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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의식-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시놉티콘 2013. 1. 19. 16:58

 

 

비싼 게 맛있다고 느낀 건 ‘혀’가 아니라 ‘뇌’였어

등록 : 2013.01.18 20:03 수정 : 2013.01.18 21:39

<“새로운” 무의식-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2만원

 

가격표 다른 두 개의 포도주
비싼쪽 마실때 뇌가 쾌락 느껴
사실은 똑같은 내용물 담은것
“무의식이 감각과 기억 조종해”`

 

좀비가 무서운 건 내 자유의지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신경기생학이 발달하면서 뇌를 조절해 숙주를 좀비로 만드는 동물이 자연계에 즐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이제 내가 배가 고픈 건지 내 뱃속의 세균이 허기진 건지 의심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뇌과학은 우리의 의식마저 의심하게 한다. 우리의 감각과 기억, 행동 뒤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정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은 꿈과 신화를 해석해 얻은 프로이트식 무의식이 아닌, 과학 영역의 새 무의식 세계인데, 그것을 열어젖힌 것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이나 동작을 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기술이다.

 

미국의 유명한 과학 저술가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쓴 <새로운 무의식-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는 수많은 연구 사례를 들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각각 90달러와 10달러 가격표가 붙은 포도주를 맛보는 실험을 보자. 참가자들은 90달러짜리가 더 맛있다고 답했지만 실은 똑같은 내용물이었다.

 

실험의 핵심은 시음하는 동안 촬영한 참가자들의 뇌 자기공명영상이었다. 놀랍게도 비싼 가격표를 단 포도주를 마실 때 쾌락적 경험과 관련이 있는 뇌 부위가 활성화했다. 결국, 물리적으론 같은 포도주이지만 맛은 정말 달랐던 셈이다. 뇌는 “(포도주의) 화학적 조성만이 아니라 가격까지 맛본다.”

 

 

 

“새로운” 무의식-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뇌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 속에서 무의식은 척추동물이 진화하면서 진작부터 갖춘 기본사양이고, 의식은 아주 최근에 인간이 고른 선택사양일 뿐이다. 인간 아닌 다른 동물이 의식적 사고를 거의 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감각계가 뇌로 보내는 정보량이 초당 1100만 비트에 이르지만 의식이 처리할 수 있는 크기는 16~50비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운전을 하고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데서 보듯이 무의식은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무의식은 감춰져 있고 의식만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에선 무의식이 교묘하게 의식을 좌우하는 사례를 여럿 제시한다.

무의식은 파일을 압축해서 저장한 것 같은 기억에서 빈틈을 지어내거나 아예 바꾸기도 한다. 몸짓과 신체언어 같은 비언어적 소통을 좌우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을 감추기 힘들게 만드는 것도 무의식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이 낮고 울리는 목소리의 남성에게 끌리도록 하고 깔끔하게 화장한 채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정치인을 지지하도록 한다. 또 내가 속한 집단을 무조건 편들고 외집단을 따돌리는 성향도 오랜 진화 과정에서 얻은 형질이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무의식에 조종당하는 불쌍한 존재일까.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무의식은, 설사 사실과 다르더라도 자신에 대한 긍정과 믿음을 준다. 이런 “긍정적 착각” 덕분에 우리는 인간을 능가하는 힘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힘과 통제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