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합의..6자회담 재개되나>
정부 "3차 남북 비핵화 회담도 개최 기대"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강병철 기자 = 북한과 미국이 지난 23~24일 베이징에서 열린 3차 북미대화에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과 대북 영양지원에 합의함에 따라 6자회담이 상반기 중 개최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측은 미측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비핵화 사전조치'로 요구한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 중단과 이를 감시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을 수용했다.
미측도 이에 연동해 우선 24만t 규모로 대북 영양지원을 실시하고 추가 지원을 위해 북측과 협의하기로 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29일 논평을 통해 "오늘 발표된 미북 협의 결과를 환영한다"며 "정부는 특히 북한이 그동안 한미가 6자회담 재개 여건 조성 차원에서 촉구해온 사전조치들을 이행하기로 합의한 것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합의가 충실히 이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대변인은 "앞으로 6자회담 관련국 및 국제사회와 협력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강조했다.
북미가 UEP 중단과 영양지원을 골자로 한 `빅딜'에 성공함에 따라 6자회담도 재개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합의사항 이행이 관건"이라면서도 "6자회담이 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수석대표회담에서 북핵 신고 내용 검증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한 이후 3년 이상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6자회담 당사국도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6자회담 재개를 지지하고 있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이 비핵화 사전조치를 취하면 6자회담을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조속한 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북미합의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이 성립되기는 했지만 세부사항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암초'를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식량지원이 먼저냐 UEP 중단이 먼저냐를 놓고 북미간에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선후관계를 놓고는 기술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요구한 알곡을 포함 30만t 규모의 식량지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씨가 남아 있다.
이 당국자는 "이제 한 단락이 끝난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사전조치를 언제 이행하느냐가 6자회담 재개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6자회담이 재개 절차로 들어가면 3차 남북 비핵화 회담도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성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25일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면담을 가진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남북 비핵화 대화도 개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남북회담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hojun@yna.co.kr
<북ㆍ미, 합의사항 이례적 동시발표 의미는>
"공식 합의문 아니다..北 이행이 관건"
北, 공동 발표 몇시간전 한ㆍ미에 `전쟁위협'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 북한과 미국이 29일(현지시간)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3차 고위급 회담의 합의사항을 동시에 발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북미대화 이후 양측이 개별적으로 각자의 주장이 반영된 성명이나 발표문을 내놨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향후 6자회담 재개 전망 등과 관련해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 국무부와 북 외무성이 대변인 발표를 통해 시간까지 맞춰 발표하는 등 `세부적인 조율'을 감지케 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양측이 발표한 합의사항이 큰 틀에서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점도 앞으로 6자회담 재개 및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한 추가 논의가 계속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또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첫 공식대화인 이번 제3차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상당부분 진전을 이뤄냈다는 인식을 동시에 나타낸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관전포인트로 지적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합의사항이 동시에 발표됐지만 형식이나 내용면에서는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는 양측이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은 정식 합의문이 아니라 합의 요지를 각자 발표하기로 한 것"이라면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양측이 발표한 합의사항에는 대북제재 해제, 추가 식량지원 논의, 북한의 행동에 대한 우려 등 서로 다른 표현이나 문구를 찾을 수 있다.
결국 공식 합의문을 공동으로 발표할 경우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취한 것으로, 이는 양측이 앞으로 대화 흐름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함께 밝힌 것이지만 결과를 섣불리 낙관할 수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그동안 합의를 해놓고도 이행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면서 "역시 관건은 북한의 이행 여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이나 남한과의 합의사항을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으로 발표한 것은 전례가 드물다"면서 "지난 2007년 8월 발표된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계획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날 북한이 북미회담 합의사항을 발표하기 몇시간 전에 한국과 미국에 대해 `전쟁위협'을 한 점에도 주목했다.
북한은 이날 대남 선전단체인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의 대변인 담화를 통해 키리졸브 훈련 등을 언급하며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지난 6.25때처럼 전쟁마당이 조선반도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humane@yna.co.kr
<북·미 발표문 들여다보니 `각자 속내' 반영>
美, 비핵화조치에 비중…北, 제재해제·경수로 부각
양측 대화국면에 우리정부 입지 약화될수도
(서울=연합뉴스) 윤일건 기자 = 북한과 미국이 29일 동시에 발표한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 발표문에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우선 반영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은 그동안 줄곧 북한에 요구해온 비핵화 조치인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가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 복귀 등을 발표문의 맨 앞에 담고 뒤이어 회담의 원칙 등을 나열했다. 비핵화 조치에 가장 비중을 둔 셈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비핵화 조치를 외무성 대변인 문답의 맨 뒤에 언급함으로써 비핵화 조치가 `등 떼밀린 조치'라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대북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미국은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영양지원 24만t 외 옥수수 등 추가식량지원을 기정사실화했지만, 미국은 '추가지원 계획을 바탕으로 24만t의 영양지원'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한 대목이다.
북한은 "미국은 대(對)조선 제재가 인민생활 등 민수 분야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고 밝힌 데 비해 미국은 "미국의 대북제재는 북한주민들의 삶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해 어감상 차이를 보였다.
