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
젖병 든 아빠·활기찬 노인 넘치는 ‘스웨덴 복지’ | |
출산휴가 8주 쓰는 아빠들 ‘적극적 보육’ 노인도 소외된 삶 아닌 즐거운 일상 즐겨 출산서 노후까지 전생애 국가가 보살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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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1일 오후 2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도심인 드로트닝가탄. 한국의 명동과 같은 곳인 만큼 여행객과 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거리가 활기차다. 극동의 탐방객에게 매우 낯선 모습은 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모차 부대. 더욱이 유모차를 끄는 이가 대부분 30~40대로 보이는 남자다. 거리에서 갓난아기들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남자들이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한국은 물론 유럽의 다른 나라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평일 낮인데도 도심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에는 남자 혼자서 젖병을 들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건장한 체구에 수염까지 기른 스웨덴 남성과 이제 서너 달밖에 되지 않은 유모차의 아기가 묘한 대조를 보인다.
이는 바로 복지국가 스웨덴이 자아낸 하나의 ‘상징적 일상’이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가 56주다. 이를 여성과 남성이 나눠 쓸 수 있다. 그러나 남자는 의무적으로 적어도 8주를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직장에 출근하고, 대신 아버지가 대낮에 아이를 돌보다 보니, 갓난아기를 돌보는 남성이 거리 곳곳에 그렇게 많이 눈에 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스웨덴에서도 남녀가 공평하게 보육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남성들의 구실이 더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긴 시간 아이를 돌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축구경기를 하는 날엔 남성들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스웨덴 남성들의 과열된 축구사랑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그래도 스웨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보육과 관련된 남성의 구실이 가장 두드러진 사회이다. 유럽에서 출산율 3위 국가다. 출산이 가족의 삶이나 사회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는 복지정책 덕택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출산휴가정책뿐만 아니라 양성평등정책 차원에서 출산과 관련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최근 여러 정당들이 남성의 의무 육아휴가 기간을 늘리려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낮에 스톡홀름 길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류는 노인들이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시가지인 스톡홀름의 오덴플란 지역에서도 낮에 노인들이 무척 눈에 띈다. 혼자서 장을 보러 나온 80살 넘은 할머니,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나란히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80대 할아버지. 심지어 보행기에 의존해서 걷는 노인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스웨덴은 일본과 더불어 세계 최장수 국가이다. 전체에서 5명 중 1명이 노인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소외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생활하기 때문에 슈퍼마켓, 카페, 식당, 도서관 등 도심 곳곳에서 눈에 많이 띄게 된다. 노인들도 다른 인구집단과 마찬가지로 시민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다. 노인복지는 좌파와 우파를 떠나서 스웨덴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 이슈이다. 노인복지를 어떻게 질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견해차는 존재하지만, 노인복지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기존 스웨덴 사회의 합의를 거스르는 것이고, 곧 선거 패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스톡홀름에서 이른 아침 붐비는 곳이 있다. 바로 프리스쿨이다. 프리스쿨은 만 1살부터 5살 아이들을 보육하는 곳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다. 아침 8시께 직장에 출근하는 여성들이 프리스쿨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프리스쿨은 2~3개의 반이 있고, 1개 반은 20명 정도로 이루어진다. 프리스쿨을 이용하는 데는 약간의 비용이 든다. 사립 프리스쿨도 생겼다. 그러나 사립이라고 해서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어머니나 아버지로 또 한 번 프리스쿨 앞이 붐빈다. 보통 어머니가 오전에 아이를 맡기면, 오후에는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러 온다. 남성과 여성이 교대로 일을 분담한다. 한국에서는 정말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스웨덴에서 중요한 것이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이다.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인간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회와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안정된 가족생활이 우선이다. 그래서 아이 때문에 출근시간에 약간 늦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충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지는 출산, 보육, 교육, 일, 퇴직과 노후생활로 이어지는 생애 전 과정과 관련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개인과 가족을 보호하고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비록 좌우파 정당들이 총선을 앞두고 정권쟁탈전을 벌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인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스웨덴 복지국가의 기본 정신은 면면히 흐른다.
스톡홀름/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
스웨덴 세수확보 고민 많지만‘모두 잘사는 길’ 국민지지 명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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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 선거운동으로 뜨겁다. 총선이 9월19일로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핵심 이슈는 복지다. 4개 우익보수정당으로 구성된 현 우익연립정권은 지난 4년 동안 복지병에 메스를 가하고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경제발전과 재정안정을 이뤘다는 점에서 국민들한테서 나름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지속적 복지개혁을 내걸었다.
