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연못
속절없이 스러져간 무명씨들께 바치는 조사 | |
스크린에 새긴 노근리의 진실 ‘작은 연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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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사람들에게 1950년 난리는 소문이었다. 쌍굴다리 사건 뒤 그것은 전쟁이 되었다.
미군의 일본말 안내방송을 듣고 마을사람들이 옮겨간 곳은 임진년 난리를 피했다는 가마봉이었고 미군이 ‘도락구’에 태워 남쪽으로 피난시켜 준다는 전언에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미군기의 무차별 공습과 미군들의 기관총 세례.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미군들은 1950년 7월26~29일 노근리 철길과 쌍굴로 피신한 주민 수백명을 쏘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 정자나무는 길손을 잃었고, 큰바위는 영험함을 잃었다.
노근리 학살사건은 쉬쉬 입으로만 전해지다가 1999년 <에이피> 통신이 사실로 확인하면서 햇빛을 보았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조차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6년 뒤인 2005년에야 “사망·상해·실종 등 희생자 218 명, 유족 2170명을 확정한다”는 공식 발표가 났다. 이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은 전쟁영화에 으레 있을 법한 영웅이 단 한명도 없다. 미군이 총을 쏘아대는 걸 뻔히 보고도 “미군이 왜 쏴! 빨갱이가 쏘겄지”라는 무지랭이, “넌 살아야 혀. 살아서 대를 이어야 혀”라며 손자한테 족보를 건네는 노인네, “울지 말어, 니가 우니께 자꾸 총을 쏘잖어” 하면서 아기를 질식사시키는 아비 등이 있을 뿐이다. 그해 여름 그렇게 경을 치고도 어른들이 청년한테 하는 말은 고작 “죽지도 말고, 다쳐서도 안뒤여~ 절대로 앞장서들 말어”다.
영화는 절대 줄행랑칠 리 없는 정부한테 버림받고, 절대 그럴 리 없는 미군한테서 죽임을 당한 무명씨들한테 바치는 조사다. 50년이 되도록 모르쇠하다가 미국 통신사의 기사를 받아 사실임을 인정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참회이기도 하다. 15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기사등록 : 2010-04-11 오후 05:50: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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