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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북하이브·1만5000원
<프랑스 아이처럼>은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제부 기자였던 파멜라 드러커맨이 영국 기자와 결혼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체험한, 그가 보기에는 “혁명적인” 프랑스식 육아와 부부 및 가정생활에 대한 보고서이자 예찬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부수적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미국식 육아와 가치관에 흠뻑 빠져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미국·영국인 중산층 부부의 프랑스식 아이 키우기 예찬을 통해 이를 확인하는 건 흥미롭고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아이처럼>은 파멜라가 결혼과 함께 정착한 파리에서 딸아이 빈을 임신한 때부터 시작한다. 책은 그때부터 빈을 출산해서 파리 시가 운영하는 무료 탁아소 ‘크레시’에 3년간 맡긴 뒤 다시 거의 무료에 가까운 공립 어린이집 에콜 마테르넬을 거쳐 빈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6살까지의 양육과정을 탐사취재하듯 추적·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빈이 생후 18개월 되던 때에 찾아왔다. 허덕대며 빈 뒤치다꺼리에 심신을 소모하며 지쳐가던 파멜라는 휴가여행지의 식당에서 어느 날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우리 주변의 프랑스 가족들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기가 있느냐 없느냐와 무관하게 누구보다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빈 또래의 프랑스 아이들은 흡족한 얼굴로 유아 의자에 앉아 차분히 자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릴 뿐 아니라, 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생선요리, 채소까지 얌전히 먹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도, 울며 떼쓰는 아이도 없었다. 아기에게 맞춰 이것저것 골라낸 요리가 나오지도 않았다. 아기들은 모두 어른들처럼 한번에 한 가지씩 코스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다른 건 식사예절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한번도 소리지르며 떼를 쓰거나, 엄마가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전화를 할 때 칭얼대거나 울지도 않았다. 프랑스 아이들은 심지어 생후 2~3개월 때도 밤새 단 한번도 깨거나 칭얼대지 않았다. 집 거실을 온통 아이들 장난감이나 놀이시설로 채우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그런 도구들은 모두 아이 방에 있으며, 부모들이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놀아주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지도 않는다. 경쟁적 조기교육 열풍에 시달리는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 크레시에서는 읽고 쓰는 것도 가르치지 않았고 마테르넬에서도 쓰기를 가르치지 않았다. 조리있게 말하기, 어울려 놀기 등 소통능력과 사회성 키우기에 주력했다.
미국 기자가 영국 기자와 결혼해
프랑스서 아이 낳고 키운 보고서 무료 가까운 보육시스템 외에도
부모 여유, 떼 안쓰는 아이 보며
미국식 육아의 후진성 절감 충격
공공장소서 떠들거나 보챌 때도
프랑스 부모들 “현명하게 굴어”
조기교육 경쟁 대신 ‘소통’ 중시
프랑스인들은 생후 몇 개월 된 아이가 밤에 일어나 칭얼대도 곧바로 달려가 달래거나 젖을 물리지 않았다. 일단 관찰하면서 때로는 5~10분까지 기다린다. 이 ‘잠깐 멈추기’야말로 파멜라가 프랑스식 아이 기르기 뒤의 “보이지 않는 문명의 힘”이라고 했던 그 무엇의 하나였다. 그냥 두면 다시 잠들 수 있는데도, 그때마다 이를 배고픔이나 문제, 스트레스 신호로 해석하고 곧바로 달려가 달래주면 아이는 거기에 적응해 버린다. 다음부터는 계속 그래야 다시 잠이 들도록 ‘길들여지는 것’이다.
식사도 정해진 시간에만 한다. 생후 4개월쯤 되면 식사(수유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일정이 통상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 오후 8시 등 4차례로 고정된다. 첫 이유식 때부터 으깬 콩류, 시금치, 당근, 호박, 부추 등 채소와 치즈, 신선한 과일들을 준다. 단것과 고기를 좋아하고 군것질거리를 달고 다니는 미국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보채거나 칭얼대지 않는 것도 이런 훈련 덕이다.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그럴 때 프랑스 부모들은 엄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아탕!”(attend, 기다려)
“농!”(non, 안 돼)이 아니라 아탕! 또는 “사주!”(sage, 현명하게 굴어)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좌절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감을 주는 것이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이게 프랑스식 육아의 핵심개념인 ‘카드르’(cadre, 틀)다. “카드르는 매우 단호한 제한이 존재하고 부모가 그걸 엄격하게 강제한다는 뜻이다. 대신 아이들은 그 틀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프랑스에선 부모가 학교수업에 참견하지 않고, 아이들 생일파티에도 가지 않는다. 방학 때 무수히 열리는 1주일 안팎의 캠프에도 아이들만 보내지 부모가 따라가는 법이 없다. 아이들은 실부플레(해주세요), 메르시(고맙습니다), 봉주르(안녕하세요), 오르부아르(안녕히 가세요), 이 4가지 ‘마법의 말’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가르친다. 봉주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는 아이 또는 인간에 대한 프랑스식 이해와 육아 철학이 미국 중산층의 과보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은 장자크 루소가 <에밀>에서 설파한 엄격한 카드르 내의 자유로운 교육관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60년대 말 ‘68혁명’을 거치면서 아이를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강조함으로써 루소의 교육관을 한층 더 발전시켜 지금까지도 유효한 정석을 만들어낸 사람은 프랑수아즈 돌토다. 그 핵심은 아이를 믿고 존중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야심을 위한 창고가 아니며 부모가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즐거움, 삶의 경험을 지닌 개별적이고 유능한 존재다.” 프랑스에서 이런 육아법·교육관은 전 국가적 기획이다.
우리가 보기에 부러운, 또 한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프랑스식 육아의 기본 장치가 있다. 파리 3살 이하 유아들의 3분의 1이 다니는, 고급 레스토랑과 다름없어 보인다는 크레시, 만 6살까지, 심지어 불법 체류자에게까지 무료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허용하는 모자보호서비스, 주 4일 오전 8시20분에서 오후 4시20분까지 운영하는 마테르넬이 무료거나 거의 무료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1만2000달러나 학비를 내야 하는 반일제 사립유치원과는 달리 마테르넬은 점심 식대만 내는데 그것도 13센트에서 5유로까지 부모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된다. 그밖의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주는 레저센터들도 충실하지만 비용은 아주 싸다.
이제 세 아이의 부모가 된 파멜라 부부가 뉴욕이나 런던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