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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겨울호 특집-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화와 대중

시놉티콘 2010. 12. 16. 14:21

 

 

“확장된 착취에 맞서 ‘마음의 정치학’ 고민해야”
‘문화/과학’ 겨울호 특집-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화와 대중
한겨레 최원형 기자기자블로그
» 왼쪽부터 조정환, 심광현.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3번에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 스스로의 변화의 일치를 강조했다. 곧 인간 스스로 변화하는 ‘주체형성의 변혁’ 없이는 인간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생산양식의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적 불의가 일어나도 다수의 대중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현상들 앞에서, 이런 지적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조정환
영혼 파고든 인지자본주의 분석
“착취지형의 변화 꼭 고려해야”

 

심광현
마음과 몸·환경은 ‘구조적 짝패’
‘교감 정치’로 주체형성 모색해야

 

계간지 <문화/과학>은 최근 펴낸 겨울호에서 ‘마음의 정치학’을 특집 주제로 다뤘다. 그동안 진보적 학자들이 사회의 구조나 제도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담론을 펼쳐왔지만, 사회 변화의 전제조건이 될 대중의 마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했다는 성찰에 따른 시도다. 여기에서 다루는 마음은 개개인의 종교적 피안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루는 대중의 ‘집단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자율주의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히는 조정환씨는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화와 착취의 문제>라는 글에서 마음, 영혼과 같은 비물질 영역으로까지 착취의 범위를 넓혀 온 자본주의의 현재적 상황을 분석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전 자본주의에 견줘 매우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파악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사회적 노동력뿐만 아니라 생물, 생태체계 전체를 대상으로 착취의 범위를 넓혀왔다. 특히 영혼과 감정을 소비하는 비물질노동, 곧 ‘인지노동’을 주요 착취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자본주의는 물질노동을 착취했던 기존 산업자본주의와 구별된다고 본다. 비행기 승무원은 자신의 정신과 기분을 조절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간호사는 모니터에 나타나는 정보를 머릿속으로 처리하며 환자를 돌보는 등 감정, 지식, 정보 등을 노동력으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이뤄진 인지자본주의는 기존 자본주의 노동과정 바깥에 있던 예술, 친교, 교육, 연구, 봉사, 정치 등 온갖 활동들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끌고 들어온다. 네그리와 하트의 이론을 보면, “자본주의적 생산주체와 생산관계의 생산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 편재된, 삶 자체를 착취 대상으로 삼는 ‘삶정치적’ 생산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씨는 “착취지형의 이런 변화는 새로운 사유나 운동이 유효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실천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 ‘문화/과학’ 겨울호 특집-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화와 대중
그렇다면 이런 생산양식의 변화에 대응해 주체, 곧 대중은 스스로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하는가?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 문화과학자들은 마음의 작동 원리를 알기 위해 인지과학, 특히 ‘오토포이에시스 이론’(자기-조직화 이론)으로 대표되는 제3세대 인지과학과 손을 잡는다.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가 처음 내놓은 이 이론은, ‘개별 세포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창조한다’는 혁신적인 발견으로 주목을 끌었다. 곧 생명의 본질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변화를 꾀하는 작동 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가 이 이론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구조적 짝패 구성’이다. 마음과 몸,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은 애초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서로 짝을 이뤄서 작동하는 시스템인데, 그동안 주체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들은 이러한 체계를 보지 못하고 몸과 마음, 환경을 분절적인 관계로만 인식해왔다는 지적이다.

 

그는 “개인은 사회시스템의 부분집합으로서 사회적 관계에 의해 타율적으로 구속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 개인 자체가 고도로 복잡화된 역동적 오토포이에시스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회시스템을 변혁할 창조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몸-마음-환경이 짝패를 이뤄 작동하는 회로를 분석해, 여기에서부터 사회변혁을 주도할 주체형성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강조한 ‘감정이입의 정치학’의 중요성을 말한다. 레이코프는 권위와 규율, 복종의 정치학이라 할 수 있는 보수주의에 대응해, 감정을 정치적 설득의 중심에 놓는 새로운 진보적 사유를 주창했다. 그는 ‘거울뉴런’의 발견을 통해, 감정이입의 체계가 이미 인간에게 체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런 감정이입의 능력 없이 이성만을 붙들고 있으면, 궁극적으로 합리성 역시 찾을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대해 심 교수는 유기체와 환경이 짝패를 이루는 생명 구성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너와 나의 교감’이 “희망의 감정을 집단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민중의 집’과 같은 지역 기반의 자율적 공동체 운동, 생활협동조합의 혁신 운동 등도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기사등록 : 2010-12-16 오전 08:29:25 기사수정 : 2010-12-16 오후 02: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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