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urse & issue

[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2부 5) 위안화의 향방

시놉티콘 2011. 2. 10. 12:18

 

달러에 도전한 위안, 기축통화 향해 대장정
위안 무역결제 57조원…HSBC “3~5년안 50% 이를 듯”
맥도널드 등 위안채권 발행…자유거래·안정성 부족 한계
한겨레 이본영 기자기자블로그

 

 
»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중국의 노력으로 무역결제에서 위안화 사용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자료
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2부 : 중국을 흔드는 7가지 변화

⑤ 위안화의 향방

 

‘언론 기피형’으로 불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8일 미국 방문 직전 <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과 서면 인터뷰를 해, 의외라는 반응을 얻었다. 후 주석이 미국 언론과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한 사실만큼이나 주목을 끈 것은 그가 이 인터뷰에서 현재의 국제 통화시스템을 “과거의 산물”로 규정한 점이었다.

 

후 주석의 발언은 50여년 전 프랑스 재무장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달러 패권을 비난하며 내뱉은 “터무니없는 특권”보다 인상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국 최고지도자가 달러 지배 체제를 구질서로 치부해버린 이 발언은 앞으로도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이 2009년 3월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선전포고’를 한 이후 달러 패권을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는 이어져왔다.

 

중국의 도전은 말로 그치지 않는다. 달러와 위안의 전초전은 이미 시작됐다. 달러 중심의 질서에서 위기를 겪지 않으려고 2조8500억달러(약 3196조원)의 외환보유고를 쌓는 비용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중국은 위안을 중심 통화로 만드는 노력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우선 주변국 무역 결제에서 위안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은 2008년 12월 양대 수출품 제조 지대인 주장삼각주·창장삼각주와 홍콩·마카오 사이의 거래에서 위안 사용 방침을 밝혔다. 이는 이듬해 4월 시행에 들어가 5개 도시 365개 업체가 위안을 무역 결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에는 20개 성·시에서 위안으로 전세계 무역 결제를 가능하게 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 위안 결제 기업이 6만7359곳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단계적 확대책의 결과로 지난해 1~11월 위안 결제 규모는 3400억위안(약 57조원)에 이르렀다. 중국은 지난해 러시아와 양국 통화로 무역을 진행하자는 협약도 맺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현재 3% 정도에 불과한 중국 무역의 위안 결제 비중이 3~5년 안에 50%까지 올라간다고 전망했다.

위안의 결제통화 데뷔는 국제 금융시장에도 발을 들여놓는 발판이 됐다. 홍콩 외환시장에서는 지난해 위안 거래가 전면 허용됐다. 또 홍콩인들이 점심 때 전채로 먹는 만두 이름을 딴 ‘딤섬 본드’가 발행돼 인기를 끌었다. 위안 표시 채권을 뜻하는 딤섬 본드는 외국인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위안 국제화의 또다른 신호탄이 됐다. 미국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널드, 건설기계업체 캐터필러, 영국 석유업체 비피(BP)가 지난해 위안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세계은행도 지난달 5억위안 규모의 위안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딤섬 본드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 출시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딤섬 본드가 위안 국제화의 도정에서 “맛있는 전채”가 되고있다고 표현했다.

 

중국의 위안 띄우기에는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휘청거리는 달러의 약점을 파고들려는 노림수도 묻어난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안이 주변국 결제통화→지역통화→기축통화의 길을 밟으면, 2차대전 전후로 영국 파운드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었듯 달러는 금융위기로 왕좌를 내놨다는 평가가 훗날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국제문제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오로지 달러에만 기반한 통화시스템은 더욱 확장되고 통합된 세계경제에 들어맞지 않는다”며 변화의 필연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위안을 외환보유고에 넣는 움직임도 이미 일고 있다. 위안이 결제통화에서 준비통화로 한 단계 진화하는 조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안의 대관식은 언제쯤 열릴까?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따라잡을 20여년 뒤에는 위안과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분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자본시장 자유화에 속도를 내면, 갈수록 값어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위안의 수요가 늘어 그만큼 국제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의 도전도 꺾은 바 있는 달러가 자리를 호락호락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아직은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위안의 비중이 미미해 달러와의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중국의 경제와 무역 규모를 고려하면 더 보잘것없다. 기축통화의 핵심 조건인 자유거래와 안정성이 달러에 견줘 아직 크게 부족한 게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후 주석이 “위안을 국제통화로 만드는 것은 아주 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제3의 블록’ 중화경제권 가속화
관세철폐 등 주변국 경제통합
미국의 중 고립정책 대응 포석
한겨레 길윤형 기자기자블로그
» 중화경제권
지난 1월1일 좁은 해협을 사이에 끼고 대만과 마주하고 있는 중국 푸젠성의 해안도시 샤먼의 세관을 통해 2920달러어치 대만산 과일 4.08t이 수입됐다. 이 상품은 샤먼의 코앞에 붙은 대만의 부속 섬 진먼다오(금문도)산 원산지증명서(CO)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수입관세는 기존의 11~12%가 아닌 5%로 결정됐다. 거꾸로 대만으로 수출된 중국산 향 22.6t(1만7328달러)에도 5%가 아닌 2.5%의 수입관세가 적용됐다.

 

올 들어 중국과 대만은 서로 주고받는 수출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췄다. 지난해 6월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사이에 맺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을 체결한 결과다. 이 협정의 ‘조기수확프로그램’(EHP)에 따라, 중국은 대만에서 수입되는 농산품·기계·석유화학 등 539개 품목, 대만은 중국의 석유화학·기계 등 267개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올해부터 낮췄고, 2013년까지는 완전 철폐할 예정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역사 문화적으로 가까운 주변국들과 경제통합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른바 ‘중화경제권’의 등장이다. 중국은 ‘1국가 2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홍콩·마카오 등과 2003년 경제긴밀화협정(CEPA)을 체결한 데 이어, 2002~2007년에 걸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해 1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 아세안의 주요 6개국과 민감·초민감 상품을 제외한 7천여개 상품에 대한 관세를 완전 철폐했다. 관세가 철폐된 상품은 아세안의 경우 총수입액의 90%, 중국은 93%에 이른다. 중국과 아세안은 2015년까지 관세 철폐가 유예된 민감, 초민감 상품에 대한 관세도 없애나갈 방침이다. 여기에 지난해 6월 대만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하면서 중화경제권은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로써 완성된 중화경제권의 규모는 인구 19억6천만명, 역내 국내총생산(GDP)은 7조4천억달러에 이른다.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3번째 경제 블록이 된 셈이다.

 

중화경제권은 단순히 경제공동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중국의 관세 인하 품목이 대만보다 2배나 많은 데서 보듯 대만을 중화경제권이 끌어들이려는 중국의 세심한 정치적 배려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중화경제권은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에 대한 대응과 대만과의 통일 등 장기적인 고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화경제권의 등장은 중국과 미-일 사이에 낀 한국에도 많은 고민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정치사회적으로는 한·미·일 동맹으로 상징되는 해양세력권에 편입돼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대중국 교역액이 미국을 넘어서는 등 빠르게 대륙경제권에 통합되고 있다. 대만산 수출품의 관세가 인하되는 539개 품목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품과 일치하는 것은 대부분인 494개로 2009년 대중국 수출의 17.9%를 차지하고 있다.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길윤형 기자 charima@hani.co.kr

 

기사등록 : 2011-02-01 오후 07:49:31 기사수정 : 2011-02-01 오후 08:18:15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