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실패했습니다. 보수주의 가치는 버려야 할 것임에도 보수주의자들은 계속 붙들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월가 개혁, C+에서 B-를 주겠습니다."
2010년 1월 4일, 미국의 대표적 진보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CAP) 금융주택정책 담당 연구원인 데이비드 민 부이사가 기자와 전화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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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진보센터 '미국인 이야기' 행사. 힐다 솔리스 노동부장관, 존 포데스타 대표, 게리 락 상무부장관. |
ⓒ 전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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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6일, 미국진보센터는 힐다 솔리스 노동부장관과 게리 락 상무부장관을 초대해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미국인 이야기' 행사를 열고, 이민가정의 자녀로 성장해온 그들의 개인사와 이민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보다 하루 전인 15일에는 미국진보센터의 자매기관인 미국진보센터 액션펀드도 같은 장소에서 '청년실업, 국가서비스투자와 일자리 창출' 행사를 가진 바 있다.
21세기 미국의 싱크탱크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 매일 발송되는 보고서나 이메일을 통해 포럼,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안내되며, 참가를 원할 경우 온라인상에서 신청, 접수한다. 센터 웹사이트에는 종종 좌석이 다 차서 더는 예약을 받을 수 없다는 안내문이 뜨기도 한다.
싱크탱크 연구원들은 언론기고와 세미나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 관련 행사의 주체와 객체가 되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 전현직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주지사 등이 연설이나 포럼에 참가하거나 싱크탱크 태스크포스의 일원이 되어 여러 싱크탱크를 방문하는 일은 드문 경우가 아니다.
싱크탱크의 나라, 미국
제임스 맥간과 켄트 위버가 쓴 <싱크탱크와 시민사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싱크탱크가 처음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였다. '싱크탱크'라는 용어는 "군사전략과 전술개발을 위해 군과 민간전문가들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음 도입되었다.
1960년대로 오면서 '싱크탱크'는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공정책 대안을 만들어내는 조직을 통칭"하게 되었고, 70년대에는 "외교정책 및 방위전략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싱크탱크 연구자이자 현 루즈벨트 연구소장(http://www.newdeal20.org/) 앤드류 리치는 싱크탱크를 "정부나 기업, 대학 등으로부터 독립된,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는 비영리 조직으로서 정책형성과정에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 전문가가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또, 맥간과 위버(2000)는 운영형태나 인적 구성, 의제 설정이나 연구 목표의 학문적 기준이나 완성도 면에서 크게 네 형태로 싱크탱크를 나눈 바 있다. (표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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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별 미국싱크탱크 구분. (참조 : 맥간과 위버 2000, 아벨슨 2000, 홍일표 2007) |
ⓒ 전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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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싱크탱크들이 한 범주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를 이끄는 생각>(중앙북스, 2008)의 저자이자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인 홍일표 박사는 "워싱턴에만 300개 이상의 싱크탱크가 있고, 2008년에 설립된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임하는 커먼월연구소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 다양한 형태의 싱크탱크 1500여 개가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책연구소로 활동 중인 미국 내 싱크탱크 대부분이 1951년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1970년대 이후 그 수가 급격하게 증가(58%)했다.
미국싱크탱크의 첫 변화 : 보수 대명사 '헤리티지재단'의 등장
미국 싱크탱크 일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조직은 재원조달 및 활동방식에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온 보수 싱크탱크의 대명사 '헤리티지재단'(1973년)이다. 헤리티지재단은 워싱턴의 공공정책을 담당하는 의회, 행정부처는 물론 언론을 통한 대외홍보와 정책에 적극적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 마케팅을 통해 정치적 아이디어를 상품화했다. 또한 우편에 의한 기금마련이라는 형태로 다수의 소액기부자들을 확보하고, 다양한 만남의 기회들을 만들어 네트워크화 했다.
에드윈 폴너 헤리티지 재단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아이디어란 정책결정자들이 바탕으로 삼는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다. 젊은 두뇌들은 싱크탱크를 정치세계로 가는 발판으로 삼았고 이러한 경향은 뛰어난 인재를 모을 수 있도록 했다. 싱크탱크 세계에서는 마케팅이 성공의 열쇠이며, 앞으로 주나 지역차원의 싱크탱크들이 발전할 것이다. 아이디어전쟁은 진정한 전쟁이다. 아이디어는 부처럼 세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와야 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만이 이긴다."
