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김정은 체제 집중 분석
노동당 힘 강화해 군 통제, 중국식 통치전략 택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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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0 19:03 | 수정 : 20111220 2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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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집중분석|① 권력기반 어떻게 다질까
‘선군정치’ 내세운 김정일 방식서 변화 당이 체제구축 ‘플랫폼’ 핵심역할 할듯 리영호 군 장악해 군부 불안요인 줄어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의 불투명성과 향배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 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북한 정권이 향후 어떤 길을 걷게 될지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 생전에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권력을 순탄하게 승계하게 될지, 아니면 권력 내부의 알력과 갈등으로 새로운 권력이 대체하게 될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기반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권력 승계 때와 견줘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쿠데타나 북한 체제의 급변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보고 있진 않다. 당분간은 북한이 김 부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위기 국면을 돌파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앞으로 ‘김정은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권력 기반을 다지며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확보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 당·군·정 관계 변화…노동당 강화 김정은 체제 등장은 북한 권력기구인 당·군·정 관계의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그동안 군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던 당의 권한이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경제난과 북-미 대결 속에서 일종의 비상관리체제인 ‘선군정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방위원회는 2009년 북한 헌법개정에서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으로 격상됐다. 북한 노동당 규약 제46조는 북한군을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고 규정하여 북한군이 당의 지배하에 있는 ‘당의 군대’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선군정치가 본격화되면서 당-군 관계에서 군의 우위가 나타났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서대숙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북한의 주요 정책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나 정치국회의에서 결정된다고 보기보다는 국방위원회가 국가와 정부의 정책을 숙의하고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노동당의 강화를 통해 당과 군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후계’를 공식화한 지난해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총비서가 당중앙군사위원장을 겸하도록 규정하고 비어 있던 당의 주요 기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는 등 노동당 체제를 정비한 바 있다. 김창수 불교사회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노동당의 정상화가 김정은 체제 구축을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연구원은 19일 김정일 위원장 부고에서도 김 위원장의 직책 가운데 노동당 총비서를 가장 먼저 적었고,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부고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 군, 민의 순서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일 이후’를 준비해 당을 정상화하고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처럼 당을 통해 군을 통제하는 방식을 복구했다”고 말했다. ■ 국방위원회 약화되나 당이 강화되면서 군부에 대한 통제도 김정일 위원장이 이끌던 국방위원회 대신 김정은 부위원장이 참여하고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쪽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당 중앙군사위는 군대에 대한 지휘권, 군 고위간부 인사권, 군사정책 결정권을 가진 중요한 권력기관이었지만,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 전까지는 비상설협의기구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며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가 상설지도기구로 바뀌고, 김정은 부위원장과 북한군 수뇌부가 모두 들어감으로써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국방위원회를 대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북한 군부가 김정은 체제를 계속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지만, 당이 군을 장악하는 북한 권력작동 방식을 생각할 때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최근 방중해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났을 때 왕 부장이 ‘북한의 후계체계는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며 “김정은의 후계구도가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중국의 평가는 새겨볼 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체제안정 시급한 김정은, 북-미대화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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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1 21:25 | 수정 : 20111221 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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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집중분석] ② 대외정책 어디로
미국에 안전보장 받기 위해 ‘핵협상 정면돌파’ 점치기도 군부 장악 못하고 휘둘릴 땐 ‘강경 대결모드’ 치달을 수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대외관계를 어떤 기조로 끌고 갈 것인가?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하는 질문이지만, 일정한 예측은 가능하다. 이를 위해 눈여겨 볼 자료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문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 꼽힌다. 김정은 체제의 통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언급이 담긴, 현재로선 유일한 공식 문건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등 당·군·정 핵심기관의 명의로 발표됐다.
