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65) |
인간-사물 상호작용 분석 라투르
경구피임약 개발과정 등 예시로
기술·경제·사회 얽힌 관계 풀어내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사월의책·1만5000원흔히 과학과 기술은 정치나 사회, 종교, 이데올로기와 분리된 ‘자율적인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에 직접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감탄을 보낼 뿐이고, 과학과 기술에 모든 가치를 거는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만큼은 자율적이기 때문에 참이거나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생태적 위기부터 당장의 일상생활까지 오늘날 과학·기술이 없는 인간의 삶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데, 이런 생각들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과학기술학·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랑스 ‘과학인문학자’ 브뤼노 라투르(사진·65)는 아예 “과학 없는 인문학은 개코원숭이들의 인문학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인간에만 초점을 맞췄던 그동안의 학문적 경향에 반발해, ‘비인간’, 곧 사물에 주목하는 독창적인 학문적 흐름을 만들어낸 학자다. 특히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물을 인간과 같은 ‘행위자’로 파악하고 각각의 행위자들이 벌이는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ANT)을 창안해,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표 저작인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가 국내 출간된 바 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는 편지 형식을 빌려 라투르의 생각을 쉽게 집약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그는 독일인 학생에게 보내는 여섯 통 편지 속에 우회·번역·구성 등 자신이 창안한 개념들과 그 맥락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책에서 라투르는 지구의 역사를 해석하는 두 가지 경향을 제시한다. 하나는 역사의 각 단계마다 과거와 근본적인 결별을 상정하고, 그에 힘입어 주체와 객체, 정치와 과학,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심화시켜왔다고 보는 ‘해방과 근대화’다. 다른 하나는 각 단계에서 점점 더 크고 더 밀접한 ‘연루’를 상정하고, 기술과 과학과 정치가 매번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고 보는 ‘밀착과 생태화’다. 서구 근대주의가 해방과 근대화 이야기에 집착해 과학기술의 자율성을 강변해왔다면, 라투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밀착과 생태화 이야기에 주목해보라고 권한다. 이 두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서로 합의를 볼 수 없지만, “공동의 삶 전체는 이 불가능한 합의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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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사월의책·1만5000원 |
사진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