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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풀뿌리운동은 ‘지역정당’으로 업그레이드 중

시놉티콘 2010. 6. 21. 12:46

 

 

 

일본 풀뿌리운동은 ‘지역정당’으로 업그레이드 중
회원 3300명·자치의원 31명…생활문제 정책에 반영
정치자금 모금 가능…지역정치인 주도 창당도 잇따라
한겨레 정남구 기자기자블로그

 

»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 회원들이 지난해 12월20일 요코하마역 앞에서 홋카이도 시민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지방의원 연금제도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4월 가마쿠라시의회 선거에 나선 네트워크운동 소속 후보 네 명이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 제공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힘
 

일본 가나가와현과 요코하마시, 가와사키시는 지난 2월 세 자치단체가 공동출자해 2001년부터 운영해오던 폐기물처리회사 ‘가나가와크린센터’ 시설을 민간사업자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하 네트워크운동)이 2년간 이 문제를 집요하게 다뤄온 결과다. 네트워크운동이 조사해보니 크린센터는 일감을 거의 지자체에만 의존하고 있어 비용이 많이 들었고, 해마다 지방정부가 거액의 적자를 보전해주고 있었다. 네트워크운동은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지자체들이 손을 떼도록 요구해 끝내 관철시켰다.

 

네트워크운동 가마쿠라 지부는 요즘 다케다약품연구소가 건설하기로 한 ‘생체실험 동물 사체 소각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근 후지사와시가 4월에 지역주민의 반대가 없다며 허가를 내줬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까닭이다. 네트워크운동은 소각로가 들어설 지역의 반경 300m 일대를 집집마다 돌며 설문조사를 벌이고, 공무원과 전문가가 함께 참가하는 포럼을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야마모토 유코 공동대표(가나가와현 의원)는 “생활 속의 과제 하나하나가 모두 정치와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네트워크운동의 활동을 보면 이 말의 의미가 명료해진다. 네트워크운동은 지난해부터 ‘화학물질정책 프로젝트’를 가동해 초중학교나 보육소 등에서 쓰는 자재에 어떤 화학물질이 쓰였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개선점을 찾아 조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 기지 훈련 분산 문제가 제기됐을 때는 소식지에 가나가와 현 안의 미군 기지 현황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아쓰기시 시민자치모임 회원인 야마모토 토모코 시의회 의원은 과일 등에 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사용의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운동에 머물지 않고, 이를 지방정부의 정책으로 바꿔나가는 네트워크운동의 힘은 지역정당(로컬 파티)이라는 독특한 조직구조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이 5명 이상이어야 하는 ‘정당’은 아니지만, 정치단체로서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다. 3300여명의 회원이 내는 회비도 있지만, 소속 의원들이 자신의 급여 대부분을 기부해 활동자금으로 쓴다는 게 특이하다. 의원들은 급여(월 100만엔 가량)와 의정활동비(50만엔 가량) 가운데 월 18만엔만 자신의 활동비로 쓴다. 지난해 수입 1억3866만엔 가운데 8619만엔이 이런 기부액이었다.

 

현재 현·시·쵸의회 의원은 모두 31명이다. 이 지역 지방의회 의원의 3%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3000여명의 회원과 베테랑 간부들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까닭에 지역정치 영향력은 막강하다. 활동은 가장 먼저 지역주민들과 학습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하고, 목표와 방향을 정하면 주민에게 호소하여 지방의회에서 정책으로 실현시킨다.

 

네트워크운동 소속 의원은 모두 여성이다. 회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그 가운데서 적임자를 뽑아 후보를 세운 까닭이다. 의원은 한 의회 소속으로는 연임, 의회를 바꾸는 경우에도 3기까지만 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를 의회에 보내 훈련시켜야 조직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원직을 물러난 사람은 전문성을 계속 살려 조직활동을 돕는다. 네트워크운동은 애초 ‘시민운동’ 성격을 강하게 띤 까닭에, 지역정치에서도 야당의 위치에서 활동하려 한다.