발표문은 대남 관계와 관련해 “우리는 조국통일 3대헌장과 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기어이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외 관계 전반에 대해선 “우리 당과 인민은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에 기초해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친선단결 강화를 내건 것은 추상적이나마 대외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힌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대외적으로 화해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대남·대외 관계개선에 나서겠다는 전략적 스탠스가 잡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갓 시작된 김정은 체제가 민심을 다잡고 내부적 안정을 다지기 위해서도 대외 관계, 특히 북-미 관계에서 성과를 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일 위원장이 추진해온 북-미 대화 기조가 김정은 체제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민심을 장악하기 위해선 내년에 ‘강성대국’이 되면 실질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아버지 때보다 나아졌다는 느낌을 주민들에게 줘야 한다”며 “미국의 식량지원이 절실한 만큼 핵문제 협상에서도 유연한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도 장례와 애도를 이유로 북-미 핵협상을 중단한 지 한 달 만에 곧바로 속개해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런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장례 기간 북-미 핵 협상이 어느 정도 지연될 수는 있지만, 장기간의 협상 공백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김정은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담보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핵 협상도 정면돌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밀착이 한층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북한이 대외관계 개선 방향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내부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로선 당분간 중국이라는 후견 세력의 지지와 지원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다”며 “한반도 정세 관리 차원에서 돌발 행동을 자제하고 6자회담과 미-북 대화에 나서라는 중국의 요구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맥락에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대남 관계에서도 원칙적으로 남쪽과 대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많다. 연평도 포격을 지휘한 김격식 4군단장이 김정일 위원장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빠진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연수 교수는 “대화 문을 열어두겠다는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남쪽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계속 전제로 내걸 경우 북한이 먼저 이를 수용하고서라도 대화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권력 기반의 취약성이 김정은 체제의 대외 관계 개선 의도를 굴절시킬 수 있는 우려도 있다. 특히 군부의 입김이 대외 관계를 강경 모드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군대를 철저하게 장악했던 아버지와 달리 군부 장악력이 약한 김정은으로선 비핵화에 부정적인 군부의 입장을 거스르면서까지 협상을 이끌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며 “또 내부의 민심 이반이 깊어질 경우 의도적으로 군사적 도발 등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내부 단결을 도모하려 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도 “대외정책에서 당·정·군 내부의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김정은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체제의 대외 정책 기조를 대화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한·미 정부의 적극적 노력도 요구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김정일 사후 오랫동안 북한을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대량파괴무기 개발에 매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남북경협의 확대라는 지렛대를 사용해 김정은의 군사주의적 성향을 약화시키고 실용주의적 성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
식량·전력 ‘절대과제’…권력 강화뒤 ‘점진적 개방’ 나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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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2 2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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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집중분석 ③ 개혁·개방정책 펼칠까
김정은,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 경제협력·외자유치 총괄해온 후견인 장성택도 개방 적극적
쌀과 전기.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 권력 장악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는 결국 이 두 가지를 인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면 공권력을 동원한 사상 통제를 넘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보다 더 많은 생필품과 에너지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혁·개방은 김정은 체제로선 언제고 피해갈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망가진 북한 경제 시스템의 개선 없이 민생 회복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김영희 정책금융공사 조사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북한 주민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은 핵개발로 군사강국을 이뤘다지만 경제강국은 달성하지 못한 채 숨졌다”며 “강성대국 달성을 최대 업적으로 내세워야 할 김정은으로선 인민생활 향상을 김 위원장의 유훈으로 받들고 제한적이나마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개인적 이력도 그가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 요소다. 김 부위원장은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아 선진 자본주의 체제 문물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나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역사적으로 젊은 시절 외국 체류 경험을 지닌 지도자들이 주도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한 사례가 많다. 김 부위원장의 최대 후견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북-중 경제협력과 외자 유치를 총괄하는 등 개혁·개방에 적극적인 편이라는 점도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문제는 시간과 범위이다.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급박하게 출범한 김정은 체제로선 당분간 권력 내부 엘리트 장악을 통한 권력 기반 공고화가 무엇보다 급선무다.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을 지낸 한기범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권력 속성상 일단은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한 뒤에야 경제 시스템의 개혁 등 구체적인 민생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단기간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 권력 기반의 취약성이 군부와 기존 관료 집단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개혁·개방 추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는 진단이다.
