목사가 중재를 하는 경향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많은 회사간 갈등에도 중재가 적용됩니다. 회사 간에 이견이 있을 때, 소송으로 가면 변호사 비용 등으로 비용이 많이 듭니다. 상품을 제공하니 안하니 등의 문제로 회사끼리 싸우는 것보다 중재의 방법을 씁니다. 미국 노사 관계에서도 중재가 많이 쓰입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파업보다 중재의 방법이 좋습니다. “당신의 직업이 비상시에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파업에 나서도 좋다”거나 “비상시에 필요한 직업이니까 파업에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한국에서는 경찰이나 소방관에게는 단체행동권이 없지만 간호사에게는 단체행동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의 파업으로 때로는 대형병원에 큰 혼란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프=중재의 대안이 있다면 그렇게 해결하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혼란을 피하고. 경찰과 소방관, 간호사는 물론 다른 종류의 중재의 절차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직업과 같은 절차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간호사나 병원이라면 병원 사업을 잘 이해하는 중재자를 원할 것입니다. 직업에 따라 다른 중재의 절차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노사 양자가 이 문제를 함께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양자가 중재를 거치면서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양자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디 보자, 중재자가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군. 우리 분야가 이미 많이 바뀌었는데, 중재자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중재자를 바꾼다든가 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파업이 능사는 아니고, 그 대신 훌륭한 중재자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다음에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에게는 3년만 체류가 보장됩니다.그런데 3년 쯤 되면 한국 말도 잘 하고, 회사 일도 잘 하고 할 때인데, 이때 추방당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본인은 물론이고 고용주도 추방을 원치 않거든요. 이주노동자 본인은 물론이고 고용주도 추방을 원치 않거든요. 이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큰 고민거리입니다. 한국에서 18년을 살아온 네팔의 미누라는 이름의 노동자가 최근 네팔로 추방됐습니다. 그는 한국인 가운데도 친구가 많고, 시민사회에서 강력하게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추방되고 말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많은 나라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 명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을 5년 이상 머물도록 권유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가끔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법을 지킨 이주노동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5년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법을 어긴 사람에게 시민권 혹은 영주권을 줄 수 없습니다. 미국은 그린카드를 줍니다. 시민권을 받기 전에 영주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린카드는 미국에 머물고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의 기록을 보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일을 잘하고, 우리나라가 원하는 사람이면 체류를 연장해 줍니다. 그렇게 30년을 머물지만 시민권은 없습니다. 그 대신 투표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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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유연성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
비정규직 위한 노조의 직업교육 추천할만
이=‘Don’t ask, don’t tell’은 어떤 정책입니까?
프=정부가 길가는 사람들에게 국적을 물어보게 된다면 주로 히스패닉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히스패닉 가운데 불법체류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스패닉들에게 ‘당신은 시민권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이게 히스패닉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사실 복잡한 문제입니다. 노동시장은 외국인이 와서 머물기를 바랍니다. 시장은 법이 어떤지 모릅니다. 시장에서는 그저 가치 있는 노동자를 바랍니다. 노동자는 좋은 일자리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시장과 만나는 순간 문제를 낳는 겁니다. 여기서 법과 시장이 충돌하는 겁니다. 그게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법은 다르지요. 누군가는 법을 준수해서 본국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법을 어기고 여기 머문다고 할 때 불법체류자를 사면한다면 불법을 조장하는 것이 되니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쉬운 해결책이 좀처럼 없습니다.
이=지난 29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있었던 회의에서 미국의 데이비드 린다워 교수가 제안하기를 한국은 장기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면 된다고 했는데, 동의합니까?
