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
경고! 시장 만능주의 ‘거품 관리자들’ | |
금융규제 완화·도덕적 해이 글로벌 경제회복의 ‘걸림돌’ 임기응변식 ‘거품대책’ 여전 정부개입 늘려 균형 맞춰야 | |
![]() |
![]() ![]() |
“경제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자유낙하는 2009년 가을 일단 멈춘 걸로 보인다. 이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다. 하지만 자유낙하가 끝났다는 게 정상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올해 낸 <끝나지 않은 추락>(FREE FALL)에서 매긴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정권 경제 성적표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 끝은 아직 멀리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느린 기차의 난파와 같은 것이었다. … 구조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때 분명한 건 임박한 참사를 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벼랑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역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경제의 회복이 굳건한 기반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며 글로벌 경제는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새로운 비전을 담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임기응변식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규제개혁을 비롯한 몇몇 분야에서는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낫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나쁜 상황이 펼쳐졌다”며 자신이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했고, 이대로 가면 “(바로잡을)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혀 버릴지 모른다”고도 했다.
이 책 한글판 후기를 썼을 즈음인 지난 8월 스티글리츠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유럽의 긴축정책이 더블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그가 책에서 1990년 1차 걸프전 당시 ‘압도적 군사력으로 적을 공격한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에 빗대 “경제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크루그먼-스티글리츠 독트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압도적인 힘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과 상통하는 얘기다.
“나는 모든 성공적인 경제의 심장부에 시장이 있다고 믿지만 그 시장이 스스로 잘 작동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저명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사상적 전통을 따른다”고 한 그답게 정부의 개입을 통한 총수요 창출을 촉구하는 얘기로 들린다. ‘임기응변식 정책’이라는 비판에는 8천억달러 규모 정도의 때늦은 공적자금 투입으로는 어림없다는 의미도 분명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추락>이 시종일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금융규제 완화정책과 그 사상적·이론적 배경인 시카고학파류의 시장근본주의다. 스티글리츠는 공화당 조지 부시 정권이 촉발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확연해진 미국 경제 실패의 주범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화에 집약돼 있는 시장근본주의와 금융규제 완화, 그것을 극단적인 사익 추구에 활용한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라 지목한다. “위기를 불러온 주범들의 긴 명단에서 맨 밑에 있는 모기지 대출업체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다. 모기지 업체들은 수백만명에게 별난 모기지 상품들을 안겼다. 많은 이들이 어떤 상품인지도 모르고 거래했다. 하지만 은행과 신용평가회사들의 도움과 꼬드김이 없었다면 모기지 업체들이 이런 해악을 끼칠 순 없었을 것이다. 은행들은 모기지를 사서 다시 포장한 뒤 조심성 없는 투자자들에게 되팔았다. 그들은 리스크 관리수단이라 선전했지만, 실은 너무나 위험해서 미국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협적인 신상품을 만들어냈다.” 나중에 도저히 그냥 망하게 놔둘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거대 금융회사들은 비우량 담보대출물을 증권화해서 리스크 완화 명목으로 온갖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뿌렸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말렸어야 할 미국 신용평가회사들도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그 범죄행위에 적극 가담했다. 끝없는 집값 상승으로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각 속에 미국인들은 저축을 능가하는 과소비로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6~7%에 상당하는 천문학적 차입금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지속불가능한 대형 거품을 만들었다. ‘작은 정부’ 구호 속에 정부는 그것을 방관 또는 조장했다. 결국 전세계 수백만, 수천만명이 집을 잃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위기 속에 자신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로워진 주범들은 그 상황에서도 긴급 구제금으로 투입된 납세자들 돈 수백억달러를 자신들 보너스와 주주 배당금으로 나눠 챙겼다.