 

네트워크운동처럼 일종의 시민단체 성격을 띤 지역정당 운동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가운데, 올들어선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지역정당 실험도 시작돼 주목을 끌고 있다. 지방의회 다수파 획득을 목표로 한 지역정치가들에 의한 지역정당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지난달 26일 나고야시의 주민세를 10% 항구적으로 감세하는 것을 핵심정책으로 한 지역정당 ‘감세일본’을 창당했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카사부 지사도 오사카부 행정개혁을 내걸고 ‘오사카 유신회’란 지역정당을 창당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 지역정당은 내년 봄 치러질 통일지방선거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생활협동조합서 ‘시민 대리인’으로
22만명 서명한 조례 부결뒤
독자 정치세력화 필요성 인식
한겨레 정남구 기자기자블로그
1980년 가나가와현에서 활동하던 ‘생활협동조합 가나가와’의 조합원들은 주민 22만명의 서명을 받아 현내 7개 시의회에 합성세제를 추방하는 조례를 제정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모든 시의회에서 부결돼버렸다. 생협은 이를 계기로 의회활동에 시민의 생각을 직접 반영할 ‘대리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협은 3년 뒤인 1983년 통일지방선거에서 독자후보를 내, 가와사키 시의회 의원을 당선시켰다.
 

대리인 보내기 운동은 이듬해 지역정당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을 설립하며서 본격화됐다. 87년 지방선거에서는 15명을 출마사켜 9명을 당선시켰고, 2003년 선거에서는 66명을 출마시켜 전체 지방의원의 4%에 이르는 39명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매주 2쪽짜리 작은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활동상황을 주민들에게 자세히 알린다. 지역변호사회의 협력을 얻어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고, 지역문제를 연구하는 개인과 단체에 예산을 지원하는 ‘시민사회챌린지기금’도 운영한다.

 

지역정당을 통한 지역자치 운동은 도쿄·지바·사이타마·홋카이도·이와테·후쿠오카 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역정당들은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을 금지하고 개인기부를 늘리도록 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2008년 국회에 낸 바 있다. 또 다른 연금제도에 견줘 혜택이 지나치게 많은 지방의원 연금제도의 폐지운동을 함께 벌이고 있다. 여성과 약자의 노동권 문제 등 지방의회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은 전국적 연대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해나간다. 중의원·참의원 선거 때는 ‘정책협약’을 맺은 다른 정당 후보를 지원하기도 한다.

 

요코하마/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예산, 꼭 필요한 곳에 쓰게 해 보람”
정치인 주도하는 지역정당
“권력집중·견제실종” 우려
한겨레 정남구 기자기자블로그
»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핵심간부들. 왼쪽부터 와타나베 아쓰코 사무국장, 야마모토 유코 공동대표, 사토 기미코 시민활동연대부장
야마모토 유코 공동대표
 

“적자를 내는 폐기물 처리회사를 정리하면서, 의회에 들어간 보람을 크게 느꼈어요.”

 

현의원인 야마모토 유코(53) 공동대표는 예산 낭비를 없애고,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한 데 의회 활동의 가장 큰 의미를 뒀다. 그는 유치원 보육사, 유치원 교사 출신이다.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해 네크워크운동에 참여했다가 1999년 시의원 출마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의원을 할 수 있다고…”라며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아쓰기 시의원을 한 번 지낸 뒤, 현의회로 옮겨 재선까지 했다. 내년 3월로 임기를 마치는 그는 “네트워크운동의 후보를 차기에 당선시키는 것까지가 내 임무”라고 강조했다.

 

야마모토 대표가나가와현을 “전국에서 가장 지방분권이 잘 돼 있고, 개인정보 보호 조례가 가장 잘 정비돼 있다”고 소개했다. 전국 각지에 같은 성격의 지역정당이 있지만, 가나가와현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배경으로 그는 젊은 세대가 많이 사는 ‘베드타운’이란 지역 특성을 조심스레 거론했다. 물론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0% 정도로 다른 지역에 견줘 특별히 높지는 않았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지금까지 300명 이상의 지방의원 경험자를 배출했다. 전직 의원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시의원을 지낸 와타나베 아쓰코 사무국장은“네트워크운동의 출발은 생활협동조합 운동이었지만, 지금 회원 가운데 생협 회원은 3분의 1에 못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협같은 조직들은 식품안전 등에 관한 조례를 다룰 때는 든든한 파트너가 된다. 그는 최근 새로 등장한 나고야시와 오사카부의 지역정당에 대해서는 “시장이 주도해 시장한테 권력이 집중됨으로서, 시의회의 견제 기능이 무력화되는 것 아닌가 우려한다”고 말했다.

 

사토 기미코 시민활동연대부장은 “처음 시의회에 출마하기로 했을 때 온동네 사람들한테 엄마 얼굴이 알려지면 부끄럽다던 아들이 지금은 커서 엔지오 활동가의 삶을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기사등록 : 2010-06-20 오후 0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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