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생활을 뒤흔든 ‘스마트 중독’ | |
스마트폰·SNS 함께 가세 가전기기도 ‘스마트’ 대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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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① 스마트 혁명, 삶의 혁명
2010년은 지난 세기 익숙했던 지구촌의 질서 및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사건과 조짐이 본격화한 해였다. 중국 굴기와 환율전쟁이 보여주는 헤게모니의 혼란, 스마트혁명과 위키리크스가 상징한 사이버공간의 문제, 유럽 선진국들의 재정적자와 시위가 던진 복지의 미래는 일회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년간 전세계인들이 끌어안고 모색해나가야 하는 화두다.
영국의 팀 버너스리와 벨기에의 로베르 카요가 월드와이드웹(www)을 탄생시킨 1990년 12월25일 이래, 꼭 20년이 지난 올해 말 인터넷 이용자는 20억명이 됐다. 인터넷은 이제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아우르는 거대제국이 됐다. 10억에서 20억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불과 5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혁명’이란 말들이 넘쳐난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이 ‘인터넷혁명’의 시대였다면, 다가오는 10년은 ‘스마트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드디어 2010년, 지구촌은 트위터·구글·애플(아이폰)·페이스북이 몰고 온 ‘TGIF’(머리글자를 딴 말) 돌풍으로 스마트혁명 원년을 맞았다. 이들이 ‘힘을 합쳐’ 몰고 온 변화의 속도와 폭은 인터넷에 비해 더 빠르고 더 크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2010년 3분기 전세계에서 팔린 휴대전화 5대 가운데 1대는 스마트폰이었다. 피시와 달리 스마트폰은 어디나 사용자와 함께 가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통합시키고 있다. 이승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5~6년 안에 세계에서 10억대가 넘는 스마트 단말기가 보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영리한 스마트폰도 피시를 대체하기엔 작다. 그 간극을 메워준 것이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이다. 지난 4월 출시한 아이패드는 첫 분기에만 450만대의 판매를 기록했다. 미국 <시엔비시>(CNBC)의 존 멀로이는 “디브이디 플레이어는 첫해에 불과 35만대가 팔렸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시엔엔>(CNN)은 지난 17일 ‘아이패드는 2010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기사에서 애플이 아이패드 출시 한달 뒤인 5월 마이크로소프트를 누르고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대 기업이 된 점을 상기시켰다. 아이패드의 올해 판매량은 1330만대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같은 플랫폼의 확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확산과 어우러졌다. 이달 초 트위터는 전체 등록자가 1억7500만명이라고 밝혔다. 올해 전송된 ‘트위트’는 250억건을 넘어섰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이미 7월에 5억명을 돌파해 12월 현재 6억명이다. 매일 10억개의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다. 페이스북은 전세계 인구의 약 10분의 1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결합체이자 지구상에서 세번째로 큰 조직이 됐다. 26살의 페이스북 창설자 마크 저커버그는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됐다. 스마트폰에서 태블릿을 통해 피시로 확산된 ‘스마트화’는 전자책을 비롯해 모든 정보통신 기기로 확대되고 있으며 티브이 등 가전까지 넘보고 있다.
스마트혁명이 몰고 온 ‘스마트워크’는 사람들의 노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만남과 사귐의 인간관계마저 네트워크의 틀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사무실이 필요없는 일터와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은 사람들의 여가와 생활패턴,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이다. 인터넷시대의 네티즌은 이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앱을 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기반한 ‘1인 미디어’의 발신자인 ‘앱티즌’으로 진화했다. 이 와중에 신문·방송·출판 등 올드미디어는 설 자리가 없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 인터넷판은 지난 10일 한 조사를 인용해 “아이패드 사용자의 58%가 조만간 신문 구독을 중단할 의사를 보였다”고 전했다. 종이책과 출판사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미디어 황제인 뉴스코프의 최고경영자 루퍼트 머독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패드는 뉴스미디어 부문의 판을 새로 짜게 만드는 ‘게임 체인저’다.
