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대안이 없다고?
[세상 읽기] 대안이 없다고? / 김종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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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상황이 다소 진정되는 듯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니다. 이미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도 엄청나지만, 지금은 손상된 원자로에 끊임없이 투입되고 있는 냉각수가 바다로 유출됨으로써 심각한 해양오염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이 상황이 어떻게 종식될지 아무도 모른다. 원자로 안정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불확실하다. 세계적 지진학자 이시바시 가쓰히코 교수에 따르면, 태평양판은 1923년 간토(관동)대지진 이후 70~80년 지속된 ‘평온기’를 지나 지금은 대지진과 해일(쓰나미)을 빈번히 일으키는 ‘활동기’에 접어들었다. 이 가설이 옳다면 해안을 따라 밀집해 있는 일본 원전들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사상 최대 핵사고로 알려진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체르노빌 사태는 넓고 비옥한 땅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멀리 떨어진 서유럽에도 심각한 피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막대한 피해를 끼친 이 방사능이 가동한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은 원자로 1기에서 분출됐다는 점이다. 후쿠시마에서는 4개의 원자로가 손상되었고, 그것도 전부 40년 넘게 가동한 원자로들이다. 즉, 이들 노후 원자로 속에는 방대하게 누적된 방사능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한 달 동안 방출된 것은 그만두고, 이대로 간다면 생태계의 방사능 오염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게 될지 모른다.
방사능은 생태계와 양립 불가능하다. 46억년 전 지구 탄생 이후 생명체가 출현하기까지 20억년이 경과해야 했던 것은 원시지구에 가득 찬 방사능이 제거돼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주에서 끊임없이 방사선이 들어오지만, 오존층이 막아주는 덕분에 지상의 생물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연 방사능이 미약하게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실험이나 원전 사고에 의한 인공 방사능의 생태계 유입은 용인될 수 없다. 자연 방사능이나 엑스레이 촬영을 들먹이며 안전성을 운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방사능 허용기준치라는 것 자체가 원래 핵산업 보호를 위한 자의적인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방사능의 근본 유해성은 미량이라도 호흡과 먹이사슬을 통해 체내 농축이 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으려 하고, 먹을 게 없다며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상황에서도 대안이 없으니 원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원전업계와 무관한 사람한테서도 이런 발언이 나온다는 게 문제이다. 전형적인 것은 경제학자 이정우 교수가 지난주 <한겨레>에 쓴 글(4월4일치 15면 ‘진퇴양난의 원전’)이다. 그는 현재의 높은 원전 의존도를 고려할 때, 원전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개발하자는 ‘환경근본주의자’의 주장은 지나친 이상론이라고 규정한다. 한번 터지면 곧 대재앙이 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쌓이는 핵폐기물도 합리적 처리 방법이 없는 발전방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어째서 이상론일까. 이정우 교수는 원전에 대한 철저한 감독을 주문한다. 물론 면밀한 관리·감독은 중요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사고란 늘 예측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핵사고는 생태계에 대한 회복불능의 영구적 손상을 끼친다는 점에서 여타 사고와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히로세 다카시는 핵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독립 저술가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체르노빌 다음은 프랑스 아니면 일본이 될 것임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말 출간된 <원자로 시한폭탄>에서는 “일본이 십년 후에도 존재해 있을까 묻는다면 나로서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후쿠시마에서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원전의 장래를 예측하는 데는 정상적인 사고력이면 충분하다. 원전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냐 하는 것뿐이다. 대안이 없다는 구실로 원전 가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자연과 미래세대에 대한 테러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
기사등록 : 2011-04-11 오후 08: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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