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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니코렐리스 [뇌의 미래]

시놉티콘 2012. 10. 20. 15:20

 

 

 

머릿속 생각만으로 로봇 조종…‘영화같은 미래’ 온다

등록 : 2012.10.19 20:22수정 : 2012.10.19 20:27

최근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기술 발달로 인류는‘신체의 감옥’을 벗어나 앞으로 거시 천체세계와 미시 원자세계를 종횡무진 누빌 날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사진은 살아 있는 사람의 두뇌(왼쪽)와 인간의 뇌 속에서 얽히고 설킨 기능별 신경섬유 가닥들. 자료사진, 영상

뇌의 미래
미겔 니코렐리스 지음, 김성훈 옮김/김영사·2만2000원

인간의 뇌와 기계를 연결…뜻대로 움직이는 BMI 기술
원숭이 실험에선 이미 성공…인간에 접목하는 단계 진입
“신체의 한계서 해방될 것” 미래의 혁명적 변화 낙관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우주물질. 지구 파멸의 위기 속에 거기로 다가간 육중한 우주 함선 엔터프라이즈도 한낱 먼지처럼 보일 정도로 큰 천체집단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300여년 전 지구에서 발사된 우주 탐사위성 보이저 6호가 우주를 떠돌다 진화해 엄청나게 몸집을 불린 기계생명체다.

수백년 뒤의 어느 시점을 상정한 영화 <스타트렉1>(1979년)은 77년에 발사된 미국 보이저 1호 위성 얘기를 끌어들인 잘 만든 공상과학 판타지다. 지금 태양계 맨 바깥 경계 지점까지 가 있다는 보이저 1호 후속 위성으로 설정된 보이저 6호(‘비저’)는 영화 속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여성 대원을 순식간에 기계생명체로 완벽하게 복제해버릴 정도의 고도 기술문명체다.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 나선 비저는 복제 여성과 남성 대원의 초현실적 결합을 통해 마침내 어머니 지구문명과 하나가 됨으로써 존재의 의문을 풀고 새로운 진화의 여정에 오른다.

미국 듀크대학 신경공학센터의 시스템신경생리학자 미겔 니코렐리스의 <뇌의 미래>(2011년)는 바로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니코렐리스에 따르면, 우리도 머지않아 “수백만년 동안 머물렀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진 지상의 신체에서 해방되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일상이 되는 날”을 맞게 된다. “대양의 심해에서부터 초신성의 표면에까지, 그리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몸 안쪽에 있는 작은 세포간극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먼 우주 끝 행성의 거시세계에서 원자 속 미시세계까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려는 우리 종의 끝모를 야망”은 곧 충족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하여 <스타트렉>의 비저처럼, 과연 우리도 자신의 존재론적 의문을 풀기 위해 우리를 낳아준 저 초신성의 폭발 잔해인 우주먼지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될까?

니코렐리스의 이런 이야기는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같은 에스에프(SF) 거장들의 먼 미래 이야기와는 일면 닮았으면서도 좀 다르다. 그가 얘기하는 인간이 “지상의 신체에서 해방”될 날은 먼 미래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명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니코렐리스는 그 도정이 이미 시작됐고 이르면 불과 10년, 늦어도 20년 뒤엔 그 해방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새로운 차원의 인류 진화로 이어질 그 극적인 변화의 핵은 인간 뇌다.

2002년 니코렐리스는 붉은털원숭이 오로라의 두뇌 피질에 미세전극을 심었다. 그 전극을 컴퓨터와 로봇 팔에 전선으로 연결시켜, 맛있는 오렌지를 상으로 받아먹으려는 원숭이 오로라의 생각과 상상만으로 로봇 팔을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실험에 성공했다. 실험 시작과 함께 오로라의 두뇌 신경회로망을 형성하는 피질의 뉴런 집단들이 전기펄스들을 방출하기 시작했고, 이 끓어오르는 전기의 바다가 뇌의 전기폭풍을 만들어냈다. 컴퓨터가 간단한 수학 모델을 통해, 그 전기신호들에서 오로라가 컴퓨터 화면상에 띄운 초보적 게임문제를 풀려고 발동하는 운동명령을 추출해 선형으로 조합했다. 커서를 움직이는 조이스틱 손잡이를 움켜쥐는 힘이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손목, 팔꿈치, 어깨 등의 공간적 위치, 속도 등을 디지털 전기신호로 바꾸고 증폭한 것이다.

따로 설치된 로봇 팔은 디지털 전기신호에 따라 오로라의 왼팔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조이스틱을 치워버리자 오로라는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몇 번 실수를 한 뒤 해법을 스스로 찾아냈다. 오렌지 주스를 향한 그의 생각이 유도해낸 대뇌피질 뉴런들의 전기폭풍이 로봇 팔을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 했다. “마침내 오로라의 뇌가 자신을 가두는 생물학적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 해방된 순간이었다.”

니코렐리스는 2007년에는 듀크대학의 붉은털원숭이와 태평양 너머 일본 교토의 인간형 로봇 ‘시비(CB)-1’을 인터넷과 컴퓨터로 연결했다. 몸무게 5.5㎏, 키 80㎝인 붉은털원숭이 이도야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의 듀크대에서 손잡이를 잡고 러닝머신 위를 걷기 시작하자 몸무게 90㎏, 키 1.5m의 일본 교토 로봇도 이도야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영장류의 몸뚱이와 기계를 연결해 영장류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는 혁명적인 신경생리학 패러다임이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brain-machine interface)다. 이는 지금 인간에게 접목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비엠아이를 활용하면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 그리고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전신 외골격 신경보철 장비를 옷처럼 입게 되면 전신마비 환자도 자유롭게 걷고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또 비엠아이를 통한 척수 고주파 전기 자극으로 도파민 이상에 따른 파킨슨 병을 치료할 수 있고, 루게릭 병이나 알츠하이머 치료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뇌와 뇌를 연결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만으로도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쪽지를 적어 보낼 수 있으며, 먼 천체로 보낸 원격조종 로봇을 통해 그 현장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인간을 신체의 한계에서 해방시켜줄 구세주는 결국 뇌다. 뇌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뇌의 도움으로 인간이 마침내 자신의 “생물학적 감옥”을 벗어나게 되리라는 이 지극한 낙관주의자의 예언이 그의 말대로 실현될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다시 차원을 바꿔가고 있는, 200여년에 걸친 뇌 본질 논쟁의 핵심을 꿰면서 뇌 이론과 실용화를 선도하고 있는 그의 얘기가 허황되게 들리진 않는다. 인간은 <아바타>나 <써로게이트>,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통해 이미 그런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21세기 첨단산업이기도 한 비엠아이 기술을 우리나라 과학기술평가원과 삼성경제연구소도 10대 미래 유망기술로 선정했단다. 인간 존재 자체의 차원 전환을 예고하고 있는 이 심각한 문제가 단지 산업 차원의 고민거리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