프=만약에 저출산이 계속되고 고령화가 계속되면 그렇다면 아마 하는 수 없겠지요. 장기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린다워 교수보다 좀 더 조심스럽습니다. 이주자가 오면 그들은 생활의 질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주민보다 열심히 일합니다. 그 대신 원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갑니다.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는 한국의 큰 쟁점입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서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계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불만을 자주 토로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말이 맞을까요? 오히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사실은 노동시장이 그만큼 유연하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유연성의 한 부분으로 임금유연성이 있는데,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임금은 동결되거나 감소합니다. 한국의 임금은 어느 선진국보다 유연하게 변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보너스 체계도 다양하고 유연합니다. 어느 측면에서는 나는 이대통령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그는 한국은 노동유연성이 매우 높은 나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비정규직이 세계적으로 높은 비율이라는 점도 노동시장 유연성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임금 유연성은 좋은 유연성입니다. 나쁜 유연성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입니다. 1997년에 한국에서 해고를 둘러싼 큰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정부와 경영자, 노조, 어느 누구도 사람을 해고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임금 유연성을 바라지, 고용 유연성을 바라지 않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간한 <2009년 고용 전망>을 보면, 제1장은 경기침체 극복이 주제인데, 그들은 더 이상 고용 유연성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말을 애매모호하게 쓰긴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책이 있으면 회사가 즉시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물론 그 글은 약간 미묘한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저는 2주 전에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노조와 토론을 했는데 한국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봐라. 1997년 대규모 해고를 하면서 정부와 회사가 노조와 싸웠다. 지금은 다르다. 보수적인 정부, 경제계와 노동계가 대체로 해고를 회피하는 비슷한 경향을 나타낸다. 최악은 경기침체기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다. 훨씬 더 나은 것이 임금 유연성이다. 그리고 유연성 있는 보너스 시스템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경험을 위기 상황에서 임금 유연성을 강조한 예로 외국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임금 유연성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유지되는지 추정한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추론해보면 상당히 많은 일자리가 유지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용 유연성이 아니라 임금 유연성이 바람직한 유연성이라도 봅니다. 물론 스웨덴 노조는 임금 유연성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임금의 유연성이 훨씬 더 좋은 대안입니다.
이=한국 정부가 판단하기를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주로 한국 기업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해고관행을 유럽, 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프=해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노동자의 개인적인 사유가 있습니다. 이런 해고는 어느 나라나 다 있습니다. 큰 회사들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F학점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교수 자신의 실패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메시지를 받기 원하지 않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작은 회사는 해고를 하기 쉽습니다. 큰 회사는 인사부 등에서 해당 노동자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하지만, 해고는 잘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가 양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건 모두에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이=그럼 해고의 둘째 유형인 경영상 이유의 대량해고는 어떻습니까?
프=나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의 증거는 이렇습니다. 해고 이전에 사전통보를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겁니다. 노동자는 미리 일자리를 구하거나 하는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사전통보 기간은 3~6개월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돈이 없으면 임금을 줄 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노동자가 경영진에게 가서 우리가 생산성을 높이거나 공장을 사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동자 기업인수(worker buy-out)입니다. 유럽에서는 그것이 쉽습니다. 노동자평의회에서 도산 위기에 처한 회사에 대해 기업인수를 제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합니다. 인수 조합을 만들기도 합니다. 전문가가 와서 회사의 회계장부를 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공장을 새로 꾸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회사를 살릴 수 있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전문가를 데려와서 그들을 돕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에는 한국에서는 이런 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얼마 전 큰 파업을 겪은 쌍용자동차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기에 앞서 노조, 노동자들과 사전에 해고 문제를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습니다.
