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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의 대가
티에리 크루벨리에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2만2000원
2009년 시작된 킬링필드 학살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인 어느 날, 한 60대 농부가 캄보디아 특별법정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요, 선생님!”
농부가 반갑게 인사한 대상은 가난한 제자들에게 공짜 과외를 시켜주던 친절하고 소박한 40여년 전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보통 죄로 법정에 선 것이 아니었다. 1975년 크메르 루주의 내전 승리 뒤 1만2000여명을 고문하고 처형장으로 보낸 뚜얼 슬렝 교도소(일명 S-21)의 책임자였던 두크(70·본명 카잉 켁 에아브)였다. 제자들은 “서로 돕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었”던 선생님으로 그를 기억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그가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선생님들을 존경했고, 급우들에게 친절했다고 증언했다.
무엇이 성실하고 양심적인 수학 선생님을 ‘캄보디아의 아돌프 아이히만(나치의 유대인 박해 실무 책임자)’으로 만들었을까? 유엔이 후원하는 캄보디아 특별법정 참관기인 이 책은 유토피아를 꿈꾸다 방향을 잃고 역사적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진 한 인간에 대한 재판 기록이자 그의 정신세계에 대한 관찰서다.
두크(70·본명 카잉 켁에아브) |
그는 교도소장이 되면서 고문 지휘자로 변모했다. 고문으로 받아낸 배반자 명단, 그 배반자를 잡아다 고문해 받아낸 또다른 배반자 명단이 킬링필드 희생자 명단이 됐다. 수학 전공자다운 꼼꼼한 일벌레로 사람 사냥에도 충실했다. “죽을 지경까지 심하게 때려라”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었다.
두크가 아이히만처럼 책임을 윗선에만 돌렸다면 책 제목은 이처럼 붙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교도소장으로서 최대한 자백을 받아내려고 애썼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재판에서도 자백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회의 눈물도 흘렸다. 최후진술에서 “그때 저란 사람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에 속한 바퀴 같았다”면서도 “1만238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은 순전히 제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로 르완다·시에라리온·보스니아 등의 국제 전범재판을 두루 취재한 지은이는 그처럼 책임을 인정한 피고인은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크는 기괴하고도 엄청난 범죄의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것은 거부했다. 구체적 심문에서는 증인과 다른 말을 하기 일쑤였다. “S-21 교도소에서 발견된 기록부에 적힌 내용만 인정”하고 “증거 자료가 없는 부분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자백의 대가’다운 재판 전술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미 10여년의 수감생활로 지친 그는 혁명가 두크로 새로 태어나기 전의 카잉 켁 에아브로 돌아가고 싶다며 자유를 구걸했다.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지길 학수고대한다”면서도 결국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을 끝맺는다. 특별법정은 올해 2월 최종심에서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