스티글리츠는 이런 범죄행위를 몇몇 썩어빠진 개인들 탓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부시 정권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화를 부른 저금리 등 금융완화정책을, 클린턴 정권의 ‘신경제’ 정보기술(IT) 붐 붕괴 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의도된 거품기획으로 파악한다.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헨리 폴슨, 현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루빈의 수제자라 할 래리 서머스 국가경제위 위원장,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과 벤 버냉키 현 의장 등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정가를 오가는 회전문 인사 출신 갑부들은 거품 관리자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들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고, 시장근본주의 이념도 요지부동이었다. 스티글리츠가 오바마의 정책을 임기응변식이라 나무라며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한 것은 경제지표만을 보고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미국과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은 금융시스템의 작은 조정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시스템을 연결하는 배관에 조그만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파이프는 막혀버렸다. 우리는 애초 배관을 맡았던 바로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왔다.” 지금의 혼란을 불러일으킨 자들이 바로 그들인데도, 사람들은 그들만이 파이프를 고칠 방법을 알 것이므로 배관작업 대가로 그들이 어떤 바가지를 씌우든 시스템이 다시 돌아기만 하면 군말 없이 요금을 내려 할 것이라고 스티글리츠는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배관문제가 아니다. 우리 금융시스템의 실패는 우리 경제체제의 광범위한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10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드문 일이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며 책임을 벗어던진 자들이 기존 틀 내에서의 미세조정만 하면 만사 잘될 그런 차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시장만능을 비판해온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자체를 바꾸고 사람과 이념도 바꾸자고 말한다. 실패를 부른 정치 세력을 문제삼고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했다. 적절한 정부 개입과 확고한 금융규제를 통한 공정한 게임 룰을 새로 만들자는 얘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금융 본연의 기능 되찾기엔 너무 허술하다” 스티글리츠가 본 ‘오바마 금융개혁법’
“내가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강력한 것이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 개혁안은 위기가 되풀이되는 걸 막거나 금융시장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다시 수행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약하다.” 그럼에도 이만큼이라도 이뤄진 건 골드만삭스 덕분이라고 스티글리츠는 말했다. 골드만삭스 수장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금융위기에 은행가들이 책임질 일 한 적 없다고 해 시민적 공분을 샀고, 그 덕에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도드-프랭크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7월21일 서명한 이 법에 대해 금융업체들은 규제조항들의 이행 강도를 약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됐다. 스티글리츠는 이 법의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하고 논평했다. 발췌 요약한다.
1.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위원회를 만든다. 독립적이고 강력한(것으로 기대되는) 위원회(금융소비자보호국)가 금융산업에 널리 퍼져 있는 광포한 악행들로부터 미국의 보통사람들을 보호한다. 이는 금융계의 잘못을 비판해온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승리였고 은행들에겐 큰 패배였다. 그러나 금융계는 모기지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대출 형태인 자동차 판매 관련 대출에 대해서는 엄청난 규제 면제를 받았다.
2. 금융시스템 전체를 보는 규제기구를 둔다. 이 기구는 협의회 형태지만 주된 권한은 연준에 정책권고를 하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닥칠 때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연준은 은행계와 밀착해 그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3. 지나친 리스크 감수를 억제한다. 1999년까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을 분리했던 글래스-스티걸법의 부분적인 부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상업은행들이 자기자본을 갖고 하는 투기거래를 제한해야 한다는 ‘볼커 룰’의 약화된 내용. 자기매매를 제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에는 적용될 것 같지 않다. 지나친 리스크를 안도록 유인하는 보너스 체계에 대해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4. 파생금융상품을 억제한다. 이제까지처럼 정부가 사실상 보조금을 주며 장려해온 데 대한 규제. 하지만 약간의 진전에 그쳤다. 그 이유는 이 부문에서 한 해 200억달러 이상을 수수료로 벌어들이는 몇몇 대형은행들이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들은 파생상품 사업부문의 대부분(약 70%)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거래 표준화와 전자시스템 도입으로 파생금융상품 거래의 투명성은 상당히 개선됐으나, 스와프상품 매매와 청산이 거래소에서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규제당국이 불법거래를 단속할 명확한 법적 권한이 없다.
5. 부실은행을 정리할 권한을 명확히 한다. 정부는 실패한 은행들에 대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게 됐다. 그러나 법은 무너지도록 그냥 두기엔 너무 큰 대마불사형 대형 금융기관들의 근본적 문제를 적절히 다루지 않았고, 따라서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대마불사형 기관들의 우위는 효율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장차 정부 구제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암묵적인 보조금 때문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
기사등록 : 2010-10-22 오후 05:43:44 ![]() |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