프=미국에서는 ‘노동자 적응과 재훈련 통고에 관한 법’(WARN:Worker Adjustment and Retraining Notification Ac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제정됐습니다. 나는 이 법을 만드는 위원회에 위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예를 살펴봤습니다. 이 법에 관해 경영진이 가진 두려움은 사전통보가 있으면 노동자가 일을 열심히 안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것이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나를 해고하려 하므로 나는 이제 일 열심히 안할 거야’라고 반응할 거라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오히려 정반대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도 놀랐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는 노동자는 경영진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좋은 추천서를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막판에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면 상급자는 그들에게 다른 직장을 얻도록 좋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경영자들로부터 얻은 기본적인 결론은 적어도 이 법은 경영에 유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나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의 마무리를 성실히 했습니다. 좋은 추천서의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쌍용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이런 사전통보 제도가 있었다면 큰 충돌을 막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청년 실업에 대해서 말하자면, 최근 한국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 고용 없는 회복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고용탄력성이 눈에 띌 정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프=모든 나라가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미국과 스웨덴도 고용탄력성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성장이 그만큼의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약간 바꿀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40시간을 일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한 명의 노동시간을 0시간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보다는 두 사람이 각각 20시간씩을 일하는 게 낫습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두 명에게 절반씩의 실업수당(unemployment benefits)을 줍니다. 일종의 고용보조금과 유사하지요. 정부는 회사가 사람들을 계속 고용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입니다. 이 방식은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경제성장에 더 기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을 노동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지 않으려는 방식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원래 이러한 방식에 반대해왔는데, 이번 <2009년 고용전망>에서는 과거에 갖던 유연성 옹호론에서 다소 후퇴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좀 더 전통적인 유연성을 고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해고와 고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경기침체기에는 이동할 수 있는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OECD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경기침체기에 노동자를 노동시장에 묶어두고, 노동자를 노동시장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일을 안 하게 되면 숙련을 상실하기 때문에 나중에 일자리가 생겨도 일을 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당 10시간이라도 일하는 것이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것이 유럽의 교훈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만 실업수당을 주는 방식보다 부분지급하면서 그 동안 노동자들이 부분적이라도 일을 하도록 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덴마크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모델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모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프=덴마크는 지금까지 큰 경기침체가 없었습니다. 큰 불황에도 이 모델이 작동할지는 의문입니다. 스웨덴 역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러나 1992년에 경기침체가 오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는 해결이 안 됐습니다. 스웨덴은 이번에도 경기침체의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령 노동자들이 타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훈련을 받게 하지만, 시장에 일자리가 없을 때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청년 실업 문제는 어떤가요. 청년실업은 한국에서 8%입니다. 유럽시장에 비하면 낮은 수치인데, 그래도 한국에서는 과거에 비해 이 문제가 심각하므로 모두들 걱정이 많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프=보통 청년실업률은 성인실업률에 비해 2배 정도입니다. 3, 4배 되는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2배입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청년들은 숙련도가 낮으므로 직업훈련은 유효할 수 있습니다. 불황기에 학교는 청년들에게 가장 싼 비용으로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곳입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는 데 추천서가 중요한데요, 일본에서는 고등학교가 주요한 추천의 근거가 됩니다. 일본의 고등학교는 전화로 하는지 서류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졸업생을 추천합니다. 네덜란드는 재미있는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실업자에게 돈을 주고 훈련을 받게 하는데, 회사를 위해 1년 동안 훈련 겸 노동에 종사하게 합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사는 일종의 도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훈련을 마치면 일종의 수료증을 받게 됩니다. 훈련생은 회사 생활을 알게 되고, 회사는 훈련생 가운데 우수한 일부를 고용하면서 채용비용을 절감하게 됩니다. 1000~2000명 도제 중에서 100~200명 정도가 필립스에 취업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프로그램이 청년실업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실질적 기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평가하면서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실업자를 교육하고 수료증을 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인턴제도입니다.
이=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인턴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규모에서는 매우 작지만.
프=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그러면 교육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는 공부 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길고, 수학, 영어, 과학 등 과목에서 국제시험 성적도 세계 상위권입니다. 그러나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외에 많은 시간과 비용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하 가정에 대해서 이것은 엄청난 가계 부담입니다. 당신은 오래 전에 미국의 과잉교육에 대해서 책을 쓴 적도 있는데, 최근 한국의 고등학교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을 가는 과잉교육(overeducation)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이 문제가 청년실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프=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매우 많은 인적자본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대학교 이하에서는 학생들이 관심 있는 영역을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너무 많이 공부하면서 학생들이 소진됩니다. 공부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온 뒤 자신이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지요. 그러나 대학에서는 상대적으로 공부를 적게 합니다. 실은 반대로 대학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또 한국의 많은 사립대학들은 재원이 부족합니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한 혁신 노력에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 한해에 600만명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합니다. 한국의 졸업생들은 앞으로 중국의 졸업생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이=끝으로 비정규직 문제로 넘어갑시다. 한국 노동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갖고 있고, 그들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될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질병이라 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좋은 대책이 없을까요?