홍일표 박사에 따르면, 아이디어 시장에서 보수적 재단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들은 정책보고서 만들기와 마케팅, 다음세대 키우기에 힘을 쏟았다. 이들의 활동으로 '전문가=언론에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됐다. 싱크탱크들은 '사람이 정책'이라는 관점 하에 보수적 리더를 키워내면서 미국을 싱크탱크의 나라로 만들었다.
부시 행정부 당시의 엘린 챠오 노동부장관, 인사담당 케이 콜스 제임스, 외교정책담당 스티븐 에이츠는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 출신이며, 딕 체니 부통령과 폴 오닐 재무부장관, 경제고문 로렌스 린제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장 글렌 허바드, 국방자문위원회장 리처드 팔, 전 UN주재 미국대사 존 볼트 등은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 출신이다.
40여 년간의 거대 보수주의 싱크탱크들의 활동은 영향력(정치인 배출, 언론인용 빈도)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해주었다. 앤드류 리치의 싱크탱크 영향력 분석(1993년과 1997년)에 따르면, 브루킹스연구소(중도) > 헤리티지재단(보수)>미국기업연구소(보수) > 진보정책연구소(중도) > 케이토연구소(보수) > 랜드(중도) > 전략국제문제연구소(보수) > 예산정책우선센터(진보) 순으로 클린턴 행정부 때조차도 보수 및 중도의 영향력이 우세했다.(1997년 언론인용 비율: 보수 53%, 중도 32%, 진보 15%)
1970년대 이후 보수성향의 싱크탱크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보수 세력은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출판 및 언론에 대한 막강한 투자를 통해 정책 의제 및 담론을 장악하는 데 주력했다. 보수 싱크탱크들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 집권, 1994년 '미국과의 계약'과 상하 양원 장악, 2000년 부시 대통령 집권, 2002년 공화당의 상하 양원 장악과 2004년 부시 대통령 재집권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적 결집을 주도했다.
진보 싱크탱크의 도약은 언제부터?
반면, 1954년 이래 1994년 미국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기 전까지 40년간 미국 상하 양원을 장악했던 민주당은 상임위원회 중심의 의회운영, 개별 의원모임 중심의 입법 활동을 통해 정치력을 행사해왔다.
진보정책연구소 등 소규모 리버럴 싱크탱크들은 클린턴 행정부와 민주당 <평의회>와의 소통에만 주력했다. 이는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잃는 순간 입법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고, 보수적 싱크탱크에만 귀를 열었던 부시행정부 때 이들은 정책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주의 및 진보 성향의 이익단체나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화, 환경, 노동 등 각 사회운동세력은 정책연구소, 경제정책연구소, 예산 및 정책우선순위 센터, 경제 및 정책연구센터 등의 진보적 싱크탱크들과 세분화한 이슈를 다루는 데에만 매달리다가 보수 세력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민주당 바깥으로부터 분출되는 변화요구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진보성향의 싱크탱크들이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새로운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보다 넓은 운동 기반을 만들어나갔다.
홍일표 박사는 1998년 공화당에 의한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반대와 민주당을 견인하기 위해 인터넷 중심의 대중정치운동을 시작한 무브온(MoveOn.org), 정치 블로그인 데일리코스(DailyKos.com)나 마이디디(MyDD.com) 등은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는 진실을 추적하고 공유하면서 날카로운 분석과 토론을 쏟아냈다고 평한다.