반면 사민당, 좌익당, 환경당으로 이루어진 좌익공조체제는 소득세 인상을 통해 지난 4년 동안 후퇴한 복지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좌익연합은 특히 사회보장성 기금의 인상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조금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만약 좌익연합 정권이 들어서면 스웨덴 복지제도에 또 한번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렇듯 스웨덴의 복지제도가 정권에 따라 부침을 보여도 스웨덴 복지체제의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복지체제에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복지국가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는 전체 예산의 53%까지 차지하는 복지예산의 확보다. 급격한 노령화의 진행에 따른 경제생산성의 저하,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인구의 감소,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의 역할 증대에 따른 복지국가 세수원의 불안정성, 세계 재정위기와 함께 전개되는 대량실업사태에 따른 복지세의 급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결과로 복지제도 유지를 위한 세수원의 안정적 확보와 질 높은 복지서비스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온 탁아소·유아원 운영, 초중등 교육 및 방과후 교육, 노인 복지서비스 등에 외주를 통한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단가를 낮추면서 서비스의 질에 대한 의문과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퇴직연령을 이미 67살로 재조정하고 앞으로 75살까지 늘리기 위해 각 정당들이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스웨덴이 보편적 복지제도를 포기하고 선별적 복지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및 스칸디나비아 복지모델은 정권에 따라 당분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이 한국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무엇보다도 전국민이 골고루 잘살 수 있는 사회적 권리의 실천 여부가 현대 민주주의국가 완성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점이다.
늘어난 세금부담만큼 일부 국민의 저항을 초래할 수는 있겠지만 복지제도의 확대를 통한 사회적 약자 계급의 감소와 양극화 해소 등의 시너지 효과는 사회통합을 통한 삶의 질 확대와 사회적 안정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높은 삶의 질과 서민친화적 생활정치의 확대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지속적 경제성장에 필수적이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통한 복지국가의 구축은 궁극에는 통일 대비에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띨 것이다. |
‘자유형·보수형·사민형’ 세가지 복지국가 유형…‘제3의 길’ 변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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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welfare)는 사전적 의미로 ‘만족스런 상태’다. 건강과 행복의 조건들이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를 말한다. 반대는 비복지(diswelfare)다. 질병, 빈곤, 불안 등으로 불행한 상태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비복지를 양산한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교정장치이자 수단이 바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곧 국가가 개인이나 가족에게 다가오는 질병, 노령, 실업 등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삶의 불안전을 줄여주는 수정된 자본주의(복지자본주의)인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시작돼 각국으로 번진 이 정치적 기획물은 나라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다. 연금제도 등 제도적 유산이 다른데다, 정당 등 사회구성원들의 계급적, 정치적 힘의 역학관계 또한 다르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학자인 에스핑 안데르센은 이런 복지자본주의의 형태를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자유주의형, 보수·조합주의형, 사민주의형이다.
자유주의형은 미국과 영국이 대표적 국가다. 엄격한 자산조사와 낮은 수준의 복지급여, 미발달된 사회보험이 특징이다. 시장에 참여한 다수 국민과 지원금에 의존하는 국민으로 나뉘어지는 양극화 경향이 크다. 보수주의형은 독일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사회보험 위주로 복지제도가 운용된다. 사민주의형은 스웨덴 등 북구국가들인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수당이 발달했으며, 사회적 연대가 높다.
실상 이런 구분이 모든 나라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 일본 등의 경우, 확대가족과 유교주의 전통에 의해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유교주의적 복지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공산주의 이후의 동유럽도 새로운 보수적 조합주의 형태를 보인다. 자유주의형인 영국과 미국도 따지고 보면 그 차이가 크다.
형태가 어떻든 세계의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금융위기 등 여러 도전을 맞으며 새롭게 변형되고 재조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3의 길이다. 영국 신노동당의 시장지향적 모델, 네덜란드의 ‘시장의 합의지향’ 모델, 스웨덴의 개혁복지국가 모델, 프랑스의 국가주도 노선 등이 그것이다. 이들 복지 선진국의 복지개혁과 변화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창곤 기자 |
기사등록 : 2010-09-05 오후 07: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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