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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대물림 수단’ 계열사 4년간 393개 늘었다
시놉티콘
2012. 2. 29. 14:33
‘재벌 대물림 수단’ 계열사 4년간 393개 늘었다
최근 4년간 대기업들은 문어발처럼 계열사를 확장해왔다. 그 배경에는 손쉬운 사익 추구와 부의 대물림이 자리하고 있다.
총수 2~3세들은 재벌 후광을 등에 업고 베이커리·식음료 사업 등 중소기업 업종에까지 진출했고, 그 결과 기업집단마다 매년 평균 3개사씩 계열사를 늘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연속해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35개 민간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 변동현황을 28일 발표했다.
공정위 조사결과, 이들 대기업집단은 지난 4년간 652개사를 계열사로 신규 편입했다. 흡수합병·지분매각으로 빠진 259개사를 제외하면 393개사가 순증해 매년 집단별로 2.8개씩 증가한 셈이다.
삼성·롯데·LG 등 총수가 있는 29개 기업에 편입된 계열사 수는 558개였다. 집단별로 5~10위 기업의 계열사 증가율이 20.7%로 가장 높았고 1~4위 기업은 14.1%, 11~35위 기업은 7.8% 증가했다.
계열사 수가 많이 증가한 그룹은 포스코로 이 기간 38개가 늘었다. 이어 롯데 34개, SK 29개, LG·GS 각 28개씩 증가했다.
총 계열사 숫자는 SK(86개), 삼성·롯데(각 78개), GS(76개), CJ(65개) 등 순으로 많았다. 신규 계열사는 4년간 35개 집단의 자산(516조8000억원), 매출액(463조8000억원) 증가에 10.8%, 13.8%씩 기여했다.
대기업집단의 신규 계열사들은 중소기업 영위 업종에까지 뛰어들었다. 22개 그룹의 계열사 74개사는 식음료 소매·수입품유통·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등 중소기업 영역에 진출했다. 삼성·신세계(각 7개사), 롯데·GS(각 6개), CJ·효성(각 5개) 등 순으로 많았다.
업종별로 보면 식음료소매 19개, 수입품유통 18개 등 순으로 많았다. 교육서비스(5개), 웨딩서비스(2개)도 있었다. LED램프·출판 등 중소기업적합업종 품목에 들어간 계열사는 14개사, 중소기업중앙회와 사업조정 중인 대형마트·서점·MRO 등 업종은 21개사다.
총수 2~3세가 직접 지분 또는 경영에 참여하면서 중소기업 분야에 진출한 곳은 8개 대기업집단 소속 17개 회사였다.
대기업집단별로는 롯데 5개, 삼성 4개, 현대차 3개 등 순으로 많았다. 총수 3세들은 베이커리·커피판매점 등 식음료소매업(8개), 패션·명품 등 수입품유통업(5개), 교육서비스업(2개)에 많이 참여했다.
정중원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나 중소기업 영역 잠식 문제의 맞춤형·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집행을 하고 제도개선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8개 재벌 17개사, 총수 자녀들이 나서서 중기업종까지
재벌들은 기업 확장을 위해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재벌들은 발광다이오드(LED)램프, 골판지상자, 레미콘 같은 중소기업 영역에까지 파고들었다. 특히 재벌 2~3세들은 베이커리, 카페, 팝콘 사업에까지 진출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먹거리까지 잠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개 그룹 17개사의 2~3세들이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해 있었다”고 밝혔다.
삼성과 롯데는 이 분야의 원조이자 선도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는 식자재유통에 참여하고 있다. 관련 매출액은 2010년 2700억원에 이른다. 식자재유통은 중소기업들이 사업영역 보호를 위해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 중인 업종이다.
이 회장의 차녀 서현씨가 부사장인 제일모직은 시계·의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 가방·의류 브랜드인 토리버치 등 패션·명품에 진출해 있다. 또 콜롬보코리아를 통해 악어가죽 가방(Colombo Via Della Spiga)을 수입판매하고 있다.
롯데가의 2세 신동빈 회장이 최대주주인 롯데쇼핑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롯데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351개 매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슈퍼마켓 확장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 골목상권에선 악명이 높다. 롯데쇼핑은 전국에 351개 매장을 운영하며 2010년 기준 매출액이 13조5000억원에 이른다. 신 회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롯데리아는 993개 매장에서 567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은 팝콘 음료업체인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에 관여하고 있다. 시네마통상은 계열사인 롯데시네마 수도권점에서 8개 팝콘매장을 운영하며 16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시네마푸드는 지방 롯데시네마 7곳에서 팝콘매장을 열고 있다.
이 밖에 신세계(조선호텔베이커리)와 한진(싸이버스카이·유통업), 현대백화점(현대그린푸드), 효성(더클래스 효성), 두산(디에프엠에스) 등도 총수의 자녀가 중소기업 업종을 침범했다.
공정위는 “이들 회사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기존의 유통망을 이용해 손쉽게 사업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자회사 보나비를 통해 커피·베이커리 브랜드인 아티제를 운영하다 지난달 26일 사업을 접었다. 신영자씨의 딸 장선윤 블리스 사장이 운영해온 베이커리 ‘포숑’도 지난달 31일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고문이 있는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도 편의시설 사업부문인 ‘오젠’을 지난달 27일 철수했다.
공정위가 조사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35개 대기업집단 중 22개 대기업집단 소속 74개 회사가 중소기업 영위 분야에 진출해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을 지정하고 있지만 이미 대기업들은 이 분야에까지 손을 뻗친 지 오래였다.
삼성과 SK, 포스코, 효성 등은 발광다이오드램프 업종에, 두산동아, 동양 등은 각각 골판지상자와 레미콘 분야에 계열사를 만드는 등 총 14개사가 5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품목에 진출했다.
21개사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사업조정을 신청 중인 7개 업종에 진출했다. 포스코와 동양, 현대중공업 등은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 대우조선해양은 상조업에, 대한전선은 내의판매업에까지 새로 손을 댔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업종인 식음료소매업(19개사), 수입품유통업(18개사), 교육서비스업(5개사), 웨딩서비스업(2개사)에도 재벌들이 진출했다. 대기업집단별로는 삼성·신세계가 각 7개사로 가장 많았고, 롯데·GS가 각 6개사, CJ·효성이 각 5개사 순이었다.
공정위는 앞으로 대기업집단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 감시 강화, 총수일가 사익추구 점검, 사회적 감시시스템 확충, 대기업 자율의 내부 견제장치 마련, 엄정한 법 집행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힘 받는 재벌개혁론, 공정위 “맞춤형 규제”
계열사 수가 늘거나 사업 영역이 확대됐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을 비난할 수는 없다. 기업이 지속 성장을 위해 수익성 높은 분야에 투자하고, 신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투자를 빙자해 총수 일가의 사익을 추구하거나 중소기업 영역에 뛰어들어 막강한 금권력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많다는 것이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 분석으로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실태 등이 다시 한번 드러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재벌 개혁론도 한층 힘을 받게 됐다. 그동안의 논의가 다소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수준에서 진행됐다면, 현 시점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도 개별 기업에 맞는 ‘맞춤형’ 접근과 엄정한 법 집행, 사회적 감시 시스템 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꺼낸 기업별 맞춤형 접근 방식은 정치권에서도 이미 제기됐다.
통합진보당은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에 대해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해 삼성금융그룹과 삼성전자그룹으로 나눠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씨의 영향력을 차단토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로 이뤄진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금지를 통해 기아차나 현대모비스를 계열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방안은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나 골목상권을 침범해 여론의 지탄을 받는 재벌 계열사는 ‘표적 조사’ 논란이 일더라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정위 발표를 계기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의 실효성 논란도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출총제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출총제가 폐지된 2009년 이후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증가율이 폐지 전보다 낮거나 유사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2008년 12.1%인 계열사 증가율은 2009년 13.6%, 2010년 3.8%, 2011년 12.3%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등은 출총제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부활을 추진 중이다. 출총제 적용 기업집단 40곳을 대상으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출총제 폐지 전후의 연평균 실질 자산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출총제가 시행됐던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상위 20대 그룹의 연평균 실질 자산증가율은 5.46%였다. 반면 출총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2007~2010년 증가율은 8.67%로 50% 이상 증가했다.
정치권의 재벌 개혁안이 얼마나 반영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이지만 향후 공정위의 권한이 강화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공정위 강화 자체가 재벌 개혁의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 감시 강화, 총수 일가 사익추구 점검, 사회적 감시시스템 확충, 대기업 자율의 내부 견제장치 마련, 엄정한 법집행 등을 제시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정보 공개로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와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