소셜미디어 전도사로 불리는 미국 뉴욕대학의 클레이 셔키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정보 제공자(취재원)-정보 생산자(언론)-정보 소비자(독자·시청자) 간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고 말한다. 독자와 시청자가 굳이 언론이란 매개 없이 정보 제공자와 직접 소통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생산과 유통 구조의 민주화’가 권력 분산과 다원화라는 대변혁을 몰고 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
기사등록 : 2010-12-22 오전 08:36: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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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과시 중국, 패권경쟁 ‘무한도전’ | |
센카쿠사태 등서 ‘힘의 외교’ 펼치며 자국 이익 고집 ‘아태 안보 결정권’ 쥔 미국과 충돌·공존 전망 갈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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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7월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아세안 (ASEAN) 회원국들 앞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올들어 중국이 ‘남중국해는 중국의 핵심이익 사안’이라고 주장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아세안 국가들도 난사군도(스프래틀리군도)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강압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성토했다. 당시 분노한 양제츠 장관은 “당신들의 경제적 번영이 얼마나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 9월7일 중국 남서부 푸젠성에서 출발한 어선 민진위 5179호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해상에서 일본 해경 순시선에 붙잡혔다. 일본은 이 어선이 일본 영해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다 이를 적발한 순시선을 들이받고 도주하려 했다며, 선장 잔치슝을 일본 국내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일본과의 고위급 대화를 전면 단절하고,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중단했으며, 군사시설에 무단침입한 혐의로 일본인 4명을 구속하며 강력하게 대응했다. 9월24일 일본은 잔치슝의 석방을 발표해 ‘항복’했다.
올 한해 ‘중국 굴기(중국이 강대국으로 일어서다)’의 강력한 지각변동이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올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힘의 외교’ 파장을 가장 강하게 감지했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위협론’이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미국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러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월24일 뉴욕에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과 만나 “미국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이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으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사건들은 ‘쇠퇴하는 제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의 경쟁이 21세기 전반부 수십년 동안 세계를 뒤흔들 것임을 예고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달초 중국의 부상을 춘추시대 말기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에 비유했다. 숙적인 오왕 부차에게 포로로 붙잡힌 구천은 굴욕을 견디고 와신상담하며 몰래 실력을 쌓는다. 부차가 초심을 잃고 흥청망청하는 틈을 타 복수에 나서 결국은 부차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코노미스트>는 1978년 이후 30년 동안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를 외교원칙으로 삼아 항상 평화를 얘기하며 경제성장에 힘을 집중해온 중국을 월왕 구천의 ‘와신상당’에 비유한다. 이제 중국은 힘을 길러 부상했다.그렇다면 부상한 중국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나설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이어질까?