새로운 미국재단(The New America Foundation, 1999년), 미국진보센터(2003년) 같은 싱크탱크는 언론활용을 극대화하면서 인터넷뿌리(netroot)와 풀뿌리(grassroot)를 연계시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네티즌들과 블로거들이 투표 등록과 참여를 독려하면서 진보진영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정치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특히 2006년 중간 선거를 비롯, 오바마 대통령후보 캠페인까지 미국 민주당의 선거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미국진보센터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진보판 헤리티지재단, 미국진보센터에 쏠린 시선
2003년 창립당시부터 미국진보센터는 클린턴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존 포데스타가 주도했다는 점과 조지 소로스의 거액 기부로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진보센터는 에너지, 교육, 경제 등 국내현안은 물론 중동문제, 수단 학살 등 국제이슈까지 종합형 이슈를 다루는 싱크탱크이다. 연구와 교육은 물론 차세대 젊은 지도자 양성(캠퍼스 프로그래스) 등 종합형 조직형태를 띠고 있다. 창립 6년 만에 스태프 270명, 예산 30억 달러의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진보센터는 비영리 진보 싱크탱크로서 자매기관인 미국진보센터액션펀드와 함께 진보운동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센터에는 수석 대표급 5명, 시니어 스태프 12명, 연구위원 42명, 객원학자 27명, 커뮤니케이션 32명, 정책연구원 69명을 비롯해 국제프로젝트인 이너프 23명, 온라인커뮤니케이션 22명 등 총 277명의 스태프가 활동하고 있다. 전 민주당 원내대표 탐 대슐 의원을 비롯해 전 국방부장관 로렌스 코브 등 전직관료와 의원, <부상하는 민주당 다수>의 저자 루이 텍세이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데이비드 커틀러 경제학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
센터의 연차보고서는 "진보센터는 미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국회, 방송, 신문, 대학, 온라인상에서 진보의 가치를 재구성하면서 미국민의 대화주제를 바꾸고 있다"고 전한다.
센터의 대표적인 토론주제 및 보고서의 제목들이 그간 센터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데, 그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진보 우선순위들: 미국을 위한 행동 의제' '이라크, 수단, 쓰나미: 세계에서 미국의 책임은?' '의료개혁, 재정, 도덕성' '자원봉사군 구하기' '핵심집단: 북한과 폭탄' '15개의 새로운 아이디어들' '석유이용 습관 차버리기' '목격자 되기'.
보고서 마지막에 실려 있는 존 포데스타 대표의 편지는 "진보라는 하나의 비전 아래 모인 두 비영리조직인 센터와 액션펀드가 장기적으로 진보가치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것"임을 밝히고, "민주주의는 결코 마지막 위업이 아니며, 지치지 않는 노력을 요구한다"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진보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누가 미국민들의 대화를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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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진보센터 마케팅 브로슈어 중.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빌 클린턴 전대통령, 해리 리드 상원원내대표, 티모시 워쓰 UN기금대표, 존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 대표, 앨고어 전부통령, 기업인 티분 피킨스가 미국진보센터 액션펀드의 국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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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소통이다. 스태프 구성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가장 많은 32명을 차지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부서는 별도인데 여기에도 22명의 스태프가 웹사이트, 블로그, e-프로젝트 등을 통해 매일 수백만 미국인과 접촉한다.
가장 인기 있는 소통채널은 2006년에 웹 블로그 상에 이어 2008년 시드니 힐맨 재단 최우수저널리즘상, 2009년 웨비상을 받은 온라인 블로그 겸 이슈포럼인 싱크 프로그레스(ThinkProgress, http://thinkprogress.org/), 오피니언 리더들의 말을 요약하는 싱크 패스트(ThinkFast), 매일 이메일로 발송되는 프로그레시브 리포트(The Progressive Report, http://pr.thinkprogress.org/), 라디오 토크쇼나 방송프로듀서를 위한 아침 정보소스 믹체크(MicCheck), 국가안보관련 블로그 민주주의의 창고(Democracy Arsenel) 등이다.
물론 미국진보센터의 활동에 대한 비판이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센터가 2008년 대선에서 미국 전역의 주요 진보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했던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PIN)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이 특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홍일표 박사는 진보진영과 대중들로부터 새로운 힘들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절실히 요구됐던 정치적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면에서 헤리티지재단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 박사는 "미국진보센터는 가치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조지 레이코프 버클리대 교수는 홍일표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세력이 가치와 이념의 틀을 짜고, 이를 정교히 가공한 정책을 함께 만들어내야 하는데, 센터가 낮은 수준의 정책을 내오는 데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단체와 개별사업으로 쪼개지면서 약해졌던 진보싱크탱크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 괄목할만한 외형 성장과 꾸준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막강한 정책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진보센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것이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