일정한 준비기를 거쳐 개혁·개방을 추진하더라도 그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양상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전면적 개방·개혁까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일단은 나선과 황금평 등의 북-중 합작 특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제한적으로 특구에 한정된 법과 제도를 갖춰 실제 가동에 들어가는 정도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거점식·점진적 개혁·개방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조 연구원은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인 내년 4월15일까지는 내부 단속에 주력하고 이후 제한적 개혁·개방 플랜을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희 수석연구원도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미국 등의 지원을 받아 민생에 기름칠을 한 뒤 점차적으로 제한적 특구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걸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책 변화의 성과를 봐가면서 집단농을 시범과정을 거쳐 개인농으로 바꾸고 배급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폐지하는 식의 내부 시스템 개혁에도 손을 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경협과 관련해서도 개성공단 등 기존의 제한적인 특구 확대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고경빈 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은 “통치자금 확보를 위해서도 제한적으로 분리된 형식의 특구를 유지하고 늘려나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제한적 개혁·개방이 전면적 시스템의 정비로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한기범 교수는 “김정일 재임 때인 2002년 시도했던 시스템 개혁조처인 7·1 경제관리개선조처가 후반부 들어 김정일의 결정으로 무효화됐다”며 “아버지의 유훈을 잇는다는 점에서도 김정은이 7·1조처 식의 개혁조처를 다시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시 7·1조처를 주도했던 경제 간부들이 숙청됐던 경험도 김정은이 다시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는데 장애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김정은의 후계자 수업기간 싱가포르와 미국 등에 경제고찰단을 보내 시스템 개혁을 상당히 연구한 만큼 점진적 개혁·개방 성과에 따라선 전면적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다”(조봉현 연구원)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추진과 관련해 남쪽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고경빈 전 본부장은 “김정은의 가장 큰 고민은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개혁·개방으로 북한 체제와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김정은이 안심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도록 끌고가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봉현 연구원은 “개성공단을 안착시키고, 5·24 대북조처로 중단한 대북 교역·임가공 등을 다시 허용하는 데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특구를 늘려나가면서 북한의 안정적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
‘유훈’따라 대남 유화책 펼듯…‘금강산 관광’이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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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3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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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집중분석] ④남북관계 어떻게 설정할까
사망전까지 핵·가스관 협상…관광재개 지시도 일각선 “권력승계 완료 위해 긴장감 유지할것” “MB정부 관계개선 진정성 살피며 대응” 분석도
남북관계, 곧 대남 정책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당면한 가장 까다로운 과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줄곧 꼬여온 게 사실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은 껍데기만 남았고, 급기야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국지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군사적 긴장이 빚어졌다. 5·24 대북조처로 남북교역과 개성공단을 빼곤 남북경협이 전면 중단됐다. 해마다 수십만t씩 제공되던 대규모 쌀 지원(차관)도 끊겼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할 때까지 매년 3억달러씩 벌금을 물게 만들었다”(고위 당국자)는 이명박 정부의 자평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김정은 체제로선 어떻게든 타개해야 할 절박한 문제다. 수십년 절대권력을 휘둘러온 아버지도 끝내 풀지 못한 일을 이제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가 다뤄나가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기본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경향성을 띨 것으로 본다. 경제적 지원을 확보할 수 있고, 대미관계 진전에도 도움이 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이명박 정부가 언급하는 ‘남북관계 리셋’ 차원의 전면적 관계 복원 시도에 나설 것인지는 미지수다.
일단 장례를 치르고 미완의 권력 승계를 완료하는 내부 정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내부적으로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에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화 의지에 대한 불신을 쉽게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북한 주민을 상대로 조의를 표명하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김정은 부위원장의 책임 고리를 흐리는 등 부분적으로 정책전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핵문제가 풀려야 남북관계도 풀 수 있다는 연계 원칙은 움켜쥐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남북관계 진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장 선임연구원은 “북한도 시간을 두고 이명박 정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가늠해본 뒤 대응에 나서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 매체가 조문 허용 문제로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당분간 샅바싸움을 하면서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북한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복원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숨지기 전 행보를 보면 6개월 단위로 남북관계 국면전환을 위해 움직였다”며 “사망 직전까지 핵협상과 남-북-러 가스관 협상에 나서는 등 국면전환을 시도한 데 비춰보면, 김정은도 유화적인 대남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미 대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도 북한이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6자회담 재개라는 핵 문제 진전에 맞춰 남북 간에도 당국 대화 복원 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김정일 위원장 체제에서 남북관계를 담당해온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 등 대남 라인이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김 부장은 일단 국가장의위에 15번째로 이름을 올려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 등 군부 강경파가 무력행동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환을 압박했던 것과 달리, 통전부 라인은 강석주 부총리·김계관 제1부상 등 외무성 라인과 발을 맞춰 남북대화 재개를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임기가 1년여 남은 이명박 정부와 굳이 전면적 관계 복원에 나설 것인지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백승주 센터장은 “우리 정부의 국면전환 메시지가 잘 전달되면, 북한이 충분히 대화에 응해올 수 있다”며 “1년 정도 남은 만큼 충분히 현안을 풀 시간이 있고, 또 역설적으로 임기말에 우리 쪽의 양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에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정부와는 관리 차원의 제한적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고, 다음 정부와 제대로 해보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 교수는 “우리 정부도 임기 안에 북한과 모두 풀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남북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의 대남 정책 기조를 평가할 수 있는 첫 시험대로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꼽힌다. 백 센터장은 “북한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을 받아들인 것을 의미있게 본다”고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생전에 어떻게든 금강산 관광을 재개시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양보를 하기보다는 전제조건을 내건 남쪽 정부의 태도와 의지를 봐가며 기조 변화를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
‘철권통치’ 강화할 듯…민심 달래려 ‘경제통제’ 완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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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5 19:52 | 수정 : 20111225 2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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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집중분석 ⑤ 통치행태 변화할까
권력층 내부 반발세력 정지작업 지난 3년동안 상당히 진척 ‘극단적 공포정치’ 가능성 낮아 물리력만으로 체제유지 한계 “민심이반 가장 두려워 해”
김정은은 로베스피에르가 될 것인가?