일부에선 중국은 현재의 세계화와 무역구조에서 너무 큰 이익을 얻는 수혜자이기 때문에 이 질서에 도전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기존 서구 중심 국제기구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식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경제적 의존만으론 평화적 공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밀접했던 영국과 독일도 결국 세계 1차대전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중미 화해의 설계자였던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은 지난 9월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회의에서 “중국을 세계질서 안으로 끌어드리는 것은 1세기 전 독일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도 어렵다 ”며 “미국과 중국의 디엔에이(DNA)가 적대관계를 확대시키고 있으며, 양국 모두 동등하게 협력하는 경험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지난 10~11일 베이징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질서와 중미관계’ 국제포럼에서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현재 아시아·태평양지역 정세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일체화와 (미국 중심의) 지정학적 정치가 서로 분리된 상태”라며 “중국이 경제적인 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안보문제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일’의 군사·안보 밀착은 중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주펑 베이징대 교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의 조지 워싱턴호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온 것은 중국의 경계감을 높였다”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정세에 큰 변화가 나타나려하고 있으며, 미-중은 평화와 안정을 확실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는 “낡은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변하고 있다”며 “앞으로 아시아에서는 안보 등에서는 (미국식) 구질서가 유지될 것이고, 중미 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붕괴하거나 아시아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서로 끊임없이 가격을 맞추고 거래하는 중미관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
기사등록 : 2010-12-23 오전 08:1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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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잃어버린 ‘유럽의 앞날’ 새길 찾을까 | |
“긴축 도 넘었다” 시위 물결…낮은 성장률에 내년 더 불안 “연금이 아니라 실업이 문제” 복지후퇴 넘어선 대안 논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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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① 스마트 혁명, 삶의 혁명 ☞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③ 유럽 연금 시위, 미래의 불안
“노동권이 탄압받고 있다. 모든 그리스인이 일어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투쟁이다.”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시위행렬에 있던 50대 여성 변호사는 이렇게 외쳤다. 이날 그리스 양대 노조연맹의 총파업으로 항공 운항과 대중교통이 마비됐고 학교와 은행,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그리스 의회가 전날 공기업 임금 삭감, 노조의 임단협 제약을 뼈대로 한 긴축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자, 격분한 시민들은 “우리를 노예로 살게 하지 말라”며 재무부 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 지난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총파업 시위에 참가한 50대 시민은 <에이피>(AP) 통신에 “사람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맞서 자기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비 인상 반대 시위에 참가한 영국의 대학생은 “교육은 부잣집 아이들의 게임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는 지난 10월부터 한달간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온 나라가 마비됐고, 영국과 이탈리아는 정부의 교육보조금 삭감과 학비 인상에 대한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12월. 유럽은 어느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올 한해 내내 유럽을 심각한 재정위기와 초긴축정책 때문이다. 거리엔 캐럴 대신 격렬한 구호가, 쇼핑객 대신 성난 시위대가 출렁인다.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덴마크, 체코…. 시위의 물결은 직업과 계층,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자부심은 망가지고, 팍팍한 생활에 대한 분노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다.
긴축재정은 필연적으로 복지의 대폭 축소와 극심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예고한다. 더 큰 문제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란 희망마저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11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유럽은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수준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조차 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최근 “위기는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스태그네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률 저하에 따른 인구 고령화도 큰 부담이다. 현재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65살 이상 인구는 19.1%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그러나 이미 지난 2008년 인구전망 보고서에서, 이 비율이 2035년에 25.4%, 2060년에는 30.0%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나머지를 먹여살리는 부양의존도가 2008년 25.4%에서 2060녀엔 53.5%에 이를 전망이다.
