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 science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21) 샹탈 무페 Chantal Mouffe

시놉티콘 2009. 11. 16. 13:20

 

 

 

‘경제 뒤에 숨은’ 정치논리와 정치투쟁 벌여라
한겨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1) 샹탈 무페 Chantal Mouffe

 

샹탈 무페는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로서 현재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무페의 관심사는 줄곧 마르크스를 반경제주의적이고 반본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계급정치학과 경제주의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적 관점으로 보고,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1979)라는 편역서를 냈다. 이후 동료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저술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을 통해 해체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해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촉발했다. 대표적 저작으로 급진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기획을 제안한 <정치적인 것의 귀환>(1993), 민주주의의 역설적 성격이 바로 민주주의 실현의 원동력임을 강조한 <민주주의의 역설>(2000), 정치적인 것이 지닌 적대적 성격의 제거 불가능성을 인정해야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등이 있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 샹탈 무페
1987년 견고해 보였던 독재체제가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후퇴하면서, 우리에게는 불완전하나마 민주화의 시대가 열렸다. 누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더 완벽한 제도의 확립을 요구했고, 누구는 현실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민주화에 편승해 소리 없이 자신의 기득권을 넓혀나갔고,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현실 자본의 운동에 굴복하여 보수화하거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도 급급한 처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자본의 자유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담론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그 모든 가치에 앞서 ‘생존의 요구’를 먼저 충족하라.”

 

한국인들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이름의 민주화 정부를 경험했고, 불완전했든 기만적이었든 민주화의 시대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양극화는 한층 심각해졌으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오히려 허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실용주의를 펼쳐나가길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부는 합의와 다수결, 공정성, 도덕성 등의 가치를 난도질하면서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샹탈 무페의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태를 수립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민주적 시민성, 민주적 정서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특히 그렇다.”(2009년 9월 4일, <한겨레>) 여기서 말하는 시민성이 법을 준수하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정치적 장에서 갈등과 적대는 불가피하며, 그것들의 표출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고 무페는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의 규칙조차 부정하는 극단적 형태의 근본주의나 파시즘이 발흥하거나, 강화·보호되어야 할 법과 제도, 인권은 위협당한다. 그 형식이 촛불집회든 공개청원이든 토론이든 적대적 투쟁이든, 집단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는 자리잡고 꽃피운다. 이것이 무페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고 급진민주주의 이론의 출발점이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계급·계층, 집단들이 존재하는 사회에 갈등과 적대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적’과 ‘친구’의 관계로 전환될 때 정치적 적대는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무페는 카를 슈미트의 통찰을 따라 이것을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라 부르며,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구성하는 제거 불가능한 차원으로 본다. 무페는 합리적 합의를 통해 적대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진영이 오히려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물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법치, 인권의 보장 및 개인적 자유의 존중 등의 가치로 구성되는 자유주의 전통”과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인민주권 등의 사상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페에 따르면 이 두 전통 사이에는 필연적 연관 없이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접합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자유와 평등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접합되어 구성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투쟁을 통해서만 발전되어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현실 권력은 항상 이 둘 사이 갈등의 일시적인 안정화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무페는 경제적 합리성의 논리로 정치를 대체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사실상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게, 정치란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며 거의 사기에 가깝거나 비효율적이며,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에 경제를 살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그것 역시 정치적 논리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그런 인식이 증폭된 면도 있지만 말이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경제적 기득권층은 더 많은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이미 장악한 법과 정치의 영역을 더 많이 장악하려 하면서도, 정작 남들에게는 정치논리 배격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관,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된 진리나 보편성 등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상 추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인종적·경제적·성적 문제 등을 둘러싼 서로 다른 민주적 투쟁들의 접합을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무페는 기존의 자유주의자나 전통적인 계급투쟁론자와도 다른 급진민주주의자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추구돼야 할 공동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이성을 가동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는 하버마스나 롤스와는 달리 데리다나 라캉, 푸코 등과 더불어 탈근대론자에 속한다. 또 사회의 다원성과 다원주의가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원성의 추구에는 아무런 한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다원주의나 합법적 차원에만 머무는 다원주의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와는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추구해야 할 정치적 선, 곧 ‘만인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며, 또 이는 합법적 틀 내에서만 추구될 수는 없다는 게 무페의 생각이다.

 

무페는 사회주의 전통에서 중요시해왔던 경제적 평등의 이상을 민주주의 안에 들여올 것을 제안하고 그것을 민주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사회주의는 경제결정론이나 단일한 선험적 주체를 거부한다. 이 점에서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며, 사적 소유를 옹호·강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도 적대적이다.

 

확대되는 신자유주의의 전선에 맞서 무페는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접합을 우리의 과제로 제시한다. 지난해 가을 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경제와 정치는 따로 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경제 문제 해결조차도 정치 문제임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위기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온다는 점이다. 무페는 위기의 해결을 요구할 권리, 해결할 의무는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발전시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민주적 제도 및 법의 보존, 불평등 해결과 경제 발전 등 거저 얻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침묵을 지킬수록, 개인적 노력에만 머물수록 삶은 더 힘들어진다. 무페가 말하고자 하는 최소치는 바로 여기까지다.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이보경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세종대 강사를 지냈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2004)과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2007)을 번역했다. 현재 성신여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데리다의 정치 철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다.

 

 

기사등록 : 2009-11-13 오후 07:19:00 기사수정 : 2009-11-13 오후 07:19:59
한겨레 (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