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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_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시놉티콘 2011. 1. 17. 11:51

 

4만달러 미국, 2천달러 부탄보다 행복할까
GDP의 한계 ‘돈 24배 잘버는’ 미국이자살률은 부탄 2배 넘어
영국·캐나다 등 선진국GDP 대안지표 개발 활발
한겨레 황보연 기자기자블로그

 

 
» G20국가의 1인당 GDP 비교(※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3부 정책을 말하다-경제

 


②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4만7186달러 대 1933달러.’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한, 미국과 부탄의 각각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다.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히말라야 오지의 작은 불교 국가인 부탄에 비해 24배가량이나 많다. 그러나 두 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 비교에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미국 자살률은 10.1명(2005년 기준)인데 비해 부탄은 5명(2006년 기준)에 그친다. 미국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부탄에 견줘 두배 가량이나 많은 셈이다. 두 나라 가운데 국민들이 더 행복한 나라는 과연 어느 쪽일까.

 

■ GDP가 아닌 ‘삶의 질’로 미래 설계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잘 알려진 부탄은 일찌감치 국가지표로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채택한 나라다. 이웃 나라들이 빠른 속도로 국내총생산 규모를 늘려오는 동안에 이 나라는 심리적 웰빙과 건강, 생태계 보호 등을 중시해왔다. 예컨대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관광객의 입국을 해마다 수천명선으로 제한하는 식이다. 부탄은 지난 2006년 영국 레스터 대학의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작성한 ‘세계 행복지도’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을 제치고 10위권 안에 들었다.

 

각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 척도인 국내총생산에 대한 회의론은 이미 1970년대 이후 나오기 시작했다. 한 나라 경제주체들이 창출한 부가가치의 합을 뜻하는 국내총생산이 도마에 오른 것은, 국내총생산 규모와 국민들의 행복도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다. 1974년에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수십년간 늘었지만 국민들의 행복 수준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주장을 펴 주목받았다. 한 예로 연간 근로시간이 늘어나면 국내총생산 규모는 커지지만 국민 행복도는 크게 하락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교통체증이 극심해지면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키지만 국내총생산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 식이다.

 

이런 배경에서 국민 행복도와 삶의 질 수준을 측정하는 대안지표 개발 시도는 곳곳에서 이루어져왔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해마다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와 오스트레일리아, 아이슬란드 등이 상위권을 차지해온 이 지표는 건강한 장수(기대수명), 지식(교육기회 등), 적정한 삶의 수준 등을 잣대로 측정한다. 또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하는 행복지수(HPI)는 주관적 생활만족도, 기대여명, 생태흔적(에너지소비량 등) 등을 위주로 마련된 대안지표로, 이 조사에선 선진국들이 대체로 중하위권에 머무른다. 이밖에도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캐나다의 행복지수(CIW) 등이 국내총생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꼽힌다.

 

■ 고속 성장에 드리워진 그늘, 한국의 자화상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삶의 질 수준은 어떨까.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의 ‘웰빙과 사회진보 측정’ 워크숍에서 제안된 ‘국가행복지수’(NIW)를 바탕으로 각국의 행복 수준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25위에 머물렀다. 경제적 자원, 자립, 형평성, 건강, 사회적 연대, 환경, 주관적 생활만족도 등 7개 범주를 종합한 한국의 점수는 0.475점으로, 1위를 차지한 스위스(0.747점), 룩셈부르크(0.745점), 노르웨이(0.736점) 등과 격차가 컸다. 특히 아동빈곤율, 지니계수, 성별 임금격차 등의 지표를 보는 형평성(27위) 부문에서 점수가 낮았고, 생활만족도(26위)와 사회적 연대(26위, 자살률·범죄피해율 등) 등에서도 저조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펴낸 ‘2010년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빠른 경제성장으로 선진국과 경제적 격차를 줄였지만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사회복지 등에선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7~2009년 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3위인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0.4%)을 훨씬 웃돈다. 반면에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7.5%(2007년 기준)로 29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은 19.8%에 이른다. 연평균 근로시간은 2255.8시간(2009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고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28.4명(2009년)으로 가장 높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국민들의 삶의 질 수준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스트레스 대량 생산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성장 지상주의적 정책 방향을 넘어서 열악한 복지분야 등에 대한 투자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실질적 삶의 질·지속 가능성에 ‘방점’
생산보다 소득·소비 측정
건강·교육·불평등 등 따져
한겨레 박현 기자기자블로그
» 미국·프랑스의 1인당 GDP와 기대수명 차이
경제정책은 결국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게 최종 목표다. 후생을 높이려면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된다. 그래야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미식 시장주의의 쇠퇴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에선 새로운 진단의 잣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결실이 이른바 ‘스티글리츠 보고서’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 등이 포함된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측정 위원회’(CMEPSP)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1년 반에 걸친 작업 끝에 2009년 9월 ‘행복 GDP(국내총생산)’로 알려진 새 지표의 개념과 측정 방법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크게 기존 지디피 개념의 확장, 삶의 질의 구성 요소, 지속가능성 등 세가지 주제를 다뤘다.

보고서는 지디피가 경제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컴퓨터 같은 재화와 의료·교육·정보기술·금융 등 서비스가 질적으로 크게 개선됐는데, 이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육·의료·주거·여가 등에 대한 공공부문의 기여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물질적 생활수준은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 ‘부’(wealth)와 더 밀접하게 관련되는 만큼 순국민소득, 실질 가구소득·소비 등의 지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계층간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평균 가계 지표보다는 중위 가계, 상·하위 가계 같은 지표들이 현실을 더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삶의 질을 측정하려면 건강, 교육, 일상생활(일자리와 주거 포함), 정치적 참여, 사회적 관계, 개인적·경제적 안정 등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계층·성·세대·이민자 등 그룹별 불평등 정도도 측정해야 한다. 또 행복·만족·즐거움·자부심 같은 긍정적 감정과 고통·걱정 같은 부정적 감정 등 주관적 지표들도 중요하다. 이는 삶의 질의 결정요인들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속가능성은 현재 수준의 삶의 질이 미래 세대에게도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속가능성 지표를 경제성과 지표와 별도로 조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기사등록 : 2011-01-17 오전 08: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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