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틱 정치 읽기

말레이 곰은 왜 탈출을 했는가?

시놉티콘 2010. 12. 15. 17:38

 

 

말레이 곰은 왜 탈출을 했는가?

작성: Young Sun Yoon 2010년 12월 15일 수요일 오후 5:25

 

차이가 사라진 민주주의, 자본의 이중성에 희롱당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기억력은=1주일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며칠 전, MBC 뉴스 보도의 최일구 앵커가 울타리를 탈출한 ‘말레이 곰’에 대해서 “도망다니지 말레이” 라는 촌철살인적(?) 멘트를 날렸습니다. 네티즌은 열광했고 그 발언의 파장은 다음날 포털을 지배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고양이에게 잔혹한 행위를 한 네티즌과 고양이 가죽으로 코트를 만들어 판 쇼핑몰이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너무한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죠.

 

말레이 곰은 왜 울타리를 벗어나서 ‘따가운 충고’를 들어야만 했을까요? 인간이 만든 ‘인간의 울타리(감옥)’가 일탈의 구성원을 강제하는 행위보다 더 잔혹한 것이 야생동물을 ‘인간의 울타리(동물원)’에 가두는 것입니다. 그러한 ‘잔혹한 행위’에 대한 말레이 곰의 탈출은 정당화 되어야 하며 용인되어야 합니다. 최일구 앵커의 말레이 곰에 대한 충고(도망다니지 말레이)의 한계점은 왜 인간의 시각으로 말레이 곰을 바라봐야 했냐는 겁니다. 단지 숲이 그리웠던 말레이 곰에게 던지는 점잖은 충고가 고작 “도망다니지 말레이”입니까?

 

‘촌철살인’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보다는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한 분노와 공분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간중심의 사회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시기에 고양이에 대한 잔혹행위가 지탄받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도망다니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과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위에 분노하는 것의 간극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스펙트럼이 넓다’고 치부해도 될까요?

 

 

‘통큰치킨의 장례식’에 대한 아쉬움과 자본의 이중성

 

야생곰이 탈출한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또 다른 이슈는 ‘통큰치킨’과 ‘예산안 처리의 폭력성’입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의 침투는 빠르고 교묘합니다. ‘이마트피자’가 그렇고 ‘통큰치킨’이 그렇습니다. 거대 자본에 약탈당하는 소규모 자본의 절규는 어느 사이에 ‘더 싼 치킨을 먹게 해달라’는 네티즌의 절규로 바뀌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통닭’은 소규모 자영업의 상징과 같은 영역입니다.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새롭게 자영업을 시작하는 소규모, 소시민의 ‘먹고 살기위한 교두보’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하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퇴직자’가 프랜차이즈라는 가맹점의 조력을 믿고 창업을 결행하는 ‘최후의 탈출구’입니다. 프랜차이즈 본점의 횡포와 비싼 치킨과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가맹점의 횡포가 ‘비싼 치킨’에 책임이 있다면 분명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대 자본에 대한 소규모 자본의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다’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의 간극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부자가 되겠다는 소망. 거대자본을 비판하면서 거대자본이 되겠다는 욕망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하기에 거대자본의 약탈에는 침묵하면서 더 싼 치킨을 요구하는 이중성이 확보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한국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자본에 대한) 속성이라면 한국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약자의 눈물을 먹고 성장하는 자본’의 속성을 망각하는 사회구조가 두렵습니다.

 

 

의회주의를 무시하고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는 일방향적 폭력에 저항합니다.

 

 

‘차이의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편향된 민주주의입니다. ‘형님 예산’이 등장하고 ‘영부인 예산’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산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더 큰 힘으로 때리고 짓밟아버리는 행위까지를 용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저항합니다. 그러한 폭력에 대통령이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그들에게 분노합니다.

 

무엇이 민주주의입니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정말 대단합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의 기억력은 일주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주일만 넘기면 살아남는 자들은 결국, 힘 있고 돈 있는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붕괴되는 그 날을 꿈꾸는 오늘, ‘여의도는 얼어붙었고’ 현실은 너무나도 추운 겨울입니다. 말레이 곰이 탈출하고자 했던 그 곳 또한 ‘얼어붙은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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