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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새판 짜기-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시놉티콘 2011. 6. 12. 15:12

 

 

장하준과는 또다른 ‘맹목적 세계화’ 비판
[한겨레] 최원형 기자 기자블로그

등록 : 20110610 21:12

 

로드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민주주의·국민국가·세계화
세가지 동시 추구는 불가능”

 

» 자본주의 새판 짜기-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고빛샘·구세희 옮김/21세기북스·1만5800원
자본주의 새판 짜기-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고빛샘·구세희 옮김/21세기북스·1만5800원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비주류 경제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유시장과 세계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사람들이 보려 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과감하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그들이 당신에게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쏟아진 관심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때 장 교수와 함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경제학자가 있다. 대니 로드릭(사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다. 맹목적 세계화를 비판하는 시각은 장 교수와 비슷하지만, 세계화-국민국가 논의를 넘어 민주주의와의 상관관계나 제도적 접근 등 색다른 통찰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새판 짜기>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삼아 자본주의의 최근 역사와 구조를 폭넓게 풀이한 로드릭의 최신작이다.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로드릭은 “최근 금융위기는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1980년대부터 겪어온 여러 금융위기 시리즈 가운데 하나”라며 “세계화 전략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최근의 위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맹목적인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를 비판하지만, 반대를 대안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세계화를 둘러싼 역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한다.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로서, 로드릭은 세계 경제가 민주주의·국민국가·세계화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좇을 수 없는 정치적 ‘트릴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국민국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높은 법인세, 강력한 노동 관련 법규, 금융 규제 등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을 뜻한다.” 톰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세계화를 이루려면 국민국가를 지키기 위한 정책들을 ‘황금구속복’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반대로 국민국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민주주의 아니면 세계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트릴레마가 발견된 과정을 뒤쫓기 위해 로드릭은 17세기부터 최근까지 ‘세계 자본주의’가 정착해 온 역사를 뒤적인다. 특히 그는 1944년 출범해 30년 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국민국가의 틀을 뒤흔들지 않으면서도 ‘적정 수준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였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과 초세계화 압력은 국가별 통제 제도들을 깨고, 세계화를 ‘고삐 풀린 망아지’로 만들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로드릭은 “우리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이어받아, 국민국가들에 충분한 정책적 자율성을 허용할 수 있는 국제 규범을 바탕으로 삼은 새로운 체제를 재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들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적 협약을 유지하고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재구축하고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려면, 초세계화와 같은 ‘깊은’(deep) 세계화가 아니라 ‘얕은’(thin)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트릴레마에 대한 로드릭의 기본 원칙은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국민국가)이 세계화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얕은 세계화가 초세계화보다 ‘온전한’(sane) 세계화”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브레턴우즈 체제처럼 제도적 접근을 이뤄내야 한다. 토빈세처럼 국제 투기 금융에 세금을 물린다거나, 각국이 자신들의 주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펴는 조세 정책을 허용한는 것 등이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다.


로드릭은 “금융위기나 전쟁 같은 큰 변화 뒤에 새로운 체제가 나타난다”며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과 같이 새롭게 경제적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들은 주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스스로의 정책적 공간을 지키고 싶어하는 등 국민국가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약한 세계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새로운 자본주의, 곧 ‘자본주의 3.0’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로드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나는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득이 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짐이 될 때 세계화는 ‘나쁜 말’이 된다”는 것. 또 하나는 “세계화는 국민국가에 보험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 혁신적 역량에 대한 전략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한국의 복지국가 논의에 대해선 “초세계화 추구에 대한 결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 대한 의존은 다양한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가져오는데, 그것들은 결국 사회보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 국가 규모가 작지만 세계 시장에 크게 개방했던 스웨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들이 걸었던 길을, 지금 한국이 걷고 있다는 풀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21세기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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