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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와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

시놉티콘 2011. 2. 19. 15:35

 

 

기득권 향한 사이버 봉기 “싸움은 지금부터”
인터넷 주권·표현의 자유 둘러싼
주류세력과 ‘디지털 좌파’의 투쟁
언론·기업 앞세운 미국의 반격에
“정보전쟁은 시작됐다” 독립선언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등 지음·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이것은 단지 위키리크스와 미국 정부 차원에만 머무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매닝과 국가기밀 유출의 차원을 넘어서 위키리크스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터넷 주권의 미래가 달린 문제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것은 많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싸움이자 고전적 국민국가의 권력을 뒤흔드는 인프라를 둘러싼 21세기의 거대한 싸움이었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의 공저자인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는, 그것은 또한 인터넷에서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라고도 했다. “여기서는 두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 한편에는 정부, 형사소추기관, 기업 등이 지닌 기존의 권력구조가 있고, 또 한편에는 자신들을 디지털 엘리트이자 아방가르드라고 생각하는 활동가 집단이 있다. 그들은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전통적 권력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키리크스의 경우처럼 도전을 받았다고 느끼면 즉각 투쟁에 나섰고, 필요하면 불법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전투는 네트워크에서 누가 발언권을 갖고 누가 통제력을 손에 넣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요란하던 그 싸움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미국 국무부 비밀 외교전문 등 수십만건의 정부 문서들을 시디(CD)로 빼돌려 위키리크스에 넘긴 이라크 파병 미군 정보분석병 브래들리 매닝(24)은 지금 버지니아주 콴티코 교도소에 갇혀 있다. 개인 사물도 소지할 수 없는 독방에서 체조도 할 수 없고 낮잠도 금지된 그에겐 책과 잡지 한 권씩만 허용돼 있다. 면회조차 사슬에 묶여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해야 하는 그는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매닝한테서 받은 기밀문서들을 <가디언> <슈피겔> <뉴욕 타임스> <르몽드> <엘파이스> 등 유력 매체들과 합작해 폭로하고 위키리크스에 전재한 줄리언 어산지(40)는 요령부득의 스웨덴 여성들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가 조건부 보석으로 석방돼 런던 동북쪽 노퍽주의 지인 집에 전자발찌를 차고 매일 경찰에 연락을 해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하여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 현실 정치와 인터넷 속 도전자들 사이의 한판” 거대한 싸움은 권력 쪽의 승리로 끝난 듯이 보인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국가의 적’ ‘초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 주류사회는 사이버 세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정비하는 한편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집중 공격해 접속 불능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다. 서버를 임대해주고 있던 아마존도 정치적 압박 때문에 임대를 철회했다. 머니부커스와 스위스 우체국 자회사 포스트파이낸스 등이 위키리크스 계좌를 정지시켰고 지불서비스업체 페이팔도 협력 해지를 통보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 역시 위키리크스로 들어가는 돈의 송금업무를 중단했다. 이제 남은 자금조달원은 독일 헤센주 국스하겐의 비영리단체 ‘바우 홀란트 재단’ 하나뿐이다.

 

백악관은 정부 부처와 기관, 하원 도서관 컴퓨터의 위키리크스 및 폭로협력 매체 사이트 접속을 원천 차단했다. 위키리크스 활동 중에 ‘불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은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적 없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무죄추정주의를 적용하지 않겠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개인신상 정보와 외교관들 아이티(IT) 정보까지 수집하는 명백한 불법 ‘간첩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계좌는 왜 정지시키지 않고, 꼭같이 기밀문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들은 왜 그냥 두느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성 언론들은 위키리크스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새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는 권력의 김빼기 작전을 재빨리 수용하고 비아냥거렸으며, 미국 동맹국들 역시 워싱턴이 제시한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랐다. 친미로 올인한 한국 언론들한테서 예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서방의 대중매체와 정치권의 이런 굴종적인 자세를 두고, 지은이들은 만일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 때도 과연 그런 논조를 취할까 하고 되묻는다.