특히 북한 외무성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에 대한 제재 해제와 경수로 제공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에서 비롯된 유엔의 대북제재 문제와 2002년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제기되면서 중단된 경수로 건설 문제를 부각했다.
북한이 미국과 조율과정을 거쳐 내놓은 발표문인 만큼 북미 간의 세 차례 고위급회담 과정에서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논의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5년 6자회담에서 체결된 9·19공동성명에도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를 논의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며 "미국이 원칙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언급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회담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발표로 보면 5·24 대북제재 조치에 매달리면서 북한의 선(先)비핵화 조치만 촉구해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 경우에 따라서는 곤혹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미가 본격적으로 대화국면에 들어서는 상황에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뿐 아니라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 대화분위기가 자칫 한국정부의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발표문에서 드러난 북미 양측의 이러한 차이에도 일단 이번 북미회담에서는 북한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선 대목을 평가해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UEP 가동 중단이나 IAEA 사찰단 허용 등을 결심한 것은 미국과의 대화여건 조성을 위한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25일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새지도부에 대한 인상을 묻는 물음에 "북한에 새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북한 새 지도부가 대화의 장에 나오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용석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적극성은 이미 작년 10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고위급회담에서부터 엿볼 수 있었다"며 "당분간 북미 간의 대화가 한반도 주변정세를 이끌어가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yoonik@yna.co.kr
얼핏보면 ‘북 대폭양보’…실질은 ‘절묘한 균형’ |
등록 : 2012.03.01 18:55 수정 : 2012.03.0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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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미공군 정찰기 지난달 16일 주한미군의 오산 공군기지에서 정찰기인 ‘U-2’의 훈련비행 이륙에 앞서 미국 공군 장병이 이 정찰기를 점검하고 있다. 이 정찰기는 지난 35년 이상 동안 미국이 북한 내부의 군사 움직임을 살펴보는 ‘창문’들 중의 하나였다. 오산/AP 뉴시스 |
‘합의문’ 들여다보니
제재해제·경수로, 6자회담 의제로 밀어놓고
‘결실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단서 달아
북 언제든 되돌리기 가능…겨우 신뢰 첫걸음
북한과 미국이 7개월의 고위급 회담을 거친 뒤 29일 발표한 ‘합의문’은 언뜻 보면 북한이 대폭 양보한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양쪽의 대차대조표를 맞춰보면 절묘한 균형점에서 절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발표 형식과 내용을 따져보면 아직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어, 말 그대로 신뢰구축의 ‘첫 걸음’을 뗀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발표 형식 측면에서 살펴보면, 북-미 고위급 회담의 합의사항을 동시에 발표한 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만 해도 대체로 6자회담을 제외하곤 북-미 간에는 ‘비망록’ 형식의 비공개 합의가 일반적이었다. 북-미가 시간까지 맞춰 발표했다는 것은 세부적인 조율을 할 정도로 궁합이 맞는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도 숨어 있다.
발표 주체의 격은 다소 낮은 편이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형식, 즉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했다. 미국도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 명의의 ‘언론 발표문’ 형식으로 처리했다.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 회담’의 성격임을 강조하고, 미국 내에서 의회의 동의나 비준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격이 낮을수록 합의문의 구속력은 떨어진다는 점에서,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북-미 모두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아직은 양쪽의 신뢰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내용적으로는 미국은 자신들이 요구한 6자회담 재개의 사전 조처들을 대부분 얻어낸 것처럼 비춰지지만 북한이 얻어낸 상응대가도 적지 않다. 우선, 미국은 그동안 줄곧 북한에 요구해온 비핵화 조처인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가동을 포함한 영변 핵활동 임시 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 복귀 등을 발표문의 맨 앞에 담았다. 사실, 북한이 추가적으로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할 경우 핵무기 소형화와 장거리 운반수단의 완성도가 높아져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미국 내에선 팽배했다. 이번 합의로 미국의 안보 위협을 일시적으로나 차단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실익을 얻은 셈이다. 이에 비해 북한이 손에 쥔 것은 ‘영양지원 24만톤’과 북한의 행동을 봐서 식량을 더 줄 수 있다는 ‘조건부 추가 지원’뿐이다. 북한이 오랫동안 우라늄농축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공들여온 것에 비하면 값어치가 낮게 매겨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문을 보면, 북한이 언제든 이번 합의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가역적’ 단서들을 달아놓았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쪽 발표에는 빠져 있긴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장거리미사일·핵프로그램의 임시 중지에 ‘결실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이란 단서를 달아 미국을 옭아맸다. 미국 행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시간끌기’ 전략으로 나오면 회담을 깰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북한 쪽 발표에만 나와있긴 하지만, 북한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제재 해제 문제와 경수로 제공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로 일단 밀어올려 놓은 점도 북한 입장에선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으며 쌍무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점도, 원칙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미국이 ‘체제 인정’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밖에 미국이 문화, 교육,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조처들을 취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미국을 방문하는 북한 인사들에 대한 비자 발급도 좀더 쉬워지고 북-미간 민간 교류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북 핵포기 기대는 어려워…미, 폐기보단 묶는쪽 택할듯 |
등록 : 2012.03.01 19:12 수정 : 2012.03.01 19:12
[뉴스분석] 북-미 ‘핵실험 유예-식량지원’ 합의
합의불구 급진전 쉽지않아
6자회담은 이해관계 복잡
향후 협상도 양자대화 가능성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똑같은 말을 세번이나 값을 치르고 사느냐?”(<워싱턴 포스트>)
“우라늄 농축활동과 핵실험 중단,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실시된다면,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서) 이전의 조처들과는 다른 진정한 진전.”(<비비시>(BBC))
29일 발표된 북한과 미국의 3차 고위급 대화 결과 발표에 대해 국제사회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북한 비핵화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식량지원을 얻기 위한 북한의 전술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북핵 협상의 중요한 분기점은 1994년 제네바 합의(빌 클린턴 정부)와 2005년 9·19 공동성명(조지 부시 정부)이 있었고, 이번 북-미 고위급 대화는 세번째 분기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두번의 분기점은 매번 ‘검증’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돼 왔다.