프=한 회사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비정규직의 수가 느는 것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회사는 비정규직이 싸기 때문에 보다 많은 비정규직을 원합니다. 따라서 한 회사에서 두 그룹 사이에 임금격차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기업이 임금격차를 줄이고, 기업으로 하여금 정규직을 더 채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비정규직이 일을 하면서 해마다 임금이 올라가서 앞으로 정규직 임금에 가까워지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변화가 급격하지 않고 완만하다면 상대적으로 문제 해결이 쉬워질 수 있습니다.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한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만약에 두 집단이 하나의 노조 아래에 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 노사가 합의에 도달하기 쉬울 것입니다. 만약에 비정규직이 일을 시작하고 기술이 늘면 임금 수준이 정규직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숙련도에 따라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임금을 균등화하려고 한다면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겁니다. 그 변화가 급격하게 되면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경향도 클 것입니다.
이=그 방안은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스페인의 비정규직 정책도 한때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평가합니까?
프=스페인 방식은 그렇게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도 나름의 비정규직 정책을 설계했습니다. 왜냐하면 스페인의 실업률이 25%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쪽은 유연한 임금체계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의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회사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했습니다. 2년 뒤에는 해고를 하거나 두 회사가 비정규직을 맞교환하는 편법을 썼습니다. 그 뒤 연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산업재해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고, 훈련을 받는 데도 소극적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실업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다시 22~25% 수준입니다. 스페인은 정작 이번 세계적 경기 침체를 맞아 선진국 가운데 고용률이 가장 많이 떨어진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생각은 노조가 해마다 조금씩 정규직의 비율을 높이는 식으로 협상을 하거나, 만약에 노조가 없다면 아마도 정부가 함께 연구를 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이자고 하거나 혹은 그럴 수 없으면 정부의 교육프로그램으로 고용을 유지하게 해서 조금씩 회사로 하여금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이 좋다고 봅니다.
이=당신의 방식은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낮은 뿐 아니라 사회보장 적용에서도 심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그렇습니다. 분별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같은 일자리에서 경쟁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너무 큰 차이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용자는 싼 노동을 원하고, 정규직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종종 자신의 ‘적’으로 보는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비정규직에 노조를 조직하는 것의 필요성은 어떻게 보나요?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은 거의 노조가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저임금이나 근로조건의 열악함에서 노조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은 비정규직인데 현실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프=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정규직 노조로 하여금 비정규직을 조직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런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서 비정규직을 위한 직업교육을 정규직 노조가 맡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노조의 교육에 대해, 예컨대 정부가 노조에 비용을 지불해 준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 받은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노조는 그들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스페인의 예를 보면 비정규직의 산업재해 비율이 높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해 직업안전 교육을 한다면 정부가 이에 대해 지원금을 줄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공감할만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노조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만약 한 노조가 시작하게 되면 이는 노조의 문화를 매우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머지않아 모든 노조가 참여할 것입니다. 노조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죠.
이=그것은 마치 과거에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구에서 실업보험 제도의 운영을 정부가 하지 않고 노조에 맡겼던, 그리하여 북구의 노조 조직률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였던 겐트(Ghent) 제도를 연상시킵니다.
프=맞습니다. 정부가 직접 하는 대신 노조에게 맡겨서 운영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이=당신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오늘 중요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당신의 의견은 한국의 난마처럼 얽힌 노동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대담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정리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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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9-11-02 오후 08:17: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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