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일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유예(모라토리엄) 등 비핵화 사전조치와 대북 영양(식량)지원을 골자로 한 6개 항에 합의하고 양국이 합의사항을 동시에 발표했다. 북한 핵문제의 돌파구를 열었다는 평가부터, 주변국의 반응이 회의적이라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여하간 대화가 시작되었고, '말 대 말'에 따른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난 시기 합의는 되었으나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대화를 통해 합의하고 그 실천을 이행하는 프로세스에 착수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북핵문제를 매개로 2012년 동북아 평화프로세스의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멀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헤쳐 갈 가시밭길이 까마득하다. 지나온 길의 아픈 상처들은 앞길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고 있다. 남한정부는 북미 간 대화와 합의를 했으니, 남북 간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태도의 변화라고 환영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보면 남북대화 없이 북미회담 진전은 없다는 태클일 수도 있다. 여야 모두 MB정부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북핵문제에 대한 '창조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여전히 '선(先) 핵 폐기론'이라는 마지노선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번 합의가 미국의 입장에서 '핵안전보장회의'와 이란 핵문제, 그리고 대선이라는 상황에 근거한 정치적 판단이라는 한계도 명확하다.
남북관계와 동북아지역에 봄은 왔다고 얘기를 하는데, 꽃이 필 것인지 장담할 수가 없다. 꽃이 피지 않는 것은 날이 따뜻하지 않아서다. 태양이 비춰 얼음이 녹고 물이 흘러 땅을 적시고, 온도가 따뜻해야 꽃이 핀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해빙을 위한 전제조건은 MB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정책 전환의 계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남은 임기 동안 북한주민을 위한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 금강산관광의 재개, 이산가족상봉 재개 등을 성사시켜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상회담도 개최하여, 2000년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슬프고 아픈 기억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5·24 대북제재조치' 해제와 기존의 남북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래도 한반도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대결적 조치의 철회와 남북 간 합의사항의 이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MB정부 4년간 대북정책 추진의 한계와 문제점은 엄중한 잣대로 평가·비판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야당이 비판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비판하면 속이야 편하겠지만, 상황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MB의 남은 임기 동안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 수 있도록 조언하고 때로는 협력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주고, 토론하고, 합의하고,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통합당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MB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대외전략과 대북정책의 목적은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다. 협력할 때는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4년간 진행한 MB정부 대북정책의 무능과 아집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또한 '연평도' 주민과 해병대원의 무고한 죽음도 잊을 수 없다.
최근 민주진보진영에서 '2013년 체제'와 '포용정책 2.0' 그리고 한반도 분단체제 해체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퍼주기' 담론에 대한 적절한 대국민 설득논리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봄이 왔으니 진정 국민을 위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게, 우리 모두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