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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

시놉티콘 2012. 8. 29. 15:14

 

 

아도르노 바로읽기, 포스트 모더니즘은 잊어라

등록 : 2012.08.28 19:11 수정 : 2012.08.28 19:11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성찰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오해
그가 주창한 ‘부정변증법’ 사유는
부정적 진술로 객관적 진리 찾기
독일 이상주의 철학 전통 이어가

‘아도르노 강의록’ 시리즈 첫 책 출간

 

전후 독일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를 울타리 삼아 ‘사회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의사소통 이론’으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비책을 내놓은 위르겐 하버마스는 여기에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복지국가의 수호자로 꼽혔다. 그러나 그의 스승인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회적 소통 가능성’으론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고 예견해 이 미래의 제자와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아도르노가 살아 있을 때 펼친 강의 녹취와 메모를 모아서 꾸린 ‘아도르노 강의록’ 시리즈가 국내에 소개된다. 시리즈 첫 책으로 아도르노의 핵심 저작 가운데 하나인 <부정변증법>을 강의한 내용을 담은 <부정변증법 강의>(세창출판사 펴냄)가 최근 번역·출간됐다. 1993년부터 독일에서 나오기 시작한 아도르노 강의록은 전체 17권을 목표로 삼아 여태까지 계속 출간되고 있다. 국내 아도르노 연구자 8명이 함께 모여 만든 ‘아도르노 강의록 간행위원회’는 이 강의록 시리즈와 함께 <신음악의 철학> 등 아직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은 아도르노 저작들도 소개할 계획이다.

 

<부정변증법 강의>를 우리말로 옮긴 이화여대 강사 이순예 박사(독문학)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이상주의 철학의 전통을 이은 아도르노의 사상이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소개되는 등 그 동안 국내에 오독이 많았다”며 “이번 강의록 출간을 계기로 아도르노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다시 시작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4년 막스 호르크하이머(왼쪽)와 함께 있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오른쪽). 뒤편 오른쪽에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는 사람이 위르겐 하버마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도르노는 ‘비판이론’을 가다듬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수장으로 꼽힌다. 철학·윤리학·문화·자본·미학 등 광범위한 연구 영역과 독특한 사상체계, 비유·은유적 표현들 때문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부정변증법>은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한없이 넓혀온 서구 합리주의와 독일 관념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고 있어, 그의 저작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아도르노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동일성’에 대한 사유다. 이성을 앞세운 서구의 합리주의는 개념과 사안(Sache, 대상이 되는 사태)을 강제로 일치시켜, 이미 존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동일성 원리에 따라 인간은 ‘도구적 이성’을 휘두르며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갔고, 이 속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 지배처럼 ‘비동일자’에 대한 지배가 심화되어 왔다. 여기서 아도르노가 주목한 부분은 개념과 사안이 서로 일치될 수 없다는 모순이었다. 동일성 원리는 이런 모순에 대해 사유하지 못하게 가로막았고, 그 결과는 나치즘과 아우슈비츠 등 ‘문명 속의 야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안은 개념보다 크다” “전체는 비진리다” 등 그의 유명한 말들은 이런 맥락 위에 놓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도르노가 합리성과 이성에 반발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읽혀선 안 된다고 이 박사는 지적한다. 독일 관념론의 전통 위에 선 그는 ‘사안은 개념을 통하지 않고선 인식될 수 없다’고 여기며, 동일성 사유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유를 모색했다. ‘부정변증법’은 그런 독특한 사유가 낳은 결과물이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이순예는 여성이다”처럼 동일성 사유에 근거한 서술이 아닌, “이순예는 남성이 아닌 인간이다” 등 부정적 진술들을 통해 객관적 진리로 향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독일에서는 ‘아도르노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해 다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버마스의 이론에 기초한 독일 복지국가의 틀이 흔들리면서, 아도르노의 사유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울리히 베크나 니클라스 루만 등 독일 학자들이 아도르노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고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시는 그동안 독일 예술가들에게 주던 ‘아도르노 상’을 올해엔 미국 학자 주디스 버틀러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또다른 간행위원인 문병호 연세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이 창궐하고 사회현상과 인간 의식 사이의 불일치가 큰 사회에서는 아도르노의 진중한 사유가 더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