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22) 스튜어트 홀 Stewart Hall
보수 ‘국민 공략’ 넘는 진보 ‘전방위 공략’ 제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2) 스튜어트 홀 Stewart Hall
스튜어트 홀은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이론가이자 독립 좌파 지식인이다. 1932년 자메이카에서 아프리카 출신 혼혈가정에서 태어나 1951년 영국에 건너왔다. 초기에는 신좌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초대 편집인으로 <뉴 레프트 리뷰>를 창간했다. 그 후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등과 함께 ‘영국 문화 연구’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장을 맡아 활동하며 ‘버밍엄학파’의 독특한 학풍으로 전세계 문화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종이나 젠더, 텍스트의 의미구성 과정 등을 언어와 헤게모니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후기에는 특히 흑인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문제에 주력했다. <오늘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잡지를 통해 정치비평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영화, 사진,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진보적 관점을 전파하는 일에도 힘썼다.
이제 진보-보수의 구분은 계급 경계와 무관해졌다. 진보 역시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 중심의 전통 지지층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주변부 층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홀이 그리는 진보의 미래이자 진보세력의 새로운 기반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독자마다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 한 사상가의 책은 저술 당시의 시대적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해답을 담고 있으며, 책 속에는 저자가 거쳐 온 삶의 여정이나 배경이 생생하게 투영되어 있다. 유명한 사상가 중에는 대개 서양인이 많고, 그래서 이른바 고전의 대다수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를 해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 초반의 한국에서 살면서 이 시대의 관심사를 푸는 한 방편으로 그 책들을 읽게 되니 둘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로 ‘해독’의 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
하지만 국내에서 홀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기도 한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의 혼혈 흑인으로 영국에 건너온 사람이다. 아프리카, 자메이카, 영국 그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라는 ‘디아스포라’ 의식은 그의 현실 인식에서 근간을 이룬다. 그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체험이 어떻게 사회적인 정체성으로 굳어지며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탐구했다. 그래서 홀은 오늘날 문화연구에서 의미해석과 정체성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 단골처럼 인용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홀의 관심 영역은 거시적 문제와 미시적인 내면 체험 문제를 넘나든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홀의 모습인가? ‘대처리즘’에 관한 홀의 분석은 바로 이런 다양한 관심사들이 여러 갈래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현실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 체계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미시적인 정체성 문제가 제도 정치 영역와 어떻게 서로 결합해 ‘정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게 되는지 탐구한 이론가로서 홀을 소개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대처리즘은 1980년대 영국 사회를 휩쓴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이자 보수 정치이념의 대명사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대처리즘이 경제 이념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 역사적 흐름이며, 문화적·사회적 전통의 층위들이 누적되어 생성된 복합적 현상이라고 보았다. 즉 대처리즘은 경제이념으로서의 시장 자유주의와 더불어 ‘유기적 토리주의’라 불리는 도덕적 복고주의가 결합해서 형성된 독특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홀이 볼 때 대처리즘은 단지 일부 보수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등장한 게 아니다. 노동당의 정치적 텃밭이던 노동자들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한 사실은 대처리즘이 전통적인 계급론의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임을 말해준다. 홀은 대처리즘이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흐름과 위로부터의 흐름이 동시에 작용해 생겨났다고 본다. 대중의 불만과 위기의식 같은 것들이 쌓여 대처리즘의 정서적 토양을 제공했고, 대중적 상식은 이들의 보수적 현실 인식을 낳는 바탕이자 자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대처리즘의 국가 역시 개입주의적인 정치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홀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의 개입주의적 성격은 영국 정치에서 오랜 전통으로 작용해 왔으며, 이 추세는 1880~1920년대 사이에 기본 틀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물론 대처리즘은 영국 정치의 근간이던 국가 개입주의와 노사 대타협에 근거한 복지국가 전통을 타파하고, 시장과 개인주의에 기반한 작은 국가를 추구하겠다고 표방했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대처리즘 역시 국민의 일상생활과 의식에 깊숙이 개입했다. 시장과 경제 문제에서는 자유주의와 탈규제를 추구하지만, 이데올로기 부문에서는 개입주의적인 양면성을 띠는 게 바로 대처리즘 국가의 특징이다.
홀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이처럼 복합적인 대처리즘의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도덕적 경찰’로서 개입하기 시작한 현상을 홀은 1970년대 중반 <위기의 관리>라는 책에서 이미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대처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대처리즘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의 등장을 예견한 셈이다.
이처럼 홀은 현실을 분석하면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중요성에 특히 주목한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좌파의 관점에서는 주변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쟁점들이 홀의 논의에서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도덕적 상식이나 젠더, 인종, 종족성, 지역, 국가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홀은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어떻게 해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짚어간다. 대처리즘의 전략은 대중의 상식에 근거하고 이를 공략한다. 대영제국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국가나 민족 이념, 가족, 명예, 근면 등으로 표현되는 영국의 전통에는 가부장주의, 식민주의, 잉글랜드 중심의 배타적 인종주의의 요소가 배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대중적 상식과 통념의 일부로서,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허물고 국민이라는 대안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기반 구실을 했다. 노동당의 오랜 정치기반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한 대처리즘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보수의 성공담은 변화하는 현실을 읽지 못한 노동당과 진보의 실패에 대한 냉혹한 진단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홀은 대처리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좌파 내부에 고질적인 사고의 한계를 조명하고 21세기에 적합한 진보의 의미와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요컨대 이제 진보-보수의 구분은 계급 경계와 무관해졌다. 진보 역시 산업혁명 시절처럼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 중심의 전통 지지층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진보의 전통적인 기반세력(노동계급) 속에 내재한 부정적인 요소들(인종주의·가부장주의·배타적 민족주의)을 성찰하고, 나아가 최근 부상한 다양한 주변부 층들(여성·흑인·서비스 종사자·비정규직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세력(즉 ‘블록’)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홀이 그리는 진보의 미래이자 진보세력의 새로운 기반이다. 여기서 홀은 좌파 역시 대처리즘의 지혜로운 전략에서 배워야 한다며, 이를 소홀히 하면 진보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서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처럼 그는 현실 문제를 어떤 체계적인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현실 문제는 늘 많은 요인과 세력들이 충돌하고 연계하고 각축하면서 만들어내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 곧 ‘국면’(conjuncture)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전통 좌파의 경제주의 도식을 버리고, 구체적인 현실에 작용하는 요인 분석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홀의 자세는 그람시와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고 홀의 진단의 적실성이 1980년대 영국 사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접근하는 자세를 예시해주며, 이는 민주화 이후 혼란에 빠진 진보세력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홀의 분석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서 진보의 문화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짚어볼 만한 통찰력을 안고 있다. 임영호/부산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