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 발전 사전
발전? 평등? 그거 다 사기일지 몰라 | |
서구화 모델에 ‘점령’당한 이후 미국의 ‘주변’으로 몰락한 세계 환경·참여 등 절대선으로 여긴 긍정적 단어 속 ‘신화’ 깨부수기 | |
![]() |
![]() ![]() |
반자본 발전 사전
볼프강 작스 외 지음·이희재 옮김/아카이브·3만2000원
“빈곤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풍요를 만들고, 빈곤층의 굴욕은 부유층의 자부심을 낳고, 빈곤층의 의존성은 부유층의 자립성을 낳는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반자본 발전 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셋째 항목 ‘평등’을 집필한 더글러스 러미스(74)의 얘기다. 빈곤과 풍요, 독립과 종속, 평등과 불평등은 각기 독립적인 게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인과관계 또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난은 그 홀로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타인 몫을 앗아가거나 독점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누구도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만족했으나 부자라는 이질적 존재가 나타난 순간 가난이 만들어지고 의식되고 불행해졌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다른 누구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등과 불평등, 독립과 종속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쓴 러미스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간에도 그런 관계가 성립한다고 얘기한다.
종속이론가 안드레 군더 프랭크의 <저개발의 개발>이 그랬거니와, 저개발은 본래부터 저개발이었던 게 아니라 개발이 있고 나서 비로소 저개발이 됐거나, 개발 때문에 저개발이 한층 더 저개발이 되는 저개발의 심화 현상이 일어난다. <반자본 발전 사전> 첫 항목 ‘발전’은 1949년 1월20일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취임사 인용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과학 진보와 산업 발달의 수혜가 저발전 지역의 향상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고 과감한 사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 우리가 구상하는 것은 공정한 민주적 거래에 토대를 둔 발전 사업입니다.”
집필자 구스타보 에스테바는 그날 세계는 ‘발전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날 “저발전이 시작됐다”고 썼다. “그날 세계 20억 인구는 저발전인이 되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때부터 사람들은 온갖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남들의 현실로 자기를 비추는 뒤집힌 거울로 일그러졌다. 자기들을 왜소하게 만들어 긴 줄의 꽁무니로 보내버리는 거울, 실제로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복수로서 존재하는 정체성을 그저 동질적이고 협소한 소수의 정체성으로 옹색하게 규정하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트루먼이 말한 ‘발전사업’이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진화의 사다리 맨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 미국이 자국에 유리한 세계질서, 말하자면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의 반공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내놓은 대규모 원조사업이었다. 이 책 서문을 쓴 볼프강 작스는 그 결과 1960년에는 잘사는 북반구 나라들이 못사는 남반구 나라들보다 20배 더 잘 살았는데 1980년에는 그 격차가 46배로 벌어졌고, 각자 고유한 가치와 문화를 향유하던 사회들은 모자라는 사회로 전락하고 세계는 서구화·미국화 일색으로 치닫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총생산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서구산업문명이 고안해낸 일률적 잣대에 따라 나라들 순위가 정해지면서 다양한 가치를 향유하던 멀쩡하던 나라들이 무더기로 어느날부턴가 ‘저발전’의 못살고 못난 나라가 됐다. 그 순위의 포로가 되면서 모두들 순위의 사다리를 먼저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경쟁의 광풍이 몰아쳤다. 극소수 꼭대기만 배를 불리고 대다수가 패배자가 되는 한국의 학교·학벌 서열화를 빼닮았다. 지난 반세기의 세계가 그랬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저발전의 발전이요, 프랭크식으로 말하면 저개발의 개발이다. 개발이나 발전이나 모두 영어 디벨로프먼트를 옮긴 것인데, 옮긴이는 개발이란 말은 이미 긍정적인 의미를 잃은 것이어서, 굳이 한국사람들이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개발보다 외연이 더 큰 발전으로 옮겼다고 했다. 흔히 좋게들 생각하는 단어들이 실상 얼마나 위험한 뜻을 담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발전(성장)을 고발하기 위해 끌어온 ‘환경’이란 말도 서구적 기준의 빈곤을 없애려면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일반화하면서 성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자기파괴적인 함의를 갖게 됐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간 평등이란 말도 결국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자급자족하며 유유자적 마음 편히 살아가던 사모아의 어부는 서구적 국민(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따지면 졸지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돼버리고, 카라카스 빈민촌의 빈사상태 실직 노동자는 사모아 어부들에 비하면 갑부가 돼버리는 ‘생활수준’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반자본 발전 사전>은 이들과 함께 시장, 생산, 도움, 요구,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한 세계,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등 절대선으로 믿어왔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총 19가지 개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뒤흔들어놓는 비판적 개념사전이다. 서구문명 비판론자 이반 일리치를 중심으로 1988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1992년에 초판을 마무리한 이 책은 딱딱한 개념어 풀이 사전이 아니다. 성장이 곧 발전인가? 진보는 늘 정의로운가? 언젠가는 정말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게 될까? 그리고 지금 방식의 서구문명은 존속 가능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생태학자들이 그 핵심 개념어를 중심으로 사회적·철학적·역사적 맥락까지 짚어가며 답해 놓은 에세이 모음이다.
2009년판 서문에서 볼프강 작스는 전세계가 추종해온 서구문명 모델은 지구와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서구 모델로는 빈국들이 부국의 평균소득 수준을 따라잡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계산도 나와 있다. 서구 모델은 끊임없이 저변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희생자들이 계속 유입돼야만 지속가능한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판매와 유사하다.
집필자들은 서구 문명 모델의 폐기를 주장한다. ‘공생의 빈곤’ ‘자발적 빈곤’ ‘도덕적 빈곤’을 감수하는 안빈낙도의 소농적 자급자족 생태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근본적인 사고전환·사고훈련용 문제제기라고 해야 할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기사등록 : 2010-12-17 오후 08:35:35 ![]() |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