김정은 체제의 통치행태가 과대성장한 북한 공안기관의 물리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김일성·김정일 유일 영도체계는 권력 엘리트와 전 주민에 대한 촘촘한 사상·물리적 통제에 기반해 유지돼왔다. 김정은 체제 역시 이를 이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손댄 권력기관이 군부와 더불어 공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후계구축의 최일선에 섰던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은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승승장구한 반면, 뜨뜻미지근했던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은 비리 등의 사유로 해임됐다.
더구나 김정은 체제가 처한 상황은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을 갖추고 수십년의 후계 준비기간을 통해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는 사뭇 처지가 다르다. 연배도 어리고 후계 준비기간도 짧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쌓지 못한 그로선 과도기적으로 철권통치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도전 세력과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그의 강압통치가 아버지 시대를 뛰어넘는 극단적 ‘공포정치’로 나타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정치사적으로 공포정치는 권력 전환기 반대파 제거를 주목적으로 과도적으로 운용되는 통치행태라 할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 직후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를 통해 수백명의 반대파를 단두대에 세우는 공포정치를 폈다. 국내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뒤 광주항쟁 유혈진압과 삼청교육대 개설 등의 공포통치로 저항을 짓눌렀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국면을 수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심각한 권력 엘리트 내부 갈등이나 주민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권력 엘리트들 사이 후계체제에 대한 비판이 있거나 주민들의 집단 소요 등이 예상된다면 공안통치, 공포통치를 하겠지만, 현재 북한에선 그런 세력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후계체제의 기강을 다잡으려고는 하겠지만, 극단적 통치행태로서 공포정치를 택할 이유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김정일 위원장이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에 나선 이래 지난 3년여 사이 이미 권력 엘리트 내부 반발세력에 대한 정리 작업은 상당 부분 진척됐을 가능성이 크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은 지난해 9월 3차 노동당 대표자회 뒤 이미 장성과 대좌, 상좌 등 군부 중견 간부 300여명을 잘라냈다”며 “아직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 일부 김정은에게 동의하지 않는 세력이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사상·물리적 통제만으로는 민심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김정은 체제 통치행태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공포정치 일변도로 흐르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 요인이다.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은 “공안기관의 강압적 감시 유지와 더불어 경제적 인센티브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안찬일 소장은 “김정은이 일정한 기간 뒤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면서 민심을 다독이며 화합 분위기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밖으로는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해 중국과 미국, 남쪽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안으로는 장마당 등 시장을 용인하는 정책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소장은 “지금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뒤 ‘고난의 행군’으로 민심이 완전히 당에 등을 돌렸던 악몽이 재현될까봐 떨고 있다”며 “민심 이반을 물리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만큼, 경제적 차원에선 주민 통제를 완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정은 체제의 통치행태는 분야별로 일정한 차별성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사회적 동요와 체제 불안 요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사상·정치적 통제는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권력 엘리트에 대한 감시망을 죄는 것은 물론, 탈북자에 대한 처벌도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은 더욱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차원에선 시장 용인 등 국가의 통제 고삐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 식량지원을 받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선 전향적으로 남쪽과의 대화에 응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남쪽 정부도 이런 차이점까지 고려한 세심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일차적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식량지원 재개로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것이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며 “한편으로 내부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선 개혁·개방 유도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풀어가되, 탈북자 강제송환 등의 당면 현안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식의 종합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끝>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