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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대중과 흐름-대중과 계급의 정치사회학]

시놉티콘 2012. 10. 20. 15:23

 

 

대중은 주어진 자리 벗어나려는 ‘흐름’

등록 : 2012.10.19 20:14수정 : 2012.10.19 20:14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 광경. <한겨레> 자료사진

자기자리 충실하다면 ‘군중’ 불과
정규직 노동자들 ‘자기몫’ 틀깨고
‘외부’ 불안정노동에게 나아가야

 

대중과 흐름-대중과 계급의 정치사회학
이진경 지음/그린비·2만원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환호하며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청계천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성토하던 사람들, 정리해고에 맞서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들, <나꼼수>를 듣고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사람들…. 흔히 ‘대중’이라 불리는 이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과연 누군가’를 물으며 그 실체를 분석하는 데 매달려 왔다.

‘외부를 사유하는 철학자’로 통하는 이진경씨는 자신의 새 책 <대중과 흐름>에서 이처럼 대중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누구냐고 묻는 대신, 그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을 ‘흐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대중론은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외부성에 의한 사유’가 정치적 사유의 모든 층위에서 가동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외부성’ 개념이 이런 지적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

지은이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논의를 기본적인 계기로 삼는다. 랑시에르는 ‘치안’과 ‘정치’를 구별하고, 이 둘의 충돌과 대결을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치안이란 사회 안에 자리와 위계, 그에 따른 자격과 권리를 분배하고, 그렇게 나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정치는 몫이 없는 자가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것, 말할 자격 없는 자가 말하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자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이주노동자처럼 외부의 ‘배제된 자’들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정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이에 대해 “충분치 못하다”며 랑시에르의 논의를 더 넓히려 한다. 외부자들이 내부로 밀고 들어오는 움직임(‘침입’)만 볼 게 아니라, 내부에서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 외부로 나아가는 움직임(‘탈각’)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천성산 습지를 파괴하는 고속철 터널 공사를 막으려는 운동이 벌어졌을 때, 천성산 도롱뇽의 이름으로 제기된 소송이 중요한 사례가 된다. 그 소송은 인간 아닌 자가 ‘우리도 인간’이라며 내부로 침입해온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라면 그들을 무시해도 되는가’라며 우리를 인간의 외부로 내밀어,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외부성을 가동시키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흐름으로서의 대중’을 분석하는 것은 이런 정치적 사유의 밑거름이다. 가브리엘 타르드, 빌헬름 라이히, 들뢰즈와 가타리의 대중에 대한 연구들을 이론적 자원으로 삼은 지은이는 “대중을 정의해주는 것은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수의 다수성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이탈의 벡터”라고 짚어낸다. 곧 어떤 계기에 따라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난 개인들이 공동의 경험 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한 흐름을 이룰 때 그것을 대중이라 부를 수 있지만, 주어진 지위와 구실에 충실하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군중’일 뿐 ‘대중’은 될 수 없다는 견해다.

이런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특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화’를 중심으로 삼아 온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에 비판의 칼을 겨눈다. 오늘날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정규직과의 경계 바깥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정치가 흐름으로서의 대중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이들이야말로 정치라는 활동이 작동할 실제적 조건”이다. 지은이는 또 그들을 내부로 끌어들이기보다, 내부의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확보한 노동자의 몫으로부터 ‘탈각’하여 외부에 있는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기본소득’ 제안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처럼 내부화에 매달리는 논의와 달리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인 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은이는 ‘의식화’에만 치중하는 기존의 정치도 비판한다. 어떤 사건은 그 매혹적인 내용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로 증폭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휘말리며 거대한 대중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대중의 흐름 속에 어떤 집합적 감각을 흐를 수 있게 만드는 ‘감각화’다. ‘희망버스’가 가능했던 이유는 정리해고의 부당성 자체보다도 ‘김진숙씨가 죽어서 내려오게 해선 안 된다’는 안타까움과 절박함의 감각이 널리 전염된 데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