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새해특집] 한겨레 여론조사
국민 76%, 불황·실업·낙후된 정치로 실망 | |
[2009 새해특집] 한겨레 여론조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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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골은 깊었다. 그 배경에는 경제난과 대통령이 있었다.
<한겨레>는 새해맞이 특집 여론조사에서 ‘당신을 가장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절반 가량(51.7%)이 ‘경제불황’을 꼽았다. 실업 및 일자리 부족(14.7%)이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답은 ‘낙후된 정치’(9.9%)였다. 이어 교육 문제(7.7%), 빈부격차 심화(6.4%), 노후 불안(4.8%)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살림살이 걱정도 컸다. 앞으로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것 같으냐는 물음에 14%만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5월에 실시한 같은 물음의 조사에서는 23.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곱달 사이에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이들이 훌쩍 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예상대로 ‘월급 등 소득감소’란 답이 다수였다. 특히 40대층에서 이런 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일자리 불안정’(16.8%), ‘취업난’(16.4%), ‘집값·주식 하락으로 인한 자산 감소’(11.9%)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절망에 대해 누가 또는 어느 집단이 과연 가장 많이 책임져야 하는가?
대통령을 비롯해 입법·사법·행정기관은 물론 기업과 시민단체 등 우리 사회의 주요 기관들을 보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10명 중 4명 가까이(37.2%)가 대통령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많이 나온 답은 ‘여당’(28.5%)이었다. 정부·여당에 실망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 스스로 이런 절망을 자초했다는 답도 15.6%에 이르렀다. 야당과 언론기관이란 답은 각각 4.1%였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가장 절망을 던져준 이를 한 사람만 말하라고 했다. 보기를 제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답하도록 했다. 이명박 대통령(22.2%)이 가장 많았다. 개별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국회의원(10.1%)이란 답이 다음으로 많았다. 탤런트 고 최진실씨(2.5%)와 고 안재환씨(0.5%)라는 답도 나와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좌절감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린이 납치·연쇄 살인 등 충격적인 범죄가 특히 많았던 지난해인 만큼, 4위는 범죄자(2.5%)였다. 최근 비리 혐의로 구속된 노건평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5, 6위를 차지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절망을 극복하는 데 선결과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역시 경기회복(42.9%)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물가안정(16.9%), 일자리 창출(14.8%) 등이 뒤를 이었다. 이화주 기자 holly@hani.co.kr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사회 소통 막힌 ‘군도사회’…‘가족의 왕국’에 은거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군도(群島) 사회’라 부를 수 있다. 경제위기라는 절망의 바다에 떠 있는 섬들처럼 소통이 막힌 상태로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는 사회를 지칭한다. 시인 정현종 선생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 바 있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이땅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섬이 되어버린, 오가는 배마저 끊어진 ‘사회 아닌 사회’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 본 느낌이다.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끌게 한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 국민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경제불황(51.7%)과 실업 및 일자리 부족(14.7%)이다. 둘째,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자신과 가족이 압도적인 반면, 대통령·국회·기업 등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한마디로 공적 제도로부터의 후퇴, 곧 자신 또는 가족의 왕국 속에 은거하는 새로운 개인주의 내지 가족주의의 번창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절망의 바다에 떠 있는 ‘군도 사회’로 변화한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결합돼 있다. 경제위기는 어느 사회이건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이다. 문제는 유사한 구조적 조건에 놓여 있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 그 절망과 고통의 심연이 깊은 것은 정부와 국회를 포함한 제도들의 책임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선과 선의에 주로 호소하는 사회정책, 여든 야든 모두 오만과 무능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은 사적 왕국의 성채를 더 높이는 개인들의 방어 위주의 ‘전략적 선택’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20년을 지나온 현재, 정작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자화상이 사회 해체 또는 ‘군도 사회’의 도래라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해체가 가져올 일차적인 고통은 사회적 약자들에 집중돼 있다. 대체 언제까지 사회적 약자들을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새로운 희망을 일궈낼 수 있는 근본적인 성찰과 일대 분발이 요청되는 새해 첫날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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