기성 매체들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위키리크스의 파격적인 도전이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자인 기성체제의 안전성을 깨뜨릴까 두려워 정부를 편드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산지는 이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최초의 진짜 정보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터는 위키리크스이고 당신들은 전투병력이다.” 디지털인권운동 ‘전자프런티어재단’ 공동설립자이자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 작성자인 존 페리 발로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탄압자 못지않게 저항자들도 나름 군대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 지지자와 팔로어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는 거대한 국제연대 물결이 일어나고 바우 홀란트 재단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부금이 몰려들었다.

 

베트남전 개입 구실을 조작한 정부 문서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는 공개적으로 “아마존의 비굴함에 구역질이 난다”며 아마존을 탈퇴했고 정부 조처를 수용한 다른 기업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불매운동도 거세졌다. 위키리크스의 ‘콘텐츠 미러링’ 호소에 발맞춰 불과 며칠 만에 세계 곳곳에 1200개 이상의 미러 서버가 생겨나기도 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 사이트가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다운되고, 공화당 리더 세라 페일린과, 어산지를 기소하려던 스웨덴 검찰청 사이트 등이 디지털 집중포격을 당했다. 사상 최대의 사이버 국제봉기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1970~80년대 좌파들이 벌이던 소요와 가두시위의 디지털 버전이자, 사이버 공간의의 분노한 활동가들이 내린 상징적인 처벌이었다.” 어산지 자신이 바로 전형적인 ‘68세대’였던 부모의 기질과 체험을 물려받았다.

 

어산지는 집단지성의 지원을 받는 인터넷 플랫폼 위키리크스가 기성 매체를 대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300달러짜리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전세계를 누빈 그의 꿈은 그러나 그 자신이 지목한 거대 매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비로소 일부나마 이룰 수 있었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이다. 그 개인 중심의 1인체제와 비공식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는 소리도 있다. ‘인격권’ ‘사생활 보호’에 대한 좀더 깊은 사색이 필요하며 과대망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반성의 소리도 있다.

그 한편에선 중국 인권운동가들이 ‘거번먼트리크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고 있고, 돔샤이트 베르크는 위키리크스 비판자들과 함께 ‘오픈리크스’를 만들고 있다. 발칸리크스, 인도리크스, 브뤼셀스리크스, 트레이드리크스 등 지역적 내용적으로 특화된 많은 대안들은 이미 떴다. 민주주의와 인터넷 주권의 미래는 이런 수천 수만의 위키리크스들이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인자’가 말하는 어산지의 실체
초기멤버 돔샤이트 베르크
폭로·결별과정 등 비판적 소개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한때 위키리크스 2인자로도 불리던 초창기 핵심멤버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줄리언 어산지와 결별한 뒤 쓴 책.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잘 아는 비판자의 시선으로 본,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위키리크스의 속내와 실체. 원래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일렉트로닉 데이터시스템(EDS) 독일지사에서 보안전문가·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 어산지와 의기투합해 이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의 토대를 구축해간다. 세상을 뒤흔든 비밀문서들의 입수와 사실 확인, 폭로 과정과 제보자(정보원)의 신변보장 방법 등이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돼 있다.

 

아울러 그들이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견해 차이와 결별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인 편집증이다. 극단적인 과대망상이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와의 결별 뒤에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한 세월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산지에 대해서도 부정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기밀문서 폭로를 이유로 그를 간첩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미국으로 송환하는 데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일련의 대형 폭로 작업을 통해 위키리크스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어산지의 존재감도 커가는데, 그 과정에서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독재자라고, 항상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고, 나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판하게 된다. 수학에 능한 해커 출신의 어산지는 뛰어난 머리를 지녔으나 대인관계는 원활하지 못했고, 조직을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위키리크스 운영전략을 두고서도 둘은 충돌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대형 폭로에만 몰두하면서 다른 많은 작은 프로젝트들을 소홀히 하는 걸 못마땅해했고, 권력과도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이었다. 그는 어산지 1인체제로의 권력집중이 초래한 폐해, 미디어 스타로서의 처신, 재정 운용상의 불투명성 등을 특히 문제삼았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폭로 인터넷 매체 ‘오픈리크스’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기사등록 : 2011-02-18 오후 08: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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