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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모델들

시놉티콘 2010. 3. 19. 12:31

 

 

 

심오함·대중성 겸비한 ‘민주주의 입문서’
데이비드 헬드 ‘민주주의의 모델들’ 출간
시민의 ‘숙의와 참여’ 가능케 할 대안 제시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후마니타스)이 번역돼 나왔다. 영국 폴리티 출판사 대표이자 런던정경대 교수로 재직중인 헬드는 스튜어트 홀이 영국 개방대학(Open University) 교재용으로 편집해 국내 대학에서도 현대문화 입문서로 널리 읽히는 <모더니티의 미래> <현대성과 현대문화>(현실문화연구)의 공동 저자로도 친숙하다. 이 책 역시 그가 개방대학 교수로 있던 1987년 교재용으로 집필한 뒤 여러 나라의 대학들에서 입문서로 활용돼온 ‘민주주의 독본’이다. 1996년과 2006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 책은 2006년판(초판은 1989년 <민주주의 모델>로 소개)을 번역한 것으로 앞선 판본에는 없었던 ‘숙의 민주주의’(9장)와 ‘세계시민 민주주의’(11장) 부분이 추가됐다.

 

헬드는 이 책에서 시간적으로는 고대 아테네에서 20세기 말 사회주의 붕괴 이후까지,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적 흐름에 이르기까지, 서구 민주주의의 다양한 조류를 10여개의 모델로 유형화한다. 이런 유형화는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가 △인민의 참여 정도 △참여의 성격과 목표 △민주주의의 적용 범위에 따라 경합하는 복수의 유형들로 구별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를 통해 헬드는 민주주의를 네 개의 고전적 모델(고전적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과 다섯 개의 현대적 모델(경쟁적 엘리트민주주의, 다원주의, 법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구분하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헬드가 각 모델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구상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세 흐름인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장점을 선택해 절충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공적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숙의와 참여를 가능케 할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법치주의와의 갈등, 투표율 하락, 양극화, 정치의 사법화, 대중운동의 분출 등 서구 민주주의가 경험했던 다양한 난제들을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맞닥뜨리게 된 우리 현실에서 오랜 경험이 농축된 다양한 민주주의 담론은 대증요법적 처방이나 기술합리적 해결책을 넘어서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심오함이란 가치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전문적인 내용을 쉽고 명료하게 풀어내는 헬드의 탁월함이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이세영 기자

 

 

기사등록 : 2010-03-17 오후 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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