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vey of public opinion

[2009 새해특집] 한겨레 여론조사

시놉티콘 2010. 1. 2. 15:10

 

 

국민 76%, 불황·실업·낙후된 정치로 실망
[2009 새해특집] 한겨레 여론조사
한겨레 이화주 기자

 

 

절망의 골은 깊었다. 그 배경에는 경제난과 대통령이 있었다.
 

<한겨레>는 새해맞이 특집 여론조사에서 ‘당신을 가장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절반 가량(51.7%)이 ‘경제불황’을 꼽았다. 실업 및 일자리 부족(14.7%)이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답은 ‘낙후된 정치’(9.9%)였다. 이어 교육 문제(7.7%), 빈부격차 심화(6.4%), 노후 불안(4.8%)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살림살이 걱정도 컸다. 앞으로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것 같으냐는 물음에 14%만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5월에 실시한 같은 물음의 조사에서는 23.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곱달 사이에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이들이 훌쩍 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예상대로 ‘월급 등 소득감소’란 답이 다수였다. 특히 40대층에서 이런 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일자리 불안정’(16.8%), ‘취업난’(16.4%), ‘집값·주식 하락으로 인한 자산 감소’(11.9%)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절망에 대해 누가 또는 어느 집단이 과연 가장 많이 책임져야 하는가?

 

대통령을 비롯해 입법·사법·행정기관은 물론 기업과 시민단체 등 우리 사회의 주요 기관들을 보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10명 중 4명 가까이(37.2%)가 대통령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많이 나온 답은 ‘여당’(28.5%)이었다. 정부·여당에 실망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 스스로 이런 절망을 자초했다는 답도 15.6%에 이르렀다. 야당과 언론기관이란 답은 각각 4.1%였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가장 절망을 던져준 이를 한 사람만 말하라고 했다. 보기를 제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답하도록 했다. 이명박 대통령(22.2%)이 가장 많았다. 개별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국회의원(10.1%)이란 답이 다음으로 많았다. 탤런트 고 최진실씨(2.5%)와 고 안재환씨(0.5%)라는 답도 나와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좌절감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린이 납치·연쇄 살인 등 충격적인 범죄가 특히 많았던 지난해인 만큼, 4위는 범죄자(2.5%)였다. 최근 비리 혐의로 구속된 노건평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5, 6위를 차지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절망을 극복하는 데 선결과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역시 경기회복(42.9%)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물가안정(16.9%), 일자리 창출(14.8%) 등이 뒤를 이었다.



이화주 기자 holly@hani.co.kr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사회

소통 막힌 ‘군도사회’…‘가족의 왕국’에 은거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군도(群島) 사회’라 부를 수 있다. 경제위기라는 절망의 바다에 떠 있는 섬들처럼 소통이 막힌 상태로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는 사회를 지칭한다. 시인 정현종 선생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 바 있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이땅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섬이 되어버린, 오가는 배마저 끊어진 ‘사회 아닌 사회’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 본 느낌이다.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끌게 한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 국민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경제불황(51.7%)과 실업 및 일자리 부족(14.7%)이다. 둘째,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자신과 가족이 압도적인 반면, 대통령·국회·기업 등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한마디로 공적 제도로부터의 후퇴, 곧 자신 또는 가족의 왕국 속에 은거하는 새로운 개인주의 내지 가족주의의 번창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절망의 바다에 떠 있는 ‘군도 사회’로 변화한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결합돼 있다. 경제위기는 어느 사회이건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이다. 문제는 유사한 구조적 조건에 놓여 있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 그 절망과 고통의 심연이 깊은 것은 정부와 국회를 포함한 제도들의 책임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선과 선의에 주로 호소하는 사회정책, 여든 야든 모두 오만과 무능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은 사적 왕국의 성채를 더 높이는 개인들의 방어 위주의 ‘전략적 선택’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20년을 지나온 현재, 정작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자화상이 사회 해체 또는 ‘군도 사회’의 도래라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김호기(사진)
국민 다수가 꿈꾸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 개인과 사회, 공동체와 사회제도가 균형을 이루고 공존하는 데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웅크러든 사적 왕국에서 걸어 나와 서로 뱃길을 이어 소통이 활성화된 그런 사회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절망의 바다에 떠 있는 군도들의 외로운 독창이 아니라 희망의 바다에서 크고 작은 섬들이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이다.

 

사회 해체가 가져올 일차적인 고통은 사회적 약자들에 집중돼 있다. 대체 언제까지 사회적 약자들을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새로운 희망을 일궈낼 수 있는 근본적인 성찰과 일대 분발이 요청되는 새해 첫날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기사등록 : 2009-01-01 오전 09: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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