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래스'] 토론없는 교실은 복종을 가르친다
[이사람] 토론없는 교실은 복종을 가르친다 | |
프랑스 영화 ‘클래스’ 감독 로랑 캉테 방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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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한 공립중학교 교실 풍경을 묘사한 <클래스>로 ‘제6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2008년)을 받은 로랑 캉테(49·사진) 감독이 영화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서울에 왔다.
100%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실제의 느낌이 가득 묻어나는 <클래스>는 프랑스의 끝장 토론문화가 어디서 오는지 알게 해주는 영화다. 주인공이자 담임 선생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수아 마랭(프랑수와 베고도)은 학생들의 사고 능력과 언어 감각을 길러주려고 사소한 문제까지 토론으로 몰아간다.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로랑 캉테 감독은 “영화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프랑스 학교의 전체 모습을 반영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적인 수업 방식을 택하는 선생님들을 프랑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실업 등 사회 문제가 커지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지자, 그냥 편하게 연습 문제나 풀면서 대충 넘어가는 교사들도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와 토론 문화가 부럽다는 말에 그는 “지배자들은 시민들이 생각을 많이 하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통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걸 무서워한다”며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규격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영화에서 프랑수와는 학생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지만, 되바라진 학생들은 그의 진심을 몰라준다. 도리어 그는 학생들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로랑 캉테 감독은 “학교는 아이들의 지성을 꽃피우게 하는 곳이지만, 복종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모순덩어리”라며 “학교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다단한 얘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클래스>는 순제작비 35억원(약 230만유로)의 저예산 영화지만 칸의 후광을 업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프랑스에서만 17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2008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중 흥행 5위를 차지했으며, 60여 나라에 수출됐다. 그는 “기존 공식을 벗어난 영화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영화 관계자들이 아주 고무돼 있다”며 “교사들만이 아니라, 미국 액션영화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보러 온 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기사등록 : 2010-03-24 오후 07:25: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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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는 한국 관객들을 ‘문화 충격’에 빠뜨릴 만한 영화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왜 교과서대로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왜 학생 평가를 회의로 결정하고, 그 회의에 학생 대표를 참여시키는 건지…. 한국 학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아무리 토론의 나라 프랑스라고 해도 “모든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로랑 캉테 감독은 인정한다. 파리시 20구의 공립 중학교에 다니는 실제 학생들과 교사들이 출연하는 이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는 실은 정교하게 고안된 픽션이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과 갈등에 앵글을 맞췄다. 담임 교사이자 언어를 가르치는 마랭(프랑수아 베고도)은 아이들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 정도로 격렬한 토론을 한다.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파고들며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아이들은 선생을 이기고 싶어 안달하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어 오는 아이도 생긴다. 언어를 예술로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철학이 녹아 있는 설정인데, 언어의 애크러배틱을 펼치던 프랑수아는 딱 한 번의 실언으로 학생들 전체와 대립하게 된다.
<클래스>는 할리우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제시하는 낭만주의 학원물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언어와 인종, 세대와 권위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사려 깊은 영화지만, 골치 아픈 영화는 아니다. 특히 새로움을 두려워 않는 관객들에게는.
제6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2008년). 4월1일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기사등록 : 2010-03-28 오후 05:56: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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