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지의 꿈]
〈빼앗긴 대지의 꿈〉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1만2800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그건 결코 식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2008년 4월까지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이사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고 지금은 이사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76)는 2000년에 낸 책에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그 이유를 실감나게 설명했다. 2007년 말에 번역돼 나온 그 책 후속작 <탐욕의 시대>에서 지글러의 문제의식은 더 깊어졌고 서방의 신자유주의 폭주에 대한 비판의 강도도 더욱 높아졌다. 2008년에 쓴 <빼앗긴 대지의 꿈>은 더 절박하다. 원제(‘서양에 대한 증오’)가 말해주듯 이 책에서 지글러는 서방의 과오가 자체 교정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광범위한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1960년대 후반 아프리카 비극을 상징했던 비아프라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아’나‘내전’이란 말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비아프라’보다는 ‘비아프라 내전’이 더 귀에 익은 그 비극이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실은 서방 석유재벌 이권 다툼에서 촉발되고 영국, 프랑스 정부까지 개입한 20세기형 노예무역전쟁이요 식민지쟁탈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런던과 셸이 지원한 나이지리아 군부 매판세력, 파리와 엘프아키텐이 민 또 다른 매판세력간의 제국주의 대리전쟁. 30개월이나 지속된 그 전쟁으로 200만 명이 민 또다른 매판세력 사이의 제국주의 대리전쟁. 30개월이나 지속된 그 전쟁으로 200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이 사지 절단 등의 부상을 당했으며 수백개의 도시와 마을이 불탔다. 그러곤 그 다국적 석유재벌들끼리 화해하고 다시 석유와 가스를 나눠 먹기로 했고 그것으로 비아프라 독립을 내건 그 전쟁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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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나이지리아는 지금도 셸과 비피(BP), 셰브런, 토탈, 엑손, 엘프아키텐, 아지프 등 서방 석유재벌들이 은밀하게 동의하지 않으면 1966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군부통치 맹주들도 선거 한 번 치를 수 없고(이 선거조차 철저히 사전에 밀약한 각본대로 치러지는 완전부정선거다) 3개월 이상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프리카 최대인 1억4000만 인구 가운데 70% 이상이 세계은행이 분류한 극빈층에 속한다. 그들 중 54%는 만성영양실조고 어린이 10명 중 1명은 10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 2006년 유엔개발계획이 평가한 177개 나라 가운데 나이지리아는 159위. 아프리카 최대, 세계 8위의 산유국이 가장 비참하게 사는 하위 20개 나라에 포함된 것이다. 하루 260만 배럴(2007년)이나 되는 원유를 수출하면서 석유화학제품은 100% 수입해야 하는 나라, 수도 아부자에서조차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는 자동차가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나라, 제2의 도시 라고스는 개인 경호원 없이 나다닐 수도 없고, 오로지 경찰의 불법 수금을 위해 곳곳에 검문소 따위를 설치해 놓고 사람들을 몇 시간씩 줄세우는 나라.
셸그룹의 자회사가 그런 나이지리아에서 올린 연간 이익은 2007년에 310억달러, 같은 해 엑손모빌의 이익은 무려 406억달러. 이들 외부 석유재벌들이 지난 40년간 나이지리아 군사독재 대부들에게 건네준 돈이 <르몽드> 추산으로 3520억달러. 이 막대한 돈은 대부들이 조종하는 나이지리아 통치체제를 뿌리까지 썩게 만드는 거름이 됐다. 서방 석유재벌은 그 부패의 늪 위에 떠 있다.
나이지리아 유전지대에서 여과도 하지 않고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세계 다른 유전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전체 양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1989년 미국 유조선 엑손발데즈가 알래스카 연안에 좌초해 사상 최대의 환경재앙을 불렀으나 나이지리아에선 그때 유출된 기름의 네 배가 매년 바다로 유출돼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백만 어부와 농부, 목축업자, 채소 재배업자들의 생계를 망치고 있다.
2007년 한 해 동안 빈곤으로 인한 지구촌 사망자는 5700만. 이는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 전체 기간 인명피해와 맞먹는 것이었다. 지글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케 한 것이 신자유주의요 그것을 진두지휘한 세계은행이다. 그 배후에 워싱턴이 있다. 작가 켄 사로위와 등 9명이 교수형을 당한 것은 나이지리아의 소수 매판세력과 서방의 유착, 그것이 부른 부패와 파괴를 묵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레 시엔 코트디부아르 외무장관이 2001년 9월 공식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여러분들이 노예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내리쬐는 뙤약볕 밑에서 또는 빗줄기 속에서 수백만의 농부들이 여러 달 동안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 얻는 상품의 가격이,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농부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볼 필요 없이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노예제 폐지 이후) 방법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 흑인들은 이제 앤틸리스 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강제로 실리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그들은 자기 땅에 머물러 살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이 자기 땅에서 흘린 피와 땀에 대해서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값을 매깁니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빼앗긴 대지의 꿈>이 하고 싶은 얘기가 이 말에 압축돼 있다. 서구의 식민지배 역사는 모습만 바꾼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방에 대한 증오의 기원, 착취의 계보까지 더듬은 지글러는 타인에게 강제하는 기준을 정작 자신들은 마음대로 유린하는 서방의 이중성을 정신분열증에 비유한다.
남미 볼리비아는 또 하나의 나이지리아다. 하지만 지글러가 본 것은 절망이 아니다. 남미대륙 최초의 선출된 인디언(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를 지글러는, 1492년 콜럼버스 항해 이후 정복과 노예무역, 식민지배, 그리고 “이제까지의 억압체제 가운데 가장 살인적인” 지금의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 이르는 500년간의 서방 지배와 착취로 인한 셀 수 없는 비극의 희생자들의 부활을 알리는 희망의 전령사로 받아들인다. 가장 비참하고 어두웠던 남미에서 기억의 재구성과 정체성 회복, 민족국가(탈식민 법치국가) 건설을 통해 서방마저도 구원할 저항과 재건의 새 역사가 시작되리라!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사등록 : 2010-03-12 오후 07:1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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