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심부름꾼
좌우두뇌 권력투쟁, 공감의 우뇌를 지지함 ! | |
이성적·합리적 서구문명은 ‘언어의 좌뇌’ 더 중시하지만 직관·소통 기술 지닌 우뇌가 두뇌를 지배하는 진짜 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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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심부름꾼>은 요사이 유행하는 ‘뇌 과학 책’의 흐름 안에 있지만, 그런 부류의 책들에 견줘 조금 색다르고 독특한 책이다. 우리 인간의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배신과 정복’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두뇌는 두 개의 반구로 분할돼 있다. 흔히 좌뇌, 우뇌로 불리는 좌반구, 우반구다. 요는, 두뇌 안에서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져 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의 오랜 전개 과정을 통해, 아니 그 인류의 조상 시절부터 말이다.
그러면 그 권력투쟁에서 누가 이겼나. 지은이가 보기에, 지금으로선 뇌의 좌반구, 곧 좌뇌가 승리한 상태다. ‘우뇌주의자’인 그가 보기에, 이 상황은 옳지 않다. 왜냐, 좌뇌는 뇌의 ‘심부름꾼’일 뿐이고 뇌의 진짜 ‘주인’은 우뇌이기 때문이다.
두뇌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과 만나는 장소”다. 각 반구는 몸의 대각선 방향, 반대쪽 부위를 통제하는 책임을 진다. 가령 우반구가 몸의 왼쪽(왼손·왼발 등등)을 통제하는 식이다. 기왕의 연구들은 언어가 좌우 반구의 주요 차이라고 생각했다. 좌반구의 임무가 ‘언어’인 반면, 우반구는 ‘침묵하는’ 두뇌로 여겨졌다. 지은이는 우뇌는 침묵의 반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반구가 삶에 약간의 색채를 더해주긴 해도, 진지한 일을 하는 건 좌반구라는 오랜 편견을 뒤집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신경과학의 성과를 발판 삼아 지은이가 추론하는 것은 ‘언어’와 ‘연속적 분석’을 예외로 한다면, 뇌에서 지배적인 반구는 좌반구가 아니라 우반구라는 것이다.
좌반구가 ‘무엇’(범주)의 반구라면, 우반구는 ‘어떻게’(육화)의 반구다. 우반구는 경험과 감정, 어감의 상대적 측면에 몰두하는 반구다. 두뇌의 ‘비교적 독립적인’ 두 덩어리인 좌·우 반구는 그 말 자체의 이분법처럼 추상화 대 육화, 범주 대 고유성, 일반 대 개별자, 부분 대 전체 등 인류 문명의 두 측면에 반영돼 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물론, 좌·우 반구가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며 뇌의 거의 모든 기능에 함께 참여하고 서로 돕고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좌반구가 주로 맡는 ‘언어’는 인간의 소통의 도구로서, ‘쥐기’(손으로 쥐는 행위)와 함께 인류 문명 그 자체를 낳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언어는 그에 앞선 소통의 도구인 음악에서 진화해 나왔으며, 언어의 조상인 음악이 대체로 우반구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성’과 ‘언어’가 인간존재를 동물과 구분짓는 특징이라는 고전적인 견해를 그는 인간존재의 고유성에 대한 변변찮은 답변으로 일축한다. “이성 및 언어와 관련된 추리능력은 다른 동물도 일부 갖고 있다.” 동물엔 없는 인간만의 특징은 공감하고, 유머를 사용하고, 아이러니를 활용하고, 나 자신을 소통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타자에게 다가가는 능력(혹은 수단)은 대부분 우반구, 곧 우반구가 팽창한 부분인 ‘우측 전두엽’의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 좌반구에 있는 정보은행 같은 것이 없으므로 추상과 추상에 의거한 지식 범주를 만들 수는 없지만, 우반구는 타인과의 소통, 관계를 위한 장소이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공감기술이 개발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760여쪽 길다란 이 책에서 두뇌구조와 좌·우 반구의 차이, 그 다른 구실과 특질을 탐색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런 차이를 통해 ‘인간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펴고 있다. 그 인간 세계는 일단, 지은이가 성장하여 살고 있는 ‘서구 문화, 서구 세계’로 한정할 수 있다. 그의 논지는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현실, 두 개의 상이한 경험양식이 있으며, 이 두 양식의 차이는 두 개의 반구로 이뤄진 두뇌구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최근 500년간 서구 문화와 역사의 많은 부분이 그 (두뇌 구조의) 작동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2010년 예일대출판부에서 펴낸 이 책의 지은이 이언 맥길크리스트는 신학과 철학, 문학을 전공하고 다시 의학과 뇌영상 연구를 거쳐 영국에서 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 이력이 보여주듯 책이 다루는 내용도 두뇌의 영역별 구실에 대한 탐색을 넘어, 신경학·심리학·철학·영장동물학·신화·역사·문화를 종횡하며 음악과 언어의 관계, (인간)세계의 구조로 퍼져 나간다. 세계의 구조는 두뇌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그의 논지는 최근 서구 역사에서 좌뇌가 우뇌에 대해 승리했듯이, 낭만주의(우뇌), 계몽주의(좌뇌)를 거치며 오늘날 서구 문명이 이성·합리성(좌뇌)이 직관·공감(우뇌)을 압도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이 주장은 뇌 연구 성과를 두루 섭렵한 흥미로운 것이지만, 하나의 가설이다. 지은이도 철학·예술 같은 고도의 인간 정신의 성과를 두뇌 구조에 결부시키는 자신의 견해가 일종의 환원주의로 비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견해가 ‘은유’에 그친다 해도 이 은유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면서, 근대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고전적 인물 괴테의 파우스트 대사를 인용하며 책을 맺는다. “두 개의 영혼이여, 아아! 내 가슴에 깃들라!”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기사등록 : 2011-01-14 오후 08:06: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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