이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경제선진국뿐 아니라 신흥산업국들에게도 곧 다가올 미래이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 몇십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얼슨은 “혜택의 시대가 저물고, 긴축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긴축이 경제와 정치를 바꿔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는 ‘재정긴축’과 ‘경기부양’이라는 상반된 정책이 동시에 필요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유럽은 ‘긴축’, 미국은 ‘부양’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럽에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긴축을 주도한 빅3의 우파정부가 야당과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공화당의 ‘부자 감세안’까지 수용했다가 안집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샀다. 경제 위기가 리더십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흔들리는 유럽식 복지시스템의 미래는 무엇일까?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정치분석가 도미니크 무아시는 지난 7월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에 “유럽 복지시스템이 유럽 정체성의 중요 요소이고, 적어도 사회적·인간적 측면에서 상당한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것 같은 경제위기국면에서 유럽인을 보호해주는 완충지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은 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 지출을 하면서도 선진국 중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기존 유럽 복지시스템의 강점을 강조한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는, 파이를 먼저 키우면 그 부가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럽 복지시스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의 대안경제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의 필리프 프레모 논설위원과 티에리 페슈 편집국장은 “프랑스식 사회보장 모델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낸 분야는 퇴직연금이 아니라 고용과 실업”이라며 복지 모델의 적극적 전환을 제안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월간 <이코노미 인사이트>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복지국가는 실업 발생 뒤 대체소득을 제공하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사전에 개인의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며 “이때 복지비용은 미래의 실업급여를 절약하는 방편이자, 일종의 사회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유럽은 지금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신념 체계가 충돌하는 한 가운데에서, 기존 복지국가 체제와 영미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기사등록 : 2010-12-24 오전 08:23: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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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2 ‘환율 힘겨루기’ 봉합…재점화 불씨 여전 | |
미·중 주전선 형성…각나라 경쟁적 통화절하 “경제적 악영향 넘어 더 큰 위기 잉태” 경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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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① 스마트 혁명, 삶의 혁명 ☞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③ 유럽 연금 시위, 미래의 불안☞ ④환율전쟁, 통화질서의 균형
“네 이웃을 털어라.” 2008년 금융위기 발생 후 더딘 회복세를 보이던 세계경제는 올해 환율전쟁이라는 복병의 급습을 당했다. 근린궁핍화 정책으로도 불리는 경쟁적 통화절하의 도미노가 전쟁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자국 통화가치를 낮춰 수출을 늘리는 한편으로 수입을 억제해, 실업률을 낮추고 불황에서 탈출한다는 이 정책은 나만 살려고 이웃의 주머니를 터는 이기적 태도로 비난받아왔다. 하지만 불황의 꼬리를 물고 다시 찾아왔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지난 9월 “환율전쟁 시작”을 선언한 뒤 현상이 좀 더 분명해보였다. 위안화 가치를 두고 주전선을 형성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일본, 한국, 브라질, 타이 등도 통화절상을 막는 조처에 나서며 환율전쟁은 세계적 차원으로 비화하는 조짐을 보였다. 신흥국들 화폐가 몇달 만에 10% 안팎의 절상을 기록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불만도 나왔다. 중상주의가 자유무역을 짓누르면 모두가 패전국이 될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폭 흑자를 보는 중국에 대한 공격이 발화점인 환율전쟁의 이면에서는 또다른 노림수도 엿보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008년 10월 “한 나라(미국)가 지배하는 시대는 영원히 가버렸다”며, 금융위기가 미국의 유일 패권에 조종을 울렸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이런 상황인식 속에서 중국의 경제적 상승을 억누르려는 미국의 노력은 패권 유지를 위한 방책으로 비쳤다.
미국은 그러나 해법을 논의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직전 6000억달러(약 690조원) 규모의 ‘양적 완화’를 발표해 우군을 잃고 만다. 그 전까지 미국, 유럽, 일본이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듯했지만, 달러가치를 낮춰 무역 경쟁국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조처에 선진경제권 안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다. 중국은 버티기에 성공했고, 미국은 판정패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1985년 일본과 서독 통화를 대폭 절상시키는 데 성공한 플라자합의는 재연되지 않았다. G20 정상들은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 선언에 만족해야 했다.
환율전쟁이라는 말은 최근 쓰이는 빈도가 줄었지만 구속력있는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 언제든 재발하리라는 전망은 여전하다. 우선 미국의 쌍둥이(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워 중국의 양보로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밑에 있던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이나 서독과는 입장이 다르다. 그래도 파멸적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은 중국은 미국이 최대 수출시장이고, 미국은 중국이 최대 채권국이라 서로를 포로로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케빈 러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에게 “당신이라면 당신의 은행가(중국)를 어떻게 강하게 다루겠느냐”며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년간 세계시장에 싼 물건을 대량 공급한 중국과, 이를 게걸스럽게 소비하던 미국의 환율 갈등이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은 경제적 악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1930년대 금본위제 폐기로 통화질서가 무너지고, 이어 환율전쟁 결과로 대공황의 상처가 깊어진 것이 2차대전을 야기했다는 반성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을 교훈삼아 들어선 또다른 금본위제인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한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 통화질서는 새 대안을 못 찾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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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10-12-24 오후 08: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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