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세계적 진보철학자 지젝·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대담

시놉티콘 2012. 6. 26. 15:30

 

 

지젝 “대중은 멍청하지 않아, 진보는 답이 아닌 질문 던져야”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세계적 진보철학자 지젝·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대담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63)이 지난 24일 한국을 찾았다. 2003년 이후 두 번째 방한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이자 하버마스와 푸코를 이어 2000년대 한국 사회를 풍미한 사상가로 꼽히는 지젝은 마르크스와 헤겔, 라캉을 종합한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린다.

지젝은 세계 지성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던지는 학자 중 하나다. 스스로 라캉의 개념들을 대중문화로 번역하면서 제대로 파악했다고 했을 정도로 독특한 영화 해석과 문화 비평을 내놓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현실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고, 지난해 벌어진 미국 ‘월가 점령’ 시위 한복판에서는 “갈망하는 것을 진짜로 원하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연설했다. 그는 우리가 믿는 ‘현실’이 진짜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지젝은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주선으로 2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홍세화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65)와 대담을 나눴다. 예정된 시간을 넘기고도 2시간 가까이 쾌활한 말투와 몸짓으로 유럽 경제위기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면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젝은 방한 기간 중 26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며 경희대 평화의전당(27일 오후 7시), 건국대 새천년관(28일 오후 7시)에서 대중강연을 한 뒤 30일 귀국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왼쪽)이 2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정치 등을 주제로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홍세화(이하 홍)=최근 그리스 2차 총선 직전 당신은 그리스 위기 과정에서 지지도가 급상승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만이 민주주의 같은 유럽의 가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해 한국 등 대부분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경제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시리자의 승리에 부정적이었다.

슬라보예 지젝(이하 지젝)=그리스의 두 정당(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신민주당)은 부패와 비효율의 주범이다. 시리자는 미친 좌파정당의 이미지가 아니다. “우리는 유로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유로존에 잔류하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들이 말한 첫 번째 임무는 정부에 고용된 200만명 중 부정한 사업에 연루돼 있는 이들을 조정하는 일이다. 이들은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이들은 진짜로 꿈꾸는 사람들이다. 국가 없는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그리스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누구도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상황은 점점 나빠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럽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리자가 집권하지 못하는 것은 극단적인 정치선동 때문이다. 시리자가 승리하면 스탈린주의적인 테러가 있을 것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포를 줘서 동원하려는 시도다. 시리자는 미디어에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했다. 시리자가 승리했다면, 아마도 새로운 시민성의 가능성이 열렸을 것이다.

홍=그리스의 상황과 결부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을 분석해온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

지젝=지금 유럽 경제는 접시 돌리기에 비유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접시를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돌리고 있는데 언젠가 모두 떨어진다. 유럽은 지금 집단적으로 이런 진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다. 물론 이 유럽의 위기는 세계적인 위기의 일부이다.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유래했다. 하루에 10억달러어치를 수입하던 미국이 이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끔찍한 중세적 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이 세계경제의 균형을 맞춰왔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추동할 수는 있지만 이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나 싱가포르를 민주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정말 역동적이지만, 그래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위험한 경향이다. 러시아도 그렇고 이탈리아, 그리스도 그렇다. 테크노크라트가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민주적으로 인준받은 적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한번 실업이 되면 영원히 실업자다.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의 90%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다. 그리스에서 발생한 저항은 이런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지배계급 누구도 제대로 세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 정치인들은 위기를 해결할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총체적 위기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홍=한국은 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독재가 마감되고 정권교체를 통해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을 경험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된 이 기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로 빠르게 재편된 시기와도 일치한다. 당신은 2009년에 펴낸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장 클로드 밀네의 말을 인용하며 “68정신이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든든한 동맹자가 됐다”고도 말했다. 이런 경향은 하나의 필연으로 봐야 하나.

지젝=1968년에 모든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적인 일도 많았지만, 또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 언어를 통해 자본주의의 소외나 착취에 저항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이런 생각은 체제내화돼 있다. 더 슬픈 일은 좌파가 자본주의를 비판해왔지만, 위기가 닥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월가 점령’ 현장에 내가 있었지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경제를 정상화하라는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국가가 더 많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나는 염세적이다. T J 클락이 말한 것처럼 좌파는 병마용총에서 부활해 혁명군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될 것인가? 장기적인 전망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인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인가? 서로 다른 논의의 장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인가? 의회민주주의 국가를 고수하는 것인가?

 


▲ 지젝 “유럽 경제는 ‘접시 돌리기’… 정치인 위기해결 능력 없어”
▲ 홍세화 “한국 좌파의 ‘혁명’이란 말 냉소 넘어 적대적 반응 불러”


홍=당신은 노동자를 육체노동자, 지식노동자,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배제된 노동자로 분류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외침은 이제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한국의 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도 대기업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조직노동운동에 의존했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등 배제된 자들의 문제는 외면했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진보의 전망을 재구성할 수 있는가.

지젝=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공식은 없다. 필요한 것은 실용적인 대책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을 공유할 주제다. 생태주의 같은 것이 그렇다. 이상주의와 실용주의가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도덕적인 연대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염세적인 측면을 고수하고자 한다. 지난 위기가 우리에게 준 슬픈 교훈이 이것이다. 연대감보다는 분리가 더 강하다. 사회적 약소자나 외국인이 손쉬운 배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훨씬 이런 목적을 위해 잘 조직된다. 오히려 부르주아가 관용의 자세를 갖고 있기 일쑤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 문제가 남는다. 많은 좌파들은 오만한 경향이 있다. 대중이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자기이익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대중은 훨씬 개방적이다. 대안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미국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인지적 지도 그리기’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모든 게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중국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공산주의이면서 자본주의라는 이상한 현실이다. 무슨 자본주의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은 과거보다도 더 많이 사고하고자 원한다. 사고에 목말라 있다. 윤리적인 결단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우리는 더욱 더 도그마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홍=한국에선 보수정권의 잇단 실정과 진보진영의 기대 섞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보수 여당이 여전히 과반을 차지하며 대선 승리의 기틀을 잡았다. 현재의 의회민주주의 체제가 변혁의 열망을 담아내기 힘든 시스템은 아닐까.

지젝=나는 어떤 유토피아 같은 직접민주주의 모델은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시민사회 운동이 사람들을 더 조직화해서 거버넌스를 이뤄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인지 모르겠다. 주류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안정이나 생계에 더 관심이 많다. 영속적인 동기에 이끌리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럼 무엇을 제안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옳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든 운동은 다수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소수가 중심이다. 이집트의 경우를 봐도 단순한 것은 없다. 정치인들은 집권하겠지만, 거리에서 시위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수백만명이 광장에 모여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 모인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다.

홍=오늘날 포퓰리즘에 기반한 우파들만이 정치적 열정을 가진 유일한 집단이라는 당신의 진단은 한국의 현실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서 아주 우울하게 다가온다. 한국의 좌파에게 ‘혁명’이란 말은 냉소를 넘어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새로운 좌파의 탄생을 갈망하는 한국의 주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려 달라.

지젝=오늘날 좌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좌파가 된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비판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가 말하듯이, 20세기는 끝났다. 모든 것은 노스탤지어이다. 과거에 속하는 어떤 것도 현재를 설명할 수 없다. 문제에 대한 보수적인 결론이나 좌파적 결론이나 모두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도그마적인 사고를 통해 변화를 사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