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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최유준 옮김/마티·1만5000원
지식인의 책임
토니 주트 지음, 김상우 옮김/오월의 봄·1만5000원
지식인
이성재 지음/책세상·8500원
지난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기자회견장에는 교수와 전직 관료, 시민단체 활동가 등 많은 지식인들이 나와 그를 지켜봤다. 최근 10여년 사이 한국의 대선 구도나 정당 정치에서는 진영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전문가 집단을 포진시키는 것이 유력한 흐름이 됐다. 정치의 풀장에서 유영하는 지식인들은 정책 개발은 물론이고, 전문가적 권위를 내세워 정파의 정당성을 대중에 설득하는 도구적 기능을 스스로 떠맡는다. 대중 또한 2008년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계기로 하여 온라인 소통을 통한 ‘집단지성’의 힘을 내보이며 지식인 대열에 뛰어들었다. 지식인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지식인 담론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백가쟁명의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나온 <지식인의 표상> <지식인의 책임> <지식인>은 혼란스런 지식인 담론 속에서 성찰의 좌표를 제시해주는 책들이다. 맹목적인 진영논리가 비판받는 요즘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선구자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쓴 <지식인의 표상>이 먼저 눈에 잡힌다. 1990년대 초 영국 방송강좌를 정리한 이 책에서 사이드는 지식인이야말로 초월적 도덕적 존재가 아닌 세속적 존재라고 못박으며 정파적 시각이 아닌, 보편적이고 단일한 인간적 가치를 잣대 삼아 대중에게 말을 거는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지식인은 자신의 온몸을 비판적 감각에 내거는 존재, 손쉬운 공식이나 미리 만들어진 진부한 생각들 혹은 권력이나 관습이 으레 말하고 행하는 것들을 거부하는 감각에 실존을 거는 존재입니다.”(36쪽)
사이드의 사유에서 지식인 모델은 ‘표상하는’ 지식인, ‘망명자’이자 ‘아마추어’로서의 지식인이다. ‘망명자’란 자신이 처한 조건을 벗어나려는 ‘쉼없는 운동’이자 ‘영원히 불안정한 상태의 타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사이드는 지식인이 이런 숙명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이윤과 보상에 휘둘려 자기 영역 바깥 문제에 눈감는 전문가주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혀 다른 가치들과 특권들의 집합을 표상해내는 방식’으로서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말하는 바를 적절하게 재현하는 표상의 기술이 지식인의 중요한 소명이라는 대목도 특기할 만하다. “글을 쓰고 발표하는 순간 공적 세계로 진입하는” 지식인은 “어떤 종류의 입장을…온갖 장벽을 극복하고 청중들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어떻게 구사할지, 언제 그런 언어에 개입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지식인의 행위에서 두 가지 본질적 특징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유럽 지성사 연구의 권위자 토니 주트(1948~2010)가 쓴 <지식인의 책임>에서는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 등 20세기 초중반 프랑스 지성계의 지배적 유행에 맞섰던 문제적 지식인들을 만나게 된다. 사르트르의 숙적 카뮈의 경우, 역사적 맥락에 무지한 채 소련 전체주의 체제의 병폐와 알제리 독립투쟁을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1950~60년대 진보진영 지식인들을 정면 비판해 ‘왕따’가 되지만, 사후 지식인의 진정성을 대표하는 우상으로 부활했다는 게 주트의 평가다.
이성재 충북대 교수의 <지식인>은 지식인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논의 과정들을 소개하는 개설서로 읽힌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식인 역할의 변천사와 함께 만하임, 촘스키, 푸코 같은 석학들의 다기한 지식인 담론들을 정리했다. 지은이는 정치·경제권력에 유착한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현실에서 지금 지식인에겐 간섭과 계몽 대신 체제 고착화를 막는 연대와 공유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말미에서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