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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의 현장을 찾아서

시놉티콘 2010. 2. 9. 13:28

 

 

 

세상에 ‘극한’ 아닌 직업 없더라
100회 넘긴 EBS ‘극한직업’
어부·산불기동대·방짜유기 장인…
고단함과 동료애 화면에 묻어나
한겨레 하어영 기자

 

 

» 세상에 ‘극한’ 아닌 직업 없더라

 

‘다큐멘터리의 무한도전.’ 조기잡이·옥돔잡이 배를 타고 나가는 촬영은 기본이고, 산불난 산속을 헤매고, 빌딩 청소 현장을 위해 훈련까지 받아야 하는 프로그램. 교육방송의 <극한직업>(매주 수·목 밤 10시40분)이다. “바다에는 나가지 않겠다”, “높은 곳은 이제 그만”이라는 피디들의 아우성이 화면 곳곳에 녹아든다. ‘저런 직업도 다 있구나’부터 ‘알고 보니 힘든 직업’까지 벌써 100회차 촬영을 넘어섰다.

 

■ 1500도의 액화 알루미늄 퍼나르기

 

지난 3일 대구의 한 알루미늄 공장.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101번째 <극한직업>의 제작 현장이다. 알루미늄 원석을 용광로에 녹이고, 압연해서 두께 0.6~40㎜의 판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라면 냄비, 프라이팬으로 만들기까지의 노동 과정을 담고 있다.

영하 10도를 가리키는 바깥과 달리 공장 안은 후텁지근하다. 카메라는 1500도의 탕(용광로)을 클로즈업한다. 하루에 네번, 2500개의 알루미늄판을 만들기 위해 세 명의 숙련된 장인들은 탕에서 1500도의 끓는 알루미늄 ‘국물’을 큰 국자로 퍼서 주형틀에 붓는다. “쉬워 보이지만, 기포가 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게 떠서 붓는 것 자체가 기술이죠.”

마스크를 쓴 채로 건네는 건조한 설명 뒤로, 10여년 노하우가 밴 손길은 묵묵하게 불국물을 나른다. 어느 것도 뜨겁지 않은 것이 없다. 취재 자체가 ‘민폐’인 상황, 연출을 맡은 이정우 피디는 “장인들에게는 조용한 자부심이 넘친다”며 “대부분 자신들은 극한직업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어딜 가든 그분들이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라고 했다.


» 세상에 ‘극한’ 아닌 직업 없더라

■ 우리 모두의 극한직업

 

노동강도, 숙련도, 위험도가 높다면 어떤 직업이든 가리지 않았다. 조기잡이 어부로 시작해, 사회부 기자를 돌아, 흉부외과 의사를 찍고, 항공기 정비사, 알루미늄 공장 노동자까지…. 돌고 돌며 카메라를 들이댄 101개의 직업을 통해 제작진이 내린 우화 같은 결론은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극한직업이더라’다.

<무한도전>의 ‘무한’이 온갖 한계를 드러내는 단어가 된 것처럼, 제작진은 <극한직업>의 ‘극한’ 또한 보통이라는 반대어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이 피디는 “당장 로봇이 우리 삶을 대체할 것 같은 21세기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근육과 손끝만의 노하우를 가진 직업들이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책임지고 있었다”며 “‘극한’이라는 설정으로 소재가 고갈돼 1년을 못 갈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지금까지 방송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 제작진이 권하는 열 개의 에피소드 일이 험할수록 ‘동료애’가, 장인 정신을 요하는 일일수록 일의 고단함이 묻어난다는 101개 직업 중에 제작진이 다시 볼만한 작품들을 골랐다. 인천대교 건설현장(16회), 해상특수기동대(51회), 옥돔잡이(54회), 고공외벽청소부(62회), 한강수난구조대(82회), 방짜유기공장(90회) 등이다.

 

다시보기는 http://home.ebs.co.kr/limit.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교육방송 제공




■ ‘극한직업’ 이정우 피디

“무섭고 힘들었죠 그분들껜 고맙고 죄송하죠”


“54회 방송됐던 <옥돔잡이>를 촬영할 때였어요. 동중국해까지 제주도에서 하루를 배 타고 나가요. 10t짜리 배가 얼마나 왜소해 보이는지는 태평양에 나가본 사람만 알죠. 흔들리는 선실에서 칼잠도 제대로 못 잔 채로 이틀을 보내고, 사흘째는 멀미, 피로 때문에 카메라 들기도 힘들더라구요. 게다가 파도가 심상치 않았어요. ‘태풍이라도 불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어요. 그리고…. 태풍이 왔어요. ‘살았구나’ 했어요. 어리석었죠. 사실 그분들은 조업을 못해 피해가 컸어요. 죄송해요.”

알루미늄 공장 촬영 뒤 텁텁함을 달래기 위한 소주 한잔 때문이었을까. <극한직업> 연출자인 이정우 피디의 “죄송하다”는 말은 무거웠다. 그는 미안함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다시 가겠느냐는 질문에는 “또 가고 싶지는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직업 의식을 돌아볼 틈도 주지 않으며 자꾸만 자신의 ‘끝’을 보게 만드는 현장들을 떠올리며 “무섭고, 힘들었다”고 답했다.

“<산불기동대>(58회) 때는 경북 칠곡군 산불 현장에 뛰어들었죠. 기동대원들은 레펠(헬기에서 강하할 때 쓰는 줄을 포함한 도구)로 내려가구요. 저는 건너편 산 정상에 헬기로 내렸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연기는 산에 가득하고, 대낮이었어도 오싹했어요. “대장님!” 정말 엄마를 찾듯 소리를 쳤죠. 불이 살아 있는 듯 수십미터를 타 넘으며 옮겨다니는데, 그림은 좋은 거예요. 십수미터 나무가 3초도 안 걸려 재로 변하는 그림을 잡으면서 ‘죽었구나’ 싶더라니까요.”

자책에서 출발한 죄송하다는 말은, 그들(극한직업)의 자부심이 제대로 느껴지도록 만들었어야 했다는 반성으로 이어졌다. “방짜유기 장인, 범종 장인 등 그 현장에 그들이 없으면 이제 우리 주변에서 그 물건들은 보기 힘들어지겠죠. 제 마음은 우리 프로그램 게시판과 같아요. 그분들이 고맙고, 후원하고 싶고….”

이야기의 마무리는 역시 고생담이다. “무섭기로는 <고공 외벽 청소부>(62회)도 녹록잖죠.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직접 건물 외벽을 타려고 훈련을 하루 종일 받았지만 택도 없더라니까요. 그래서 줄줄줄, 내려왔어요. 죄송해요.” 하늘끝, 땅끝, 안 가 본 곳 없을 정도로 전국을 누볐지만 정작 촬영이 금지돼 아쉬움이 남은 곳은 대기업 사업장들이다. “깨끗하니까요. 복지도 좋구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극한직업이 아니라는 건 지금까지 방송된 직업들을 보면 말이 안 되죠. 곧 기회가 오겠죠.”

 

하어영 기자

 

기사등록 : 2010-02-08 오후 07:13:21 기사수정 : 2010-02-08 오후 07: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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