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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광둥성 우칸촌에서 주민들이 우칸 지도를 보면서 토지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불법 매각된 토지를 확인하기 위해 젊은 주민들이 구글어스 등을 이용해 우칸 토지 지도를 직접 만들었다. |
[중국, 전환의 기로에 서다] ① 농촌 마을의 ‘작은 혁명’
[르포] 중국 우칸촌을 가다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올가을 10년 만의 권력교체를 앞둔 중국 사회의 밑바닥에선 변화의 목소리가 분출하며 경제·사회적 난제의 해법을 둘러싼 노선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농촌의 민주 실험을 상징하는 광둥성 우칸촌 등을 직접 찾아 중국 모델의 새로운 길을 내다본다.
부패관리 몰아낸 주민들
촌위원회 선거 준비 분주
당간부들, 토지 몰래 매각
농민분노가 변화의 불씨로
“봄이 우칸에 왔다. 1인1표 선거의 날이 기쁘게 다가온다” “직접 선거로 민주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자”
붉은 종이 위에 손으로 쓴 민주의 글귀들이 작은 마을 곳곳에 붙었다. ‘중국 민주의 성지’로 떠오른 중국 최남단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 주민들은 다음달 3일 행정기구인 촌위원회 선거를 앞두고 선거 절차를 꼼꼼히 준비하느라 한창 바쁘다. 중국에서 유일한 민주선거의 열기다.
지난 21일 찾아간 우칸에선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열흘 전 선출된 마을대표(기층조직) 중 한명인 장빙취안(45)은 “과거 촌 서기는 41년, 촌위원회 주임은 37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형식적인 선거도 없이 촌위원회에는 측근들 이름을 맘대로 써서 상급 정부에 보고했지만 이제 변화가 왔다”고 했다.
우칸촌의 1만3000여 주민들은 중국 민주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41년간 마을의 황제처럼 군림했던 촌 서기 등 당 간부들이 주민들의 집단소유인 토지를 몰래 매각해 거액을 챙긴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지난해 9월부터 시위에 나섰다. 마을대표 쉐진보가 체포돼 숨진 뒤에는 당과 공안 조직을 모두 몰아내고 마을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말 광둥성의 2인자인 부서기가 직접 마을을 찾아와 민주선거와 토지 문제 해결 요구를 받아들였다. 우칸의 ‘작은 혁명’은 중국 농민의 각성과 단결, 그리고 더이상 중국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드러냈다.
풀뿌리 민주는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우칸 사람들에게 남은 더 어려운 문제는 토지 문제다. 쫓겨난 전 당 간부들은 1990년대 초부터 부동산 개발회사 등에 몰래 토지를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주민들의 집단소유인 2만5000무(약 1600만㎡)의 대부분이 주민들 모르게 팔려 나갔다.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끈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이뤄졌다. 광둥성 정부는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마을에 파견했지만, 아직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토지 시위를 처음 시작했던 ‘우칸 열혈청년단’의 일원인 좡례훙(28)은 “부패한 관리들이 촌민의 토지를 훔쳐 거액을 챙겼다”며 “고향 땅은 몰래 빼앗겼고, 외지에 나가 어렵게 돈을 벌어도 돌아온 마을에는 아무런 생활 기반도 없고, 집 하나 짓기도 어려워져 버렸다”고 말했다.
농지를 잃은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어업이 됐다. 배를 살 돈이 있는 사람들만 고향에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외지에 나가 공장에서 일하거나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허름한 주민들의 집들과 마을 한편 별장지대의 호화주택은 1 대 99 사회가 되어버린 중국의 축소판이다. 마을 주민 장젠싱(20)은 “우칸의 빈부격차는 매우 크다”며 “토지 매각으로 거액을 챙긴 당 서기, 이들과 가까워 특권을 받은 사람들은 부동산 개발과 해산물 유통으로 큰돈을 벌었고, 마을에는 호화 별장지대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가 지난해 9월부터 주민 6000~7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로 폭발했다. 주민들은 47개 성씨별로 후보를 내 12명의 임시 마을대표를 뽑고 똘똘 뭉쳤다. 난생처음 해보는 시위였지만 대표들은 시위 전략을 짜고, 주민들은 함께 깃발과 펼침막을 만들고 연판장도 작성했다. 공안 수백명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구타했지만, 탄압을 받을수록 주민들은 강해졌다.
우칸이 위치한 루펑시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사에서 하이루펑(해륙풍) 소비에트로 유명한 곳이다. 1927년 중국 공산혁명 최초의 농민 소비에트를 세웠던 농민들의 후예가 80여년 뒤 우칸 봉기의 주역이 됐다. 차이예펑(30)은 “지난 1년처럼 마을이 단결했던 적은 없다”며 “토지 문제가 드러난 뒤 촌민들은 우리가 중국 첫 소비에트를 건설하고 혁명에도 공헌했는데 마을이 이 모양이 됐다고 분노하며 더욱 뭉쳤다”고 말했다.
이제, 저장·후난 등 중국 곳곳에서 토지 분규로 고통받는 농민들, 민주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우칸을 배우자’며 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우칸에서 일어난 한알의 불씨는 광야를 불태울 것인가?
우칸(광둥성)/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우칸 모델’ 중국 민주화 신호탄될까 |
등록 : 2012.02.26 20:07 수정 : 2012.02.26 20:14
“우칸 배우자” 곳곳서 모여
“직접선거로 뽑은 위원회가
토지 불법 매각 감시할 것”
‘우칸 모델’은 중국 민주와 정치·사회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인가?
올가을 중국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지도부 교체와 ‘시진핑 시대’ 개막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우칸에서 폭발한 중국 농민의 각성과 중국 정부의 ‘양보’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유력 후보인 왕양 광둥성 당서기가 나서서 우칸 농민들의 봉기를 무력 진압하는 대신 주민들과의 협상을 통해 사태 해결을 선택했고, <인민일보>는 곧바로 광둥성 정부의 우칸 해법을 지지했다. 원자바오 총리도 지난 4일 광둥성을 방문해 중국 농민의 권리와 농촌 직접선거를 강조했다.
중국 곳곳에서 억울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우칸을 배우러’ 모여들고 있다. 21일 우칸에서 만난 추이민이(50)은 “1978년부터 광저우허진철강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8년 국영기업 개혁 과정에서 퇴직금도, 연금도 못 받고 쫓겨났다”며 “오랫동안 정부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 왔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우칸을 보고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우칸을 모델로 삼아 관리들의 토지 불법 매각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저장성 원저우시 창난현 판허촌에선 마을 주민 수천명이 당 간부들의 토지 불법 매각에 항의해 지난 2월1일부터 대규모 시위에 나서, 촌의 당간부와 공안조직을 몰아냈다. 이곳은 ‘제2의 우칸’으로 불린다.
지난해 12월부터 우칸에 머물고 있는 베이징의 비정부기구 운동가인 슝웨이는 “우칸은 사실상 중국 최초로 촌민들의 1인1표 자유선거를 통해 촌민대표회의와 촌위원회를 조직해 성공적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중국 농촌 문제의 핵심은 토지 문제인데, 민주적으로 선출된 촌위원회가 촌 간부들이 함부로 토지 매각 등을 하지 못하게 진정한 감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칸의 해법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칸/박민희 특파원
해방구 만든 4인방…“민주선거 통해 관리 견제해야” |
등록 : 2012.02.26 20:03 수정 : 2012.02.26 22:23
마을 원로 린쭈롼 시위 주도
‘젊은 농민’ 차이예펑·장젠싱
국내외 취재진 도와 언론보도
16살 우지진은 웨이보 생중계
① 우칸촌의 작은 혁명
궁금했다. 중국 남부 바닷가의 작은 마을 우칸을 ‘승리’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답은 분명해졌다. 주민들은 “한국에서 처음 찾아온 기자를 환영한다”며 기자를 오토바이에 태워 마을 곳곳을 안내하고 열정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취재진과 민주화 인사 등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부에 전하고 있었다. 우칸의 농민들은 뛰어난 ‘전략가’로 거듭나 있었다.
시위의 지도자는 마을 원로인 린쭈롼(67)이다. 한때 인민해방군 병사였던 그는 지난해 마을 광장에 가득 모인 주민들 앞에서 “우칸 인민은 이미 깨어났다. 끝까지 싸우자”고 외쳤다. 시위가 과열되자 당국은 그를 수배했으나 결국 광둥성의 2인자 주밍궈 부서기가 12월 말 마을에 와 그와 협상을 벌였다. 당국은 시위 주도자였던 그를 우칸촌의 최고지도자인 당서기로 임명했다.
지난 21일 밤 만난 린쭈롼 서기는 “성 정부에서 우리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촌민들의 요구가 합리적, 합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선거를 통해 촌민들의 지지를 받는 마을대표와 촌위원회를 선출하는 것은 토지 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민주선거가 우칸촌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좋은 견제제도를 만들어 감시하지 않으면 부정부패는 일어나기 마련이기에 민주선거를 통해 관리들을 견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21일 광둥성 우칸촌에서 주민들이 우칸 지도를 보면서 토지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불법 매각된 토지를 확인하기 위해 젊은 주민들이 구글어스 등을 이용해 우칸 토지 지도를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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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칸 시위의 성공 비결에 대해선 “마을 주민들의 단결과 젊은이들의 지혜, 국내외 언론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민들은 탐관오리들 때문에 너무 큰 피해를 입은 데 대한 분노로 단결했고, 단결했기 때문에 힘이 생겼다”고 했다.
토지 문제로 넘어가자 그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하게 토지 매각이 이뤄졌고 탐관오리들이 서로 얽혀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시위 지도부인 차이예펑(30)과 장젠싱(20)은 ‘우칸의 외교장관’과 ‘우칸의 대변인’으로 불린다. 지난해 9월 시위가 시작된 뒤 이들은 상황을 외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공안이 마을을 포위하고 도로를 봉쇄하자, 기자들이 산을 넘거나 배를 타고 마을로 잠입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마을 집 한채에 프레스센터도 만들었다. 정부가 거짓 발표를 할 때마다 촌민들이 휴대전화 등으로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웨이보에 올려 진상을 밝혔다. 시위 과정을 담은 <우칸, 우칸>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앳된 얼굴의 장젠싱은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 아이패드를 들고 현장을 누볐다. 차이예펑은 토지 문제가 잘 해결되고 나면 “우칸의 경험을 남길 수 있는 기념관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지에 나가 농민공으로 일하거나 장사를 하면서 외부세계에 눈떴던 젊은 세대의 경험은 시위 과정에서 큰 힘이 됐다.
중국 웨이보에서 ‘지징’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우지진(16)은 시위 상황을 웨이보를 통해 중국 전역에 ‘생중계’했다. “지난해 9월 공안들이 마을에 돌아와 주민들을 구타할 때 공안에 쫓겨다니다 분노한 심정으로 웨이보에 마을 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며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효과가 클 줄 몰랐는데 많은 이들이 내가 전하는 우칸 소식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우칸/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