그렇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세번째 ‘똑같은’ 말을 탄 것인가?
클린턴 정권은 북-미 직접대화로 성과를 이뤄냈다면 부시 정권은 북-미 직접대화보다는 6자회담 등 다자협의의 틀을 선호했다. 29일 발표는 북한과의 대화에 주저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다시 북-미 직접대화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집어 보면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내세웠던,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전략적 인내’의 공식적인 폐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지금의 상황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에도 이전 협상이 이어지면서 제네바 합의가 도출됐던 1994년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 정권 교체기에 새 정권은 대외관계를 안정시킬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는데다, 후임자가 전임자가 추진해 온 흐름을 단숨에 뒤집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에도 ‘제네바 합의’에 준하는, 비핵화라는 큰 흐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또한 이번 발표는 2009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냉랭했던 북-미 관계와 동북아 정세가 해빙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미 관계 측면에서 봐도 양국간 신뢰관계 구축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양국 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 따위가 그것이다.
문제는 당시와 비교해 볼 때, 구조적으로는 상황이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94년에는 북한의 비핵화가 플루토늄에 기반한 영변 핵시설에 국한됐지만, 2010년 11월 영변의 원심분리기 시설 공개로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에 기반을 둔 핵프로그램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 북한은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다. 북한과의 대화 추진을 위한 미국 내 동력이 약하는 얘기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오바마 정부의 ‘외교적 성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공화당은 “북한이 식량을 위해 일시적으로 평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추진 이유도 경제·에너지난 해결을 위한 협상 목적이 아니라, 사회주의권 붕괴, 옛소련과의 동맹 해체, 미국의 중동 개입 등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번 합의가 ‘좋은 출발’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북한의 비핵화 전망을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합의이행방식 논란소지 많아…미 “상당한 시간 걸릴것” 신중 |
등록 : 2012.03.01 19:08 수정 : 2012.03.01 19:08
6자회담 언제 재개?
북-미간 합의로 연내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회담이 곧바로 재개될지에 대해서는 한·미 당국자들이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9일(현지시각) 전화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고, 한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1일 기자들과 만나 “이제 6자회담으로 가는 첫 문을 연 것일 뿐”이라며 향후 험난한 협상을 예상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서면 약속 만으로 6자회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이 영양지원을 받지 않았는데도 비핵화 사전조처를 할 리 만무하고 미국도 비핵화 사전조처 약속만 받고 6자회담 개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 이행과정을 지켜봐야 6자회담 재개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앞으로 이번 합의의 이행 방식과 일정 등을 놓고 세부 조율에 나설 계획이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과 로버트 킹 미국 인권담당 특사가 협상에 나설 대북 영양지원의 양과 내용에 관해서는 쌀 등 알곡을 뺀 영양식품 24만톤(매달 2만톤씩)으로 결정돼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미국 쪽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추가 영양지원 문제를 놓고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4만톤 이외에는 확정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30만톤 이상의 지원을 요구해온 북한이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합의 사항을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분배 투명성을 위한 모니터 요원의 현장 접근성을 얼마나 허용할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영변 우라늄농축 임시 중단 및 감시와 관련해선,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간 협의가 예정돼 있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입회하에 우라늄농축시설을 중단하길 원하지만, 북한은 우라늄농축시설을 중단시킨 뒤 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전문가들이 영변 시설의 가동 모습을 직접 지켜볼 경우 북한의 핵 능력이 파악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영변의 5MW 원자로와 관련 시설의 불능화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미국 쪽은 “지난 베이징 고위급 대화에서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발표문에는 빠져있다.
또 우라늄농축 시설의 임시중단과 영양지원의 시기나 선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도 북-미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는 기본적으로 행동 대 행동 원칙,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서로 주고받기를 할 것”이라며 “그렇더라도 세부 내용에서 이견을 서로 절충